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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반숙란 Mar 21. 2024

40대 아줌마 승무원과 MZ승무원이 비행하면?

퇴사자 인더하우스

20대 초반에 입사해 비행을 했던 내가, 이제 40대가 되었다. 최근 입사하는 신입 승무원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엄마 미소 같은 거. 어딘가  어색하고 서툰 듯한 모습이 나에겐 싱그러움으로 보일 만큼 나도 나이를 먹었다.  


내가 항공사에  입사했을 때, 승무원 입사 교육은 다소 야만적(?)이었다. 입사를 하면 일단 휘어잡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고, 교관들은 혹독하게 경위서로 압박했다. 교육이 끝이 아니었다. 비행은 실전이었다. 신입이니까 실수하고 못하는 건데, 울화통 터진다는 표정으로 화내고 혼내는 선배라도 만나면 혼이 나가버려 안 하던 실수까지 하곤 했었다.


10시간 넘는 뉴욕을 걸어가 내 처지 같았던 노래. "길"




 ㆍ 장거리 비행을 가게 되면, 승무원에게는

해외에서의 체류 시간이 주어진다. 관광지를 방문하기도 하지만, 쇼핑몰에서 구경하고 식사 해결하기도 한다. 비슷한 시간대에 움직이기 때문에 호텔에서 제공하는 쇼핑몰 셔틀버스를 타면 선배들을 마주친다. 뭐 샀어? 뭐 샀어? 꼬치꼬치 물어보는 선배가 꼭 1명은 있었다. 보따리상처럼 주섬 주섬 쇼핑백 안에 물건들은 보여주는데, 조금 더 디테일한 설명을 원하는 선배에겐 쇼핑 목록 및 이유까지 덫붙여서 설명을 해주었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는데, 어느새부턴가 후배들의 쇼핑백이 매우 궁금해지기 시작하자, 선배들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은 친구들이 찾는 아이템에 대한 호기심과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사람이 되 싶은  마음.


그 당시에도 세대차이로 인한 웃픈 에피소드는 있었다. 가수 세븐이 탑승했던 날이었다. 세븐은 남자 솔로 가수로 지금의 임영웅 못지않은 인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승무원들은 Special handling 해야 하는 승객 정보를 미리 브리핑 때 공유를 하고 있어 세븐이 탑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같은 갤리를 쓰는 선배는 세븐의 광팬이어서 오늘 비행이 너무 설렌다고 했다. 세븐의 좌석은 B747 항공기 Upper deck(2층)에 배정이 되었다. 손님이 거의 탑승했을 시점, 세븐이 너무 궁금했던 선배는 2층 올라가서 다른 선배에게 물었다.



“선배님! 혹시 세븐 탑승했어요?” 선배는 대답했다.


“아~ 지금 세분 말고, 다섯 분 탑승하셨어.”


이 얘기를 듣고 배꼽 잡고 웃다. 나도 세븐을 모르는 선배를 보며 웃었던 신입 승무원이었는데, 지금은 40대 아줌마 승무원이다. 마음만은 MZ라서 어설프게 MZ인 척을 하다가 부끄러운 상황이 생기기도, 세대 차이가 생각했던 것보다 커서 놀라기도 한다.






#1. 할말하않


할말하않은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다”의 줄임말이에요 선배님. 여기까지 할말하않의 뜻을 머릿속에 입력한 나는 언제 한번 자연스럽게 신조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할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딸이 너무 좋아하는 세븐틴이라는 가수가 후배 승무원의  친구라는 소리를 들었다. 마침 그 후배가 쇼업할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고, 퇴근길에 만나서 사인 한 장 받을 수 있는지 여쭤보려던 참이었다.  문자를 넣어도 답장이 없어서 그냥 퇴근하는 길이었는데 후배는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선배님"


운전을 하는 중이라, 사실은 세븐틴 때문에 연락을 했다는 말은 직접 보고 얘기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얼마 전에 학습한 할말하않이 생각났다.


"~~ 씨, 할말하않."

(운전 중이니 지금은 다 말하지 않고 다음에 만나면 얘기를 할게요)라는 의미였다.



 할말하않이 부른 대참사는 그 후배의 반응을 보고 어딘가 잘못됐다 싶었다.


그리고 다시 검색을 해더니 비꼼의 뉘앙스를 넣어 사용한다는 뜻이라는 걸 알고, 아차 싶었다. 어설프게 젊어 보이는 척을 하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경험을 하고선,

다시 만난 후배에게 사과를 했다.



#2. 퇴사자 in the house? 퇴사자는 이제 집에 있는다는 뜻인가요?


80년 생이면 아는 태사자 “도”라는 노래가 나왔다.

너무 익숙한 이 노래~

“Ah-Yeah 태사자 In The House Uh

Check and turn to the back into the back.”




옆에 앉아있던 친한 후배에게  혹시 이 노래 알아요? 물어봤다. 이 노래쯤은 유명해서 알고 있을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물어본 질문이다. 후배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처음 들어보는 노래라고 했다.


그럴 리가.

내가 직접 불렀다.

“아~~ 예 태사자 인더하우스. 정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어요?"


그러자 후배는 곰곰이 생각해 보는 듯했다. 그러고 나서 대답했다.


“선배님, 퇴사자 인더하우스라는 말이 혹시 퇴사자는 집에 있다. 이런 뜻인가요?”


어설프게 세대 차이를 줄이려는 시도는

이제 다시 하지 말자. 다짐했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우리에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1.     All together의 문화가 없어짐

 비행을 가면 선배 들와 함께 니는 문화가 있었다. 심지어 일본에서는 사우나도 함께했다. “저 오늘 그날이에요.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적인 센스가 있는 사람은 빠져나갔을 텐데 나같이 순간적으로 둘러대는 걸 잘 못하는 사람은 "네, 몇 시까지 갈까요?" 란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선배랑 홀딱 벗고 사우나를 했다, 지금 후배에게  사우나를 같이 가자고 먼저 얘기하는 순간 블랙으로 낙인찍히고, 블라인드에 이름이 도배가 될지도 모르겠다. 나도 지금이 좋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편하고 그것이 더 배려와 존중의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이 더 좋다.  



2.     유행보다 취향 찾기의 달인들

요즘 후배들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내가 20대 때  찾지 못했던 본인들의 취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 자기의 삶을 아기자기 하게 디자인하고 다채롭게 살아가는 모습들이 멋있게 느껴진다.



3.     당연한걸 당연하게 만드는

개근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아버지는 아파서 학교를 안 가는 게 말이 되냐며 쓰러져도 학교에서 가서 쓰러지라고 했다. 나는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것을 배운 적이 없다. 아플 때 병가를 쓰지 못했다. 돌아오자마자 응급실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비행을 갔는데, 요즘 후배들에게서 나는 배우지 못한 나를 아끼는 법을 배운다. 정말 아프면 아프다고 하는 것 그리고 내 몸을 회복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법을 알게 되었다.


현재의 즐거움과 행복을 능동적으로 찾을 줄 아는 법을  내 나이 40이 넘어서야 조금씩 알아가는데, 그들에게는 경험해 보지도 않고  아는 스마트함이 있다. 회사가 아니라면 함께 어울리기 힘들었을 그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 40대 아줌마는 복하다.


함께 근무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업무와 서로의 다른 하늘에 있다.  비행기 안에도 십 년이 지나면 변한다는  강과 산을 건너 서로가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들이 있기에 행은 힘들지만 여전히 즐겁다.






비록 신조어 사용은  포기했지만, 내가 아는 라떼어를 알려줄까 한다.



OTL 좌절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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