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회상

양 복

by 해피미니

출근


오랜만에 남편은 사무실을 나간다고 했다. 한달 반 만의 외출이다. 나는 조금 일찍 일어나 빨아놓은 와이셔츠를 살폈다. ‘어느 것을 다릴까.’ 그 중 제일 도톰하게 짜여있고 소매깃도 탄탄한, 가장 깨끗한 것을 골랐다. 큰 애가 31살이니 내 다림질도 30년이 넘었다. 시선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손만 쓱쓱 옮기고 다듬어서 와이셔츠 하나 다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하지만 오늘은 좀 정성이 들어간다. ‘집중!’ 마음이… 그렇다.

매일 추리닝 차림으로 만나던 남편이 말끔히 신사복 정장을 입고 코트를 걸치고 ‘갈게’ 하고 짧은 인사를 건다. ‘응’ 하고는 쪼로록 나도 신혼 때처럼 현관문 앞까지 배웅을 간다. 흐트러진 머리도 한 번 더 빗으라 채근하고는 ‘됐다! 잘 다녀와’ 하고 닫히는 문 틈으로 그의 등을 본다. 괜스레 가슴이 찡하다.

몸을 돌본다고 운동을 하고 식이요법을 하고 명상도 하고 생활습관도 많이 바꿨다. 그런데 자꾸 말라간다. 기름진 것을 피해서 그런 것도 같고, 운동이 과해서 그런 것도 같고, 아무래도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런 것 같다. 자꾸 살이 빠진다고 또 그게 걱정이 된다. 새해 들어 방사선치료를 집중적으로 받느라 1-2월 거의 외부 생활을 못하고 있다. 신혼 때도 못해본 둘 만의 시간으로 하루가 채워졌다. 그러다 보니 둘 다 좀 활기가 처지는 것 같았다. 오늘 그가 오랜만에 회사 일을 보겠다고 나가는 것이 나 역시 반가웠다. 피곤하지는 않게 돌아왔으면 좋겠는데 밀린 일에 더 지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일주일에 5일, 주말에 결혼식이나 장례가 있으면 6일, 7일을 긴 팔의 흰 와이셔츠와 양복을 입고 사는 그를 보며 살았다. 삼복더위에도 그 긴 소매에 웃옷까지 걸치고 나서는 걸 보면 뭔지 못할 짓을 시키는 것 같아 참 짠하기도 했었다. 양복은 그에겐 작업복이고, 다시 힘내 살아야하는 채찍이고 봇짐이고 또한 자존심이기도 했던 그 시간도 마감이 있구나 싶다. ‘이제 정말 조금 남았을지도 모르겠네’ 혼잣말을 하며 돌아섰다.


나의 결혼생활과 양복의 변천사


태어나 처음 가보는 백화점 남성정장 코너, 비슷비슷한 옷들이 쪼로록 걸려있으니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여자 옷 고르듯이 예쁜 옷을 골랐다. 가격도 제법 비싸서 깜짝 놀랐다. 그렇게 선택한 게 까만 얼굴의 사람에게 노리끼리한 밤색체크라니! 쪼끼까지 같은 색으로 입혔다. 하하,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니올씨다’ 였는데, 색시가 사준 거라고 입고 다녀준 것만해도 고마운 일이다. 살림을 알아가며 절약의 중요성을 절감하고는 정말 싼티나는 물건을 사서 입히기도 했다. 망한 회사의 80%세일이었다. 그 옷은 꼴이 너무 우스워서 몰래 버렸다. 한때는 이것도 겉멋이 들면서 이태리 원단에 맞춤양복을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두 벌까지는 샀는데 계속하는 것은 음… 애가 셋씩이나 있는 집에서는 무리였다. 그렇게 좋은 것도 샀지만 갈수록 아울렛 몰에서 그의 양복을 사게 되었다. 다행인 것은 제법 보는 눈이 생겨서 그 많은 후보 중에 쓸모가 있고 귀태가 나는 옷을 골라냈다. 그럴 때마다 둘이서 뭔 보배나 찾은 것처럼 “이게 본래 얼마랬지? 이걸 백화점에서 사봐! 바지 하나 가격에 두 벌을 샀네!” 하고 신이 났었다.


와이셔츠는 더했다. 처음에는 하나를 다리는데 분무기 물도 반 통을 쓰고, 30분 넘게 쩔쩔맸다. 여길 다리면 저쪽에 굵은 주름이 생기고, 손을 데이고, 땀은 났다. 도저히 감당이 안돼서 오천원주고 남대문 길바닥에서 완전 나이롱 “안 꾸겨져요! 이것 봐 아줌마, 흔들면 다시 펴져!” 하는 걸 사보기도 했다. 번들번들하고 왜 이렇게 정전기는 나는지… 그 와이셔츠에 위에 말한 밤색체크를 입혔다. 맙소사!

