차변과 대변의 값이 달라야만 결재가 가능하세요.
가끔 카카오 선물하기에 들어가서 내역을 훑는다.
그냥 심심해서 켠 건데, 보다 보면 마음이 묘해진다.
‘아 이런 것도 받았었다고, 이 사람한테?’
그런데 그다음엔 내가 뭘 보낸 흔적이 없다.
아차 싶은 순간이다.
(근데 심지어 진작에 썼어)
나는 꽤 챙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받은 것도 많았고, 그러면서도 깜빡한다.
고맙다고는 했을지 모르지만 돌려주지는 못했다.
받기만 하고 잊은 순간들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걸
춘식이가 웃으며 알려준다.
그 사람은 나한테 뭔가를 주었고
나는 그걸 받아들였고
그냥 지나갔다.
내가 챙겼던 일들도 있다.
밥 한 끼, 커피 한 잔, 작은 선물 하나.
뭐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지만
그 순간의 나는 마음을 썼고,
그게 누군가에겐 그냥 지나가는 일이었으리라.
불교에서는 그렇게 말하더라.
아무 대가 없이,
그저 그 순간에 필요한 사람에게 내어주는
마음을 쌓으면 공덕으로 돌아온다고.
받을 자격이 있든 없든,
꼭 돌려받지 않아도 괜찮은 마음이 있다는 걸
자연스럽게 배운다.
그러다 생각이 튄다.
부모가 공덕을 쌓으면 그 복은 자식에게 간다던데
나는 자식이 없어서, 이 복은 누가 받나.
강아지도 수령 가능할까.
아니면 그냥 대기 상태로 떠 있는 건가.
공권력에(불권력인가) 환수되어 사용되나.
검색창에 [공덕 수령인 지정]이라고 치기도 좀 뭐 하고.
그런 생각까지 하다 보면, 어이가 없지.
'내가 이렇게까지 생각하면서 밥 한 끼를 사진 않았는데' 싶어서.
다행인 건,
카카오가 대신 기억해 준다는 거다.
내가 흘린 마음을
내가 놓친 정중함을
노란 리스트 안에 오차 없이 저장해 주고
심지어 받기만 할 거냐고까지 물어본다.
(내가 알아서 할 게 춘식아.)
기억하고 있는 한, 언젠가는 갚겠지.
그리고 내가 준 것 중에 돌아오지 않은 것도 있잖아?
공덕의 기브 앤 테이크라고 생각하자.
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 같은 게
공덕을 돌리고 있다고 말이다.
쟤가 나한테 주고, 나는 걔한테 주고, 걔는 또 다른 얘한테 주고—
결국 얘는 다시 쟤한테 주는 식의
공덕의 자유방임주의.
공덕도 시장처럼 흐르는 거지.
교환 비율은 없고, 만기일도 없고,
근데 어쩐지 언젠가는 돌아오는 것 같은 마음의 순환.
이게 맞는 생각인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좀 마음이 편해진다.
계산이 안 맞는다는 게
잘 돌아가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고.
세상에 공짜 없다는 말은,
대가 없이 얻는 건 없다는 뜻이겠지만,
뒤집어서 보면
내가 누린 어떤 따뜻함도
사실은 누군가 그 대가를 먼저 치렀다는 뜻 아닐까.
(저 쪽 손님이 먼저 계산하셨습니다.)
돌려받지 못한 마음을 품고 있었던 누군가,
흘린 손해를 말없이 덮은 누군가,
그런 사람들의 조용한 선택 덕분에
나도 어느 날 무심히 따뜻함을 누렸던 건지도 모른다.
기억은 편파적이다.
커피 기프티콘 하나,
감기약 사러 나갔던 그날의 따뜻함 같은 건
이 바쁜 세상에서 다 기억하며 살 수는 없다.
그러니까 쟤도 까먹었을 수 있다.
누가 더 무심했는지 따지는 건 별 의미가 없다.
나도 받을 자격 없이 받았고,
그중 일부는 아직 돌려주지 못한 채 남아 있다.
그러니 오늘 내가 무심코 흘린 작은 마음도
어디선가 조용히 이어지기를.
그 마음이 정확히 누구에게 도착하든,
결국엔 그렇게 흐르게 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니까 이건 숫자가 맞지 않는 손익계산서.
맞지 않는 게 맞는 청구서.
차변과 대변의 값이 달라야만
다음 창으로 넘어가는 공덕의 불균형한 기브 앤 테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