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 떠난 치앙마이 2주 여행> 7편
3대가 함께하는 여행에는 특별함이 생긴다. 인원이 많아지고 연령이 다양해지는 만큼 조금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아이들이 조부모와 추억을 쌓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감동이 올라온다. 부모와 내가 맺었던 관계, 나와 우리 아이들이 맺는 관계와는 또 다르게 이어지는 새로운 관계.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이 순간은 지금뿐이라는 생각 때문에, 나의 부모와 나의 자식이 함께하는 시간이 더욱 귀하고 소중해진다. 그 관계에 일상을 벗어난 여행이 곁들여지면 얼마나 더 특별한 순간들이 펼쳐지겠는가.
처음 치앙마이 여행을 계획할 때는 나와 남편, 아이 두 명, 이렇게 넷이서 2주간 떠나기로 했었다. 항공권까지 다 끊어 놓고 친정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재미있겠다……”라고 말끝을 흐리며 동시에 반짝이는 눈빛을 보내신다. 대놓고 얘기하진 않으셨지만 함께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럴 만도 한 게, 지난해 친정엄마 환갑 기념으로 3대가 나트랑으로 다녀온 여행이 모두에게 즐겁고 행복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한창 귀엽고 사랑스러운 손주들과 함께하니 더욱 좋아하셨다.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의 여행과 비교해 보면 차원이 달라진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엄마 아빠가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가능한 한 함께하는 시간도 충분히 갖고 감사와 사랑의 표현도 할 수 있을 때 한 번 더 해보자고. 그래서 이번에도 함께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했다. 두 분 모두 일을 하고 계시니 우리와 모든 일정을 함께하기 어려워 구정 연휴에만 합류하기로 했다. 그 기간에는 평소보다 항공권이 곱절은 비싸다고 말씀드렸는데, 손주들과의 여행을 위해서는 그 정도는 별거 아니라는 듯 반응하셨다. 결국 4박 5일 일정으로 치앙마이행 항공권을 추가로 끊었다.
넷이 함께했던 일주일이 지나고, 부모님께서 치앙마이에 밤 늦게 도착하셨다. 아이들을 재운 뒤 나 혼자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는데, 해외 공항에서 부모님을 맞이하는 상황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사실 처음은 아니었다. 20대에 워킹홀리데이로 영국에서 지낼 때,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도 부모님을 맞이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로부터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나는 아이 둘의 엄마가 되었지만, 우리 부모님은 여전히 두 분이서 거뜬하게 해외도 오시고 에너지와 체력도 충분히 좋다.
그 시절엔 그 시절만의 여행을, 지금은 지금만 할 수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3대의 여행이 시작되었다.
다음 날 아침, 할아버지 할머니가 치앙마이에 오셨다는 사실에 아이들은 신이 나서 옆집으로 뛰어갔다. 6명이 모여 에어비앤비 ‘파이얀노이’에서 조식을 먹고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됐다. 부모님이 합류하면 여행 스타일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5살부터 60대까지의 취향을 적절하게 맞추면서 큰 변수가 생길 수 있는 상황은 최대한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파워 J의 본격적인 스케줄링이 시작된다. 그런 여행은 그런대로 또 재미가 있다.
치앙마이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예술가들의 거리 ‘반캉왓’은 부모님이 오시면 함께 가려고 아껴 두었던 곳이었다. 아기자기하면서 개성과 매력이 넘치는 작은 가게들이 줄지어 마을을 형성하고 있어서 각자 취향에 맞게 구경하기 딱 좋았다. 아이들은 물감으로 색칠하는 체험을 해보기도 하고, 친정아빠는 노트 가게에서 여행기를 작성할 공책을 하나 구입하셨다. 부모님 두 분이서 캐리커처도 했는데, 결과물을 받아 들고 아빠는 좋아하셨고 엄마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다. 나중에 친정집에 가보니 아빠가 어디선가 액자를 구해 오셔서 두 분의 캐리커처를 넣어 거실장에 전시해 놓으셨더라.
