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by 해피피존

해외에 산다는 것은 생각했던 것 보다 어렵다.

이것은 마치 군대, 결혼, 출산와 비슷한 것 같다. 실제로 겪기 전에는 모른다.

아는 줄 알았지만 실제로 닥쳐보면 '아, 내가 아무것도 몰랐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반대로 시간이 지나보면 '아, 알고서는 이런 것들을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는 것들이기도 하다.

싱가포르 생활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서 직장을 얻고 와이프와 함께, 그리고 아이와 함께 사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일인 것 같다. 더군다나 아이를 해외에서 출산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혼자 있었을 때야 먹고 싶은 시간에 먹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운동을 갈 수 있었고, 몸이 조금 아프더라도 휴가를 쓰고 쉬면 되었고, 술이 생각나면 언제든지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먹을 수 있을 때 먹어야 하고, 갈 수 있을 때 운동을 가야하고, 몸이 아프면 병원 가서 영어로 설명할 생각에, 그리고 가족들에게 옮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예전보다 더 빨리 나아지는 것같다. 술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에 있었더라도 비슷한 변화를 겪었겠지만 해외에서 겪으니 왠지 모르게 더 큰 일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이 되면서 나는 이러한 경험들과 그 안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처음 시작은 나름 좋았다. 내 개인적인 상황과 생각들이 많이 들어간 글을 썼고,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감을, 나보다 조금 뒤에서 따라오는 어린 친구들에게는 희망을, 그리고 나 자신을 치유하는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3~4개를 쓰다보니, 나만의 특별한 경험이나 생각은 점점 사라지고 회차를 채우기 위한, 오직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글을 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가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한다는 핑계 삼아 4주 정도를 글을 쓰지 않았고, 그 기간 동안은 마음이 굉장히 불편했다. 나는 여기서 더이상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을 별거 아닌 것들로 치부해버리고 있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 쓰는 글인만큼 뭔가 대단한 주제를 가져와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고 있는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고, 앞으로는 더 짧은 글을 자주 기록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겪은 일들과 내가 배운 것들을 최대한 많이 공유하는 것을 지향한다. 내가 작성한 글들이 누군가에게는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시작해보고자 한다. 이 글은 "싱가포르 두번째 이야기" 작품의 마지막 글이지만, 나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새로운 다짐을 하는 첫번째 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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