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카페 공간에 대하여

개인적인 고찰로 풀어보는 괜찮은 카페의 공간적 조건

by 냉장고





긴장을 풀어야 하는 곳이므로 조도가 너무 높지 않은 것이 좋겠다. 커피의 색도 음미의 대상이 되는 시각적 요소이므로 커피색이 잘 드러나는 색상의 컵이 좋다. 밝은 무채색. 베이커리를 굽는 냄새가 동반되면 커피 맛이 한결 고소해지는 효과를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면 좋다. 커피를 추출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기다리는 시간도 하나의 경험이 될 수 있도록. 불쾌한 소음이 나는 머신과 주방 수전은 되도록 숨겨놓는 게 좋다. 좌석 사이의 간격은 되도록 널찍이 떨어지는 게 좋으며 고립되는 자리는 없도록 한다. 꼭 수용 인원을 늘려야 한다면 개인 공간이 확보될 수 있는 작은 장치를 두면 어떨까. 코로나 때문에 생긴 파티션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답답할 수 있으니 머리 위 정도까지만 막아주는 투명한 소재의 파티션. 코로나 상황이 아니라면 눈높이 정도의 혹은 그보다 낮은 것으로. 이를테면 어릴 적 둘이서 같이 쓰는 학교 책상 중간에 필통 등을 올려두어 금 넘어오지 말라고 표시하는 것처럼 부담스럽지 않은 제스처를.


조명은 직부등보다는 간접 조명을 쓰고 은은하게 투과되는 펜던트 등을 여러 개 배치하는 것이 좋다. 공간 전체에 다양한 조도가 분포하도록 하면 공간이 지루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겨울엔 공간이 따뜻해 보이도록 패브릭을 활용한다. 러그, 커튼, 쿠션이나 방석을 적절한 곳에 두면 아늑함이 더해져 마음이 안정될 것이다. 살균 유지는 기본.


노래가 빠질 수 없다. 공간이 좋아도 어울리지 않은 노래나 무성의하게 최신 가요 인기차트만 틀어놓는 곳은 바로 빠져나오게 된다. 무난한 재즈음악이 좋더라. 공간 전체에 조용하게 분포되어 말소리는 지긋이 덮어주고 적당히 활력을 줄 수 있도록. 웅성웅성 말소리가 울리는 공간을 개인적으로 싫어한다.

언젠가 흡음재를 천장에 설치한 카페에 간 적이 있는데 음악도 깔끔하게 들리고 사람들의 대화 소리도 조용해서 매우 쾌적했던 경험이 있다. 여력이 된다면 꼭 흡음재를 설치해주십시오.

테이블은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릴 때 흔들리지 않도록 들뜨지 않아야 한다. 바닥이 기울어져 있다면 다리를 보강해서 고정시켜두자. 의자 역시 마찬가지. 사소한 것이지만 이런 디테일이 카페의 인상을 결정하는 비중이 꽤 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화장실, 이건 그 카페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화장실의 공간에 얼마만큼 공을 들이느냐에 따라 운영자의 경영 의지와 철학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커피를 마시다 보면 화장실에 한 번은 가게 되는데 카페 안에 화장실이 없어서 건물의 다른 출입구로 들어가 외딴곳에 떨어진 화장실 문을 열었을 때 차가운 형광등 불빛과 불쾌한 냄새가 맞이하면 현타를 세게 맞게 된다. 모름지기 카페에서의 경험이란 멀리서 외관을 보면서부터 시작되어 들어가 커피를 주문하고, 마시고, 화장실도 한 번 다녀오고, 마침내 카페를 나서는 순간까지 같은 흐름을 유지해야 하는데 나쁜 화장실의 경험은 나의 기부니를 중간에서 뎅겅 잘라버린다.


그럼 어떤 화장실이 좋은 화장실일까?

따뜻한 물이 나와야 한다. 사실 다른 게 부족해도 이거 하나면 호감이 급상승인데 경영상 가장 큰 부분을 양보한 것이기 때문. 온수기 작동을 아끼려고 찬물만 나오는 곳이 대부분인데 따뜻한 물이 콸콸 나오는 곳에서는 충분한 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화장실은 더욱더 간접조명을 설치해야 한다. 숨기고 싶은 행위를 하는 공간이므로 밝을 필요가 없고 오히려 약간 어두운 게 좋다. 그러나 외모를 점검하는 곳이기도 해서 거울 주변으로는 밝게 할 필요가 있는데 음영이 많이 지지 않고 고르게 밝을 수 있도록 조명 각도에 신경을 쓰자.


하나 더, 따뜻해야 한다. 추운 계절에는 전기난로나 온풍기를 가동하도록 하자. 바지를 내리고 생살을 드러내는 곳이다. 무방비 상태에서는 온기가 더 필요하다. 특히 변기에 살이 닿을 때 따뜻하게 안착하는 감각이 아주 중요하다. 찬 변기에 앉으면 실제 위생상태와 관계없이 약간 불결하다는 느낌을 동반하게 되는 것 같다. 히팅 시스템 있는 변기 좋아요.

마지막으로 화장실에도 음악이 나오면 좋다.
적막한 곳에서 나의 지극히 사적인 소리가 퍼지는걸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인데 작은 소리라도 있다면 심리적으로 같이 묻어간다는 느낌이 있을 것이다.

화장실 얘기가 가장 길었다. 더 할 수 있지만 다시 매장으로 돌아오면, 다양한 형태의 자리를 만들어서 취향껏 골라 앉을 수 있는 게 좋다. 버리듯이 만들어 놓은 공간은 없어야 한다. 애매한 위치에는 아예 자리가 없는 게 낫다. 그래도 놓아야 한다면 그 자리엔 특별히 조명이나 소품으로 신경을 써서 매력적인 자리가 되도록 해야 선택받는 공간이 될 것이다. 가구는 모조리 같은 것을 쓰기보단 톤과 디자인 스타일은 비슷하지만 약간 구별되는 것들로 베리에이션 해서 통일감은 살리고 지루함은 덜어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 특히 딱딱하고 불편한 조형물 같은 의자 말고 편안하게 착석할 수 있는 기본 기능을 만족하는 의자를 놓아주십시오.


서비스 테이블은 모두가 찾기 쉬운 곳으로, 어디에서나 비슷한 거리에 당도할 수 있는 위치에 두면 편리하겠고 냅킨이나 물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 테이블과 사용한 컵을 두는 리턴 테이블은 분리하는 게 좋겠다.


두서없이 적어 본 괜찮은 카페의 공간 분석인데

사실 다 필요 없고 커피가 맛있으면 된다.

아니 그것도 필요 없고 방석 위에 낮잠 자는 고양이 한 마리만 있으면 좋은 카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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