여행사 투어도 처음으로 신청했다. 평소에는 복잡한 유명 관광지에 가는 가이드 투어를 선호하지 않지만, 3대가 함께할 때는 종종 단독 투어를 활용한다. 다른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우리끼리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어를 굉장히 잘하는 젊은 태국인 가이드를 만나 왓파랏과 도이수텝 야경 투어를 성공적으로 다녀왔다.
요가에 푹 빠져 있는 나는 부모님도 한 번 해보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해외에서 딸과 함께하는 요가, 지금 생각해도 낭만이다. 마침 숙소 바로 뒤에 요가원이 있어 문의했는데, 딱 우리 세 명을 위한 원데이 클래스를 개설해줬다. 기존에 있는 수련에 참여하려니 요가 경험이 전무한 60대 부모님이 참여해도 괜찮을지 감이 잡히지 않아 망설이고 있었는데, 우리만의 클래스를 열어 준다니 이 얼마나 친절한 치앙마이 요가원인가. 남편도 함께하면 더 좋았겠지만 본인이 아이들과 있을 테니 다녀오라고 배려해 준 덕분에, 친정부모님을 모시고 모닝 요가도 해볼 수 있었다. 예상보다 아사나를 하나하나 차분하게 완성하는 엄마에게 놀랐고, 온몸이 뻐근하고 마음처럼 되지 않았을 텐데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따라 하시던 아빠의 모습도 인상 깊었다. 우리의 수준에 맞게 수업을 이끌어 준 밝은 표정의 남자 요가 선생님도 기억에 남는다.
하루는 기사를 포함한 렌터카를 빌려 근교 ‘람푼’에 다녀왔다. 복잡한 치앙마이 시내보다는 한적한 곳에서 우리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멋진 유적지 같은 식당에서 다 같이 점심 식사를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뒤, 아이들을 위한 놀이시설에도 가고, 부모님을 위한 온천에도 갔다. 부모님이 여기까지 오셨으니 꽤 괜찮은 호텔에서 지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호캉스를 즐기기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전 기념품을 구입할 마켓에도 들러 현지 시장의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부모님 맞춤이자 아이들 맞춤이기도 한, 우리 가족에게 딱 맞는 일정이었던 것 같아 가이드로서 뿌듯했다.
종종 아이들에게 조부모의 존재는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 본다.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믿고 지지해 주는 존재가 부모 말고도 더 있다는 느낌은 무척 든든하지 않을까. 얼마 전 SNS에 뜬 짧은 영상에서 추성훈과 야노시호의 딸, 사랑이의 이야기를 봤다. 사랑이의 할아버지가 하늘나라로 떠난 뒤에도, 사랑이가 스마트폰 가장 상단에 고정해 놓은 채팅 상대는 여전히 할아버지라고 한다. 할아버지를 자주 떠올리려는 의지와, 지금 가까이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자주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랑이가 조부모와 맺은 끈끈한 관계처럼 우리 아이들도 할아버지, 할머니와 소중한 관계를 맺으면 좋겠다. 이 세상에 든든한 지원군이 부모 말고도 4명이나 더 있다는 사실이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고, 양가 부모님께도 우리 아이들이 큰 기쁨이고 행복이자 삶의 새로운 의미이기 때문이다. 가운데에서 나의 역할도 지혜롭게 해낼 수 있는 현명한 딸이자 엄마가 돼야지, 다짐할 수 있었던 여행이었다.
덧붙이는 이야기.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하며 조심하려고 노력한다. 조부모와의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가족도 있을 것이기에, 꼭 조부모가 아니더라도 가족처럼 가까운 곳에서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주는 어른이 아이들에게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나부터도, 주변 이웃들에게 그런 따뜻한 인연이 되어 주고 있는지 되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