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들은 척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과시는 결핍이래

by 김하피 편집실



말이 많아지는 날은 이상할 만큼 뻔하다.
그날은 보통 잠이 덜 깼거나, 출근길에 기분이 꺾였거나, 연락 오던 사람이 조용하거나.
이유가 거창하지도 않다. 그냥 뭐가 하나씩 틀어진 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말을 붙잡는다.
말이라도 붙잡아야 그날이 내 것 같으니까.


진짜 말 많은 날은 대부분 외롭거나 기분이 별로다.
근데 이상하게, 그런 날엔 꼭 내 얘기가 아니라 내가 아는 사람 얘기를 한다.


전애인이 모델이었다든가.
어느 회사 다니던 애가 나한테 먼저 연락했다든가.
지금은 그냥 애매한 내가, 한때 누군가의 자랑거리였다는 흔적.


과시는 대체로 그 사람 ‘지금’에 없는 걸 말한다.
자기 입으로 계속 말해야만, 진짜였던 것처럼 느껴지는 거.
말 많이 꺼낸다는 건 지금은 그만큼 확실하지 않다는 뜻이고,
그걸 ‘기억’으로 채워 넣고 있는 중이라는 뜻이다.


그냥 나 잘 지내는 척하고 싶었는데,
내 얘기만 하면 너무 빈 거 같아서 굳이 굳이 누굴 끌고 나왔다.
보통은 자기도 모른다.
그게 과시였는지, 방어였는지.
있었던 걸로 말하고, 없다는 건 감추고.


그런 말은 꺼낸 순간부터 거짓말은 아닌데, 진실도 아닌 상태가 된다.
과시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 말은 종종 그 사람을 대표하게 된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났을 때, 그 사람은 조금 더 멀어져 있다.
본인에게서도, 타인에게서도.


나는 그런 장면을 몇 번 목격했고,
몇 번은 내가 그 장면 안에 있었다.
말은 했고, 말이 나를 흘려보냈다.


'아, 지금 껍질 하나 벗겨진 거구나.'
그 사람 진짜 얼굴이 거기쯤 있다는 거다.
볼 줄 아는 사람만 남고, 못 보면 그냥 흘러가는.


판단은 그때 한다.
그 사람은 이미 신호를 줬으니까.
비집고 들어갈 틈인지, 도망쳐야 할 빨간불인지,
그 사람 안에 뭐가 비어 있는지, 거기까지 보면 된다.
신호인지, 경고인지 판단은 각자 한다.
들어가 볼지, 아예 뒷걸음질칠지.


정확히 언제였는지, 어디서였는지.
그 사람 얼굴이 진짜 예뻤는지,
그 말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일부러 기억을 해체해 본다.


걘 정말 예뻤을까.
아니면, 예뻤다고 믿고 싶었던 걸까.


침착한 말속에, 조급한 사람 있고
자신 있는 얼굴 뒤에, 증명하려는 사람이 있다.
과시가 시작되는 지점은 언제나 그 사람의 가장 취약한 순간 근처다.


가끔은, 반응 없이 듣는 게 제일 정확하다.
웃어주지 않고, 끊지 않고, 맞장구도 안 치고.
그냥 듣고 있으면, 과시는 길어진다.
길어지는 말에는 언젠가 이유가 걸린다.
그게 결핍이다.


그 사람 말투, 속도, 문장의 우회.
그걸 놓치지 않으면 된다.




들킨 줄 모르는 사람만큼 선명한 건 없다.


사람은 뭘 가졌을 때보다
뭘 자꾸 꺼내고 싶을 때 더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어떤 날은, 내가 그 사람이었다.



이 글은 설명 아니고, 그냥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