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북포구
장소 : 화북포구와 별도봉 사이에서 바라본 제주항
제주항에 붉은 노을이 짙어지면, 먼바다에서 철새들이 하나둘 제주항을 향해 날아온다. 긴 비행 끝에 그들은 한라산 중턱에 있는 보금자리를 찾아가기 전, 제주항 앞바다에 솟아 있는 바윗돌 위에 내려앉아 잠시 날개를 접는다. 파도 소리와 노을빛이 어우러진 그곳은, 하루의 이야기를 풀어놓기에 더없이 좋은 자리다.
철새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오늘 겪은 일들을 나눈다.
한 철새가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먼바다까지 나가 봤지만, 집채만 한 파도가 거세게 몰려와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어.”
그러자 다른 철새가 웃으며 말을 잇는다.
“나는 동쪽에 있는 어느 항구에 다녀왔어. 어선들이 가득해서, 그물에서 이리저리 튀어나오거나 가끔 어부들이 던져주는 물고기를 배부르게 먹고 왔지.”
또 다른 철새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보탠다.
“어느 해안에는 길게 이어진 모래톱이 있었어. 처음 보는 곳이라 낯설었지만, 북쪽, 남쪽 등 사방에서 날아온 많은 종류의 철새들과 어울리며 재미있게 지내다 왔단다.”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시간은 모르는 새 천천히 흘러 붉던 해는 제주 바닷속으로 잠겨 든다. 철새들은 내일을 기약하며 다시 한번 날개를 펼친다. 그리고 노을이 남긴 여운을 등에 지고, 각자의 보금자리를 향해 조용히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