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미약과 함께 시작한 빠이 여행

<아이들과 함께 떠난 치앙마이 2주 여행> 9편

by 최성희

“빠이에 꼭 가야 할 것 같은데, 아이 둘 데리고 가는 게 맞을까?”라고 남편에게 물었다. 치앙마이 여행을 고민했을 때처럼 남편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가자”라고 답한다. 여행을 다니지 않고 집에만 있어도 아무 문제없는 평온한 남편이지만,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게 힘을 주는 사람. 사전정보가 별로 없어 겁도 없이 가보자고 답한 거라는 걸 알지만, 난 이번에도 남편 덕분에 용기를 내 빠이 숙소를 예약했다.


빠이는 히피들의 천국, 배낭여행자들의 성지, 유토피아와 빠이의 합성어인 빠이토피아라고 불리는 곳이다. 치앙마이에서 북쪽으로 3시간 30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한다. 문제는 762개의 커브가 있는 산길을 넘어가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는 것. 가는 방법은 미니밴, 택시, 렌트(차, 오토바이), 이렇게 딱 3가지뿐이다. 2주의 치앙마이 여행 동안 중간에 부모님도 오시니 큰 차를 렌트해서 다닐까 고민도 했었지만, 태국은 한국과 운전 방향이 다른 우측 핸들이라 사고가 종종 있다고 해서 포기했었다. 택시는 거리가 먼 만큼 비용이 부담됐고, 우린 결국 저렴한 미니밴을 예약했다.


빠이로 가는 모든 여행객은 멀미약을 무조건 먹어야 한다고 했다. 미니밴에는 구토용 비닐봉지도 준비되어 있어 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단다. 여러 사람들이 타는 작은 버스에서 우리 아이들이 울지 않고, 토하지 않고, 얌전히 3-4시간을 갈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지만 걱정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무턱대고 미니밴을 예약해 놓은 것이다. 게다가 빠이에는 배낭여행객이 많기 때문에 배낭을 미니밴 위에 허술하게 올려 줄로 묶고 간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우리 네 가족의 캐리어와 짐들은 어떻게 실을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아무리 찾아봐도 아이 둘을 데리고 네 가족이 미니밴을 타봤다는 경험의 글이 없어 더욱 막막했다.


‘내일 걱정은 내일모레’하기로 하고 치앙마이 여행은 벌써 10일을 넘겨 끝나가고 있었다. 친정 부모님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라 공항으로 마중을 다녀온 늦은 밤, 빠이로 출발하기 바로 전 날 밤이 되어서야 빠이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알게 된 새로운 사실! 빠이에는 택시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뭘 타고 다녀야 하지? 알아보니 모두가 오토바이를 빌린단다. 그럼 아이들은? 또 알아보니 오토바이 뒤에 태우고 다닌단다. 우리 부부는 오토바이를 타본 적도 없지만 설사 탈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들을 뒤에 태우고 다니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다.


미니밴을 타고 빠이에 도착하는 게 다가 아니었다는 걸, 출발 전날 밤 10시쯤 깨닫고 우린 결국 차를 렌트하기로 했다. 미니밴 티켓은 취소가 불가능했지만 상관없었다. 다행히 그 시간에도 친절하게 상담해 주고 다음날 오전 10시까지 차를 호텔로 가져다준다는, 가격까지 아주 괜찮은 렌터카 회사를 찾았다. 계획형 J에게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한 순간들이었다. 급하게 우측핸들 운전 요령을 알려주는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오전 10시, 정말로 렌터카 한 대가 우리 호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혹시 몰라 우리 부부 둘 다 발급받아 왔던 국제면허증을 사용하게 되다니. 렌터카 직원에게 간단한 설명을 듣고 남편이 먼저 차를 끌어 호텔에서 가까운 약국으로 향했다. 우리도 예외 없이 멀미약을 사야 했기 때문이다. 약사는 성인용과 어린이용을 건네며 지금 바로 먹어야 효과가 있을 거라고 설명했다. 약국 앞에서 우리 넷은 비장한 마음으로 멀미약을 삼켰다. ‘빠이, 도대체 얼마나 힘든지 우리가 가고야 만다!‘

구세주와도 같았던 렌터카

우측핸들 차를 처음 끌어보니 나도 모르게 왼쪽으로 붙는 것 같고 사고가 날 것 같아 불안했지만 다행히 금방 익숙해졌고, 아이들은 태국에도 우리 차가 생겼다며 신나 했다. 커브길이 나오기 시작한 초반, 아이들이 차에서 낮잠에 들기 전에 작은 휴게소 같은 곳에 들렀다. 뒤쪽으로 작은 호수가 펼쳐지고 왠지 모르게 아늑하게 느껴지던 곳이었다. 도로 위 작은 카페 같은 식당에 머무르던 시간이 왜 그렇게 좋았는지 모르겠다. 친절한 직원과 따뜻한 컬러감의 내부 인테리어 때문일 수도 있고, 곧 만나게 될 빠이의 기운이 여기까지 내려온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빠이 가는 길, 좋은 쉼터가 되어준 ‘Hongmeang Cafe’

그 식당 이후로 본격적인 커브길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거기서부터는 내가 운전하기로 했다. 평소 차만 타면 멀미를 해서 잠을 자는 게 나은 우리 남편과 마침 낮잠시간을 맞이한 아이들은 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운전을 그리 어려워하지 않는 나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 762개의 커브길을 넘어갔다. 중간중간 고수 운전사들이 끄는 미니밴이 내 차를 앞질러 갔고, 오토바이를 끄는 서양인들이 힘든지 도로에서 쉬고 있었지만, 나는 나의 속도대로 쉬지 않고 꼬불길을 달렸다. 우리나라 대표적 꼬불길인 대관령을 몇 번 넘어봐서일까, 생각보다 갈 만했고 멀미약 덕분인지 속도 괜찮았다.


그렇게 해서 무사히(?) 도착한 빠이는 그냥 강원도 깊숙한 곳에 있는 시골마을 같은 느낌이라 몸빼바지를 입은 구수한 할머니들이 떠오르는 곳이었다. 그런데 노란 머리 젊은 서양인들이 어디서 그렇게 많이 모였는지, 모두 오토바이를 끌고 다니고 있었다. 우리 숙소에 차를 주차하고 체크인을 하러 가는데 맞은편에 10대처럼 보이는 서양 아이들 30명 정도가 초록 정원에서 웃으며 무리 지어 뛰어놀고 있었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장면들이 펼쳐질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궁금해서 어떤 곳인지 찾아보니 종교 관련 장소였다)

오토바이 천국

치앙마이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 낯설지만 궁금하고, 나랑 어울리지 않은 곳 같으면서도 편안하게 스며들었던 빠이. 그곳에서의 2박 3일은 너무 짧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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