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크리스마스 일기
숨죽인 그 곳에도 크리스마스는 있다
무료하기 짝이 없어서 집을 나왔다.
입소문난 미디어파사드를 직접 보고 싶어 버스를 탔다. 버스 안이나 버스 밖이나 연말의 설레임이라곤 전혀 없는 무채색 풍경이었는데 명동에 도착하니 서울 사람들은 여기 다 온건지 체감온도 -21에도 굴하지 않고 인산인해를 이룬 그 곳엔 마치 거대한 검은 섬이 생긴 듯 했다.
우리은행 ATM은 사진 찍기 좋은 명소가 되어서 귀엽게도 그 뒤로 둘씩 짝지은 줄이 길게 늘어서있었다. 만일에 대비하여 기동경찰이 있었지만 시민들은 알아서 적당히 찍고 다른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며 질서를 지켰고 그 모습이 왠지 훈훈했던. 코로나가 집단 의식을 향상시켜 이런 부분까지 알게 모르게 업그레이드 된걸까.
ⓒ2021. 냉장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라도 내볼까 싶어 마감 시간 북적북적한 백화점 지하에서 롤케잌 한 조각과 까눌레 하나를 샀다. 백화점과 연결된 회현 지하상가에는 횡단보도 대신 이 곳을 통해 이동하는 인파로 가득했다. 계단을 올라와 저마다의 추억을 남기려고 여념이 없는 사람들과 탄성을 자아내는 스펙타클한 미디어의 향연을 바라보다가, 보았다.
그 화려함의 옆에는 사실 아무도 모르는 또 다른 지하통로가 있다.
눈 감고 입 닫은 듯한 장소.
누런 불빛을 따라 들어가면 완전히 대조되는 풍경이 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거의 한 명도 없는 이 곳에는 박스로 지은 집들이 열을 지어 누워있다.
가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가운데 기둥 사이에 가지런히 모여있다.
ⓒ2021. 냉장고.
지상과 너무나 대비되는 모습에 숙연해진 마음으로 그 모습도 몇 장 남겼다.
그러다 어떤 분과 눈이 마주쳤는데 죄책감과 불안함에 황급히 눈을 피해 지나가려다가-
올라가는 계단에서 그 얼굴이 아른거려 뒤돌아 다시 걸어갔다.
종이 봉투에서 롤케잌을 꺼내면서.
받는 입장에서 혹시나 기분이 상할까 최대한 정중하게 케잌을 내밀었는데
몸을 일으키시더니 더 정중한 자세로 받으시는.
호의가 호의로 받아져 고마운 마음이 들고.
꾸벅꾸벅 서로 멋쩍은 인사를 하고.
까눌레는 몇 발자국 옆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연신 기침하는 분 옆에 두고 왔다.
ⓒ2021. 냉장고.
애초에 케잌은 내 것이 아니었구나.
빈 봉투를 접어 호주머니에 넣고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 선 그 때가
오늘 중 가장 크리스마스 같은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