친정 엄마가 오시면 일주일치를 다 다려놓고 가시곤 했다. 그렇게 죽어도 늘지 않던 솜씨가 조금씩 늘고 요령도 생겼다. 이제 한시간이면 드라마 한 편에 대여섯 개는 다린다. 손으로 딱 잡아만 봐도 다림질을 먹을 감인지 아닌지를 구분해서 산다. 물론 아울렛 몰에서 10만원짜리를 3만원에 산다.

이제 좀 잘 할 줄 알게 되었더니 졸업이 가까워진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러하듯 알만하니 끝이 난다.


아들의 양복


그런데 아들에게서 카톡이 왔다.

‘엄마, 나 학회에서 발표를 하는데 양복이 필요하대요. 이제 인턴자리도 알아봐야 하니까 양복이 하나 있기는 있어야겠어요. 혹시 시간되세요?’

간만에 자신있는 분야의 일감이 떨어졌다. 부리나케 외출을 서둘렀다. 어느새 아들이 양복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구나, 막내가 이제 성인이 되는구나 싶어 흐뭇한 맘도 들었다.

첫 양복을 차마 아울렛 몰에서 사주진 못하고 백화점으로 갔다. 대신 내가 실력발휘를 해서 ‘세일하는… 저렴한… 그러면서도 값어치를 넘치게 하는 물건을 찾아내리라!’ 그런데 막상 백화점에 도착하니 좋은 브랜드가 눈에 밟혔다. ‘한 두개 입혀볼까? 진짜 예쁘긴 할 텐데…’ 하다가 맘을 접는다. ‘그러지 말자. 그런 옷은 앞으로 또 입을 날이 있지. 시작부터 그게 기본인 것처럼 살게는 하지 말자.’ 부모한테 기대는 아이가 아닌대도 내 맘이 좀 박해졌다. 그게 맞다 싶었다.

아이는 어색해했지만 양복을 입히니 말쑥하니 태가 나고 꽤 괜찮았다. 점원이 조금 비싼 옷으로 올려가며 입혀주려는 것을 살짝 마다했다. 가장 기본이지만 젊은이답고 교만해 보이지 않는 신입 느낌이 나는 다크네이비 무광의 옷을 골랐다. 물론 할인이 담뿍되는 품목이기도 했다. 넥타이는 사선의 줄무늬가 너무 평이하진 않은 것으로 과하지 않게 살짝 멋을 내고, 전문가 답게 와이셔츠는 하나하나 감을 손가락으로 비벼보면서 두 개를 골랐다. 신발도 하나 정장에 어울리는 것을 샀다. 손이 야물지 않은 아들용으로 끈은 고무줄로 바꿔서 묶지 않는 것으로 교체도 했다.

아이가 양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또 맘이 찡하다. 그가 생각이 났다.

‘얘야, 너는 지금 모르겠지만, 이걸 입는 순간부터 넌 또 아버지처럼 해야할 일이 많고, 감당해내야 하는 짐이 많은 그 시절을 또 살아가겠구나’ 싶었다. 맨 위 단추를 잠그고 그 위에 또 줄을 매고 말이다. 하루에 지는 해와 뜨는 해를 한꺼번에 본 내 마음이 휘이익 바람이 분다. 생각이 많아지고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와 헤어지고 일부러 지하철 한 정거장을 일찍 내려서 길을 걸었다.

한번은 새하얀 와이셔츠 깃이 잘 어울리던 아들의 옆모습이 생각나고, 한번은 그의 다림질을 여러 번 받아낸 낡은 흰 셔츠가 생각이 나고, 새로운 경험에 상기된 아들의 풋내가 떠오르고, 농익은 그의 아침준비가 떠올랐다. 한발 한발 그렇게 하루를 음미하면서 돌아왔다.

딸은 옷으로 그렇게 큰 변화를 느끼진 못했는데 아들은 교복에서 군복으로 그리고 양복으로 변화가 큰 것 같다. 다 키웠구나 싶고, 왠지 딱하기도 하고, 시어머니 생각도 나고, 남편의 시작도 저러했겠구나 싶기도 하고 그랬다.

누군가의 근사한 아들이었을 그가 곧 들어온단다. 평상복으로 돌아오는 그와의 시간을 잘 보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