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처럼
26. 적어도 걷지는 않기를
적어도 걷지는 않았다.
그가 묘비명에 남기고 싶은 말.
왜 적어도 걷고 싶지는 않았을까.
누구나 걸을 수는 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해도 비틀거리며 걸을 수 있고,
살이 쪄도 뒤뚱거리며 걸을 수 있다.
물론 그들도 달릴 수는 있겠지. 잠시 동안
오랫동안 달려 본 사람들은 안다.
가슴 벅차오르게 숨차 오르는 순간에도
코로 호흡하며 끝까지 자세를 유지하고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을 때도,
팔을 더욱 세게 치며 앞으로 나가고자 이 악물고
알아서 움직이는 팔과 다리에 나를 맡겨
"하나 둘 하나 둘" 외치며 스스로의 목표를 달성하는 기분
달릴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은
어떻게 살지 준비했다는 뜻과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주류 문단에서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확고한 철학을 갖고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끊임없이 한 발로 땅을 디딤과 동시에 다른 발을
앞으로 내밀었기 때문이겠지.
그 단순한 법칙이 숭고한 추진력이 되었겠지.
무릎을 굽혔다 펴야 우리가 달릴 수 있는 것처럼
책을 펴게 되는 순간은 인생에 굴곡이 많을 때였다.
성장통을 위한 달리기가 미련해 보일 수 있겠지.
성장으로 위장한 비교의 함정에 빠졌다고 볼 수 있겠지.
혼자 달려본 사람들은 안다.
고통을 선택하는 사람은 그 고통을 극복함으로써
성장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나 자신의 신체를 움직임으로써 스스로 선택한 고통을 통해, 지극히 개인적으로 배우게 된다는 하루키의 말을 믿는다.
온전히 두발이 땅에 닿는 감각과
피부를 스치는 바람을 맞으며
산소 공급을 위해 숨을 거칠게
내뱉고 들이쉬며 심장이 뛰고 있을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
산다는 것은 심장 뛰는 일이이어야 한다.
너무나 온전히 살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살아간다
언제나 열심히 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