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대 부모님과 함께 한 치앙마이 요가

<아이들과 함께 떠난 치앙마이 2주 여행> 8편

by 최성희

이사 후 새로 등록하고 싶은 요가원을 찾지 못해 집에서 혼자 수련을 이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굳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되고, 아이들이 잠든 뒤 고요하게 홀로 마주하는 시간이 좋았다. 하지만 몇 달 가지 않아, 함께 수련하던 순간들이 금세 그리워졌다. 유튜브 속 반복되는 시퀀스는 곧 지루해졌고, 신뢰하는 선생님의 리드가 얼마나 소중한지, 같은 공간에서 수련하는 이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기운이 얼마나 귀한지 깨달았다. 다시 마음이 끌리는 요가원을 만날 날을 기다리며, 긴 겨울을 혼자 보내고 있을 때였다.


치앙마이 여행을 준비하며 님만해민에서 머물 숙소를 찾던 중, 한 콘도 1층에 요가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혼자 하는 수련이 외로웠던 나는 그 순간 다른 숙소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아쉬운 점이 있음에도 결국 그곳을 예약했다.


콘도는 ‘힐사이드 3’, 요가원은 ‘Yoga Ananda’. 5회권을 끊어 님만해민에 머무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찾았다. 우리 가족은 여행 중에도 아이들의 한글 공부, 그림일기, 그림책 읽기를 이어갔고, 거기에 추가로 나의 운동도 일상 루틴으로 가져갔다. 그래서 여행을 하다가도 오후 4시쯤이나 늦어도 5시에는 숙소로 돌아왔고,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진 뒤 늦지 않게 잠자리에 들었다. 이런 일정과 아이들을 케어해 준 남편의 배려 덕분에 나는 치앙마이에서도 하루의 끝을 요가로 맺을 수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요가원에서의 수련이 치앙마이에서라니! 두근거리는 기대감 반, 낯선 공간에 대한 긴장감 반으로 첫 클래스에 들어갔다. 공간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지만 매트가 빼곡하게 깔려 있었고, 매 수업마다 빈자리 없이 모든 매트 위로 회원들이 올라갔다. 대부분 서양인이었고, 절반 이상이 남자라 신기했다. 나처럼 원데이나 5개의 클래스를 신청한 사람보다는 치앙마이에 오래 머무는 서양인들이 일상적으로 수련을 다니는 로컬 요가원 같았다. 나는 한국인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다섯 번의 수업 동안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낯선 상황에 유독 소심해지는 나는 첫날 인증샷 하나도 남기지 못했다. 요가 고수인 척 매트 위에 앉아 눈을 감고 명상하는 척을 했지만, 사실은 아무와도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맨니(Menny) 선생님의 인요가는 놀라울 만큼 좋았다. 한국에서든 치앙마이에서든 요가는 언제나 온몸 구석구석 에너지가 도는 느낌을 주고 내 몸을 스스로 정성스럽게 살피는 과정을 선물해 준다. 충분히 이완하는 인요가와 함께 자연스럽게 긴장도 풀어졌다. 2회 차 수업부터는 옆에서 함께 수련하는 분들과 눈을 마주쳤고 가볍게 인사도 건네게 됐다.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는지 누구보다 빠른 손놀림이긴 했지만 거울 인증샷도 남기기 시작했다.

‘요가 아난다’에는 아쉬탕가와 빈야사처럼 역동적인 수업이 많았지만, 인요가나 테라피 같은 이완 수련도 있었다. 여행 다섯째 날, 녹(NOK) 선생님의 등·하체 테라피 수업에서 마지막 사바아사나를 하던 중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아사나 하나하나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는데, 왜 울컥했을까. 끝나고 돌이켜보니, 여행 전까지 내가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요가는 이렇게, 내가 애써 외면하거나 모르고 있던 것을 드러내 주기도 한다.

‘요가 아난다’의 5회권 회원증

5회 차 수련을 마친 뒤 우리는 님만해민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고, 그 무렵 친정 부모님도 합류했다. 이번에는 부모님께 요가를 선물하고 싶어 프라이빗 클래스를 찾았다. ‘Vira Yoga Studio’. 우리가 묵은 게스트하우스 바로 뒤에 있었다. 부모님이 60대이고 요가 경험이 없어서 기존 클래스에 합류해도 괜찮을지 걱정이 된다며 문의했더니 좋은 가격에 우리만을 위한 수련을 마련해 준 것이다.


예상보다 두 분 모두 적극적이었다. 엄마는 많은 동작을 무리 없이 해내 놀라웠고, 큰 사고로 무릎 수술을 받았던 아빠도 잘 되지 않는 자세를 끝까지 시도했다. 선생님은 남자분이셨는데 아빠가 최대한 해볼 수 있도록 도구를 지원하거나 개별적으로 핸즈온을 해주셨다. 그 와중에 우리 사진까지 척척 찍어주셔서 덕분에 우리 셋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여행과 육아는 지나고 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장면들로 가득하다. 미래로만 흘러가는 시간의 속성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귀하고 특별한 순간일수록 더욱 소중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여행과 육아에서 유난히 사진을 많이 남기는 게 아닐까. 흘러가는 시간을 어떻게든 붙잡아 두려는 마음으로.


일본에는 ‘모노노 아와레(Mono no aware)’라는 감정이 있다. 사라져 가는 아름다움에 대한 애틋한 공감의 미학. 치앙마이에서 부모님과 함께한 요가는 내게 ‘모노노 아와레’를 가장 선명하게 느끼게 해 준 순간이었다. 다시는 오기 어려울 그 순간이기에, 빛나고 특별해서 약간의 슬픔도 느껴졌다. 하지만 그 순간이 다시 오기 힘들다고 해도 괜찮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이 내 안에 남아, 앞으로의 일상에서도 나를 단단히 지탱해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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