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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D ONE Jun 03. 2024

포르투갈에 간다면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함께

The journey of disquiet in turmoil

여행이 길어질수록
여행을 떠난 자는 불안해진다.
이 여행도 갑작스레 끝날 것임을
알고 있기에

리스본행 비행기를 타고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읽는다는 것. 그건 6년 전부터 꼭 하고 싶은 일이었다. 신혼여행을 간다면 꼭 포르투갈을 같이 가고 싶다는 로망. 그 로망을 실현할 수 있는 비행기에 올라타기까지 수많은 여행이 필요했다. 페소아의 불안의 책을 매일밤 성경처럼 읽기도 했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과 몽테뉴의 수상록 그리고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까지. 누군가와 같이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참으로 많은 혼자만의 여행이 필요했다.


6년 만에 다시 찾은 리스본의 태양은 여전히 밝고 뜨거웠으며 그 특유의 안온함과 도시를 감싸는 특유의 우울함이 빚어내는 묘하게 음침한 분위기가 좋았다. 너무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미국인 관광객이 많이 없는 곳. 미국인 관광객이 많은 곳은 여행지에 깊게 침투할수록 들리는 언어가 비슷해지는 것만 같다. 이제는 많은 한국인들이 찾는 여행지가 되었지만 여전히 리스본과 포르투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 그러한 사실이 오히려 타당성을 부여했다.


여행지 풍경의 변화에 따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다들 알고 있듯이 유명한 여행지에서는 언제나 그 순간을 남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광경을 맞이할 뿐이다. 그럴 때 떠오른 문장. 물론 나도 풍경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밀며 그 순간을 기억하려고 하지만, 내가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필사적으로 담아내려는 행동 기제를 나는 이해하기 참으로 어려웠다.

실망이라는 향유, 실망은 불행이라고 간주되지만, 이는 분별없는 선입견일 뿐이다. 실망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엇을 기대하고 원했는지 어떻게 발견할 수 있으랴? 또한 이런 발견 없이 자기 인식의 근본을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그러니 실망이 없이 자기 자신에 대한 명확함을 어떻게 얻을 수 있으랴?


포르투갈의 매력이 무엇일까? 바로 실망을 할 순간이 적다는 것이다. 포르투갈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이곳에서 새로운 기대를 품을 수 있는 장소의 역설성이야말로 이곳에서의 여행을 음미할 수 있도록 만든다. 마음의 정체가 생길 수 있는 곳. 내 마음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는 곳. 리스본의 작은 골목들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갈 수 있는 생각의 흐름을 모아주었고, 그 생각의 흐름이 다시 넓게 퍼질 수 있도록 동루이스 다리 위에서 도오루강의 바람을 맞으며 걸으면, 포르투는 언젠가 다시 돌아올 그날까지 내 마음속 성소가 될 것임을 깨닫기도 했다.


마음의 성소. 온갖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거칠고 더러운 허영과 후안무치의 족적들.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남기는 불가피하고도 쉴 새 없는 흔적들을 참으로 많이 보았다.

부모들이 지닌 의도나 불안의 윤곽은 완벽하게 무기력하고 자기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는 아이들의 영혼에 화상의 흉터처럼 남는다.

 

사람들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정도로만 자기를 결정할 수 있다고 한다. 완벽하게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는 순간에서도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여행에서는 무엇이든 다할 수 있는 것만 같은 그 기분. 28번 트램의 기점과 종점을 오갈 때 맞은 바람. 그 찰나의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감쌀 때는 내 안에 품고 있는 모든 침묵을 다 토해내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만난 버트랜드 서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서점, Livraria Bertrand. 그곳에서 만난 페소아. 그는 포르투갈의 상징처럼 골목마다 느껴지는 묘한 우울을 자신의 얼굴에 붙여놓은 것처럼 전시되어 있었다. 다양한 얼굴로 재탄생된 페소아가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불안과 해방감이 뒤섞인 연필의 춤과 함께. 



여전히 이 진지함의 근거를 찾기 어렵다. 진지함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것처럼 행동하는 스스로가 답답한 만큼이나 진지해질 수 있는 시간을 잃고 싶지 않다. 결국 인생이란 스로 상상하는 자화상과의 거리 좁혀가는 과정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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