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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의 박미경 선생님들께

내가 쓰고픈 이야기

by 해나


작가이며 독자로


하루에 출간되는 책은 몇 권이나 될까?

한 달에, 1년에, 우리나라에서, 또 세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책들은 몇 권이나 될까?

작년 한 해 출판되어 서점에 깔리고 읽힌 책들은 또 얼마나 될까?


그 많은 책들과 이야기들 속에서 나는 또 어떤 글을 쓰고 더하려는 걸까?





전문적이고, 서정적이고, 아름답고, 감동적이고, 교훈적이며, 재미있고, 유쾌하고, 명쾌한 책들이 쏟아지고 있는데 구태어 내가 또 한 줄 보태려는 이유는 뭘까?


어젯밤 늦게 브런치를 서성이다 우연히 보게 된 작가의 글을 30여 편을 읽다 보니 내가 글을 써야 할 이유가 더 무색해졌다.


굳이. 만다꼬.


좋은 글, 내 구미에 이렇게 잘 맞는 글을 찾아 읽는 독자의 편으로 기우뚱. 쿵.







나의 박미경 선생님



중학교 때 나에게는 펜팔 친구가 있었다.

박미경 선생님. 특활시간 컴퓨터부로 강제 차출 되는 바람에 선생님이 계신 문예부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더니 답장이 왔다.

나는 또 답장을 썼고, 선생님이 또 답장을 쓰며 그렇게 계속되는 핑퐁 편지의 속도는 점점 빨라져 이젠 매일매일의 일기 같은 편지를 주고받게 되었다.


그때도 신이 났을게다.

어쩌면 편지를 쓰기 위해 하루의 각본을 만들 만큼.

그러던 어느 날,

내 이런 쫑알거림이 귀찮으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선생님이 나에게 써 주신 답장,



"언제든 지혜가 원할 때 옆에서 들을게.

난 쓰레기통이야! 나한테 편하게 버려줘. 쓰레기통은 골라서 받지 않아. 지혜 마음이 담긴 글이라면 어떤 감정도 좋단다. 편하게 보내렴"



그리고 글 밑으로 쓰레기통과 그 옆에 던져진, 구겨진 종이가 그려져 있었다.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떠올릴때 마다 기도가 뜨거워진다.


기꺼이 내 감정 쓰레기통이 되어주시겠다던 선생님.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다음부터 선생님이 어려워졌던 것 같다.

아무렇게나 버릴 수 없게 되었다.


지금도 내겐 몇몇 박미경 선생님들이 있다.


나를 알아서

나를 사랑해서

어떤 이야기라도 들어줄

읽고 공감해 주는 박미경 선생님들이 있다는 게

새삼 고맙다.





내가 쓰고 싶은 글 이야기


어쩌면,

그래서 글 쓰기가 더 두려운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 정돈되지 않은 감정과 여과되지 않은 생각들의 분리수거만은 시키지는 말아야지 하는 마음이 그들에게 지키고픈 내 최소한의 예의다.


이 글을 읽는 모두가 나의 박미경 선생님이 아니기에 여전히 두려운 마음으로,

그리고 언젠간 나의 박미경 선생님이 되어줄 독자들을 위한 고마운 마음으로.



그렇게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오늘"이다.





지나가는 풍경 속에

지나가던 한 솔 바람

곧추세운 한 낱 줄기.






어느 자리에서나 어떤 높이에서나

살아내는 오늘,


특별하지 않아 특별한

오늘

그곳에 머문 나만의 시선을 쓰고 싶다.



오늘 나의 이야기고,

오늘 내가 하고픈 이야기지만


내일 읽어도 좋은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어제가 생각나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조금 특별한 한 조각을 베어 물고는

배시시 웃을 수 있는 이야기면 더 좋겠다.



대성당의 마지막 문단처럼

눈을 감고서야 보게 된 것들.

어딘가에 있지만, 어디 안에도 있지 않는

조용히 존재하는 것들의 자유로움이

오늘의 내 이야기였으면 좋겠다.






덧,


단 하나의 글만을 남겨 둔다면,

그 역시 오늘일테니

나의 오늘이

내가 남겨둘 단 하나의 글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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