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유목민은 도착 시간을 정확히 말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 도착 시간을 말하면 불운이 온다고 믿는다. 실제로 투어를 하는데, 항상 도착시간을 말해주지 않았다. “오늘 얼마나 가나요?” 라고 물으면, “430km 갑니다.”라고 답한다. 이게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답변이다. 한국인은 거리로 답하지 않고, 시간으로 답한다. 가이드의 대답을 듣고, 우리는 거리를 속도로 나눠서 시간을 구하곤 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유목민은 날씨, 장애물, 가축 등 영향을 받을 요소가 너무 많아서, 도착 시간을 예측할 수 없었고, 예측하려고 하면 되려 문제가 생겼더랬다. 날씨는 한 치 앞을 모르고, 길은 잘 닦여있지 않으며, 가축이 다쳐 시간이 지체되기 쉽사리 일 것이다. 자연이란 극복할 수 없으며, 인간은 그 앞에서 무력한 존재일 뿐임을 받아들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 환경적 요인이 유목민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항상 시간을 정해놓고 살아가는 문화에 익숙한 나에겐 매우 재밌는 문화였다. 심지어 투어를 할 때도 시간을 말해주지 않는다. 밥을 1시간 동안 먹고 돌아오라거나, 관광지를 구경하고 3시까지 오라거나, 이런 주문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나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관광지를 구경하면서도, 우리가 언제까지 가면 되는 거지? 너무 가이드를 기다리게 만드는 건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우리 가이드님이 좋으신 분이셔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도 내색하지 않고 가만히 기다려주셨다. 우리는 그냥 느끼고 싶은 만큼 느끼고 출발하면 되는 것이다. 그 자유로움은 여행에서 많은 여백을 만들어주었다. 욜링암과 바가 가즈링 촐로는 너무 아름다웠고, 자주 발길을 멈추게 했다. 눈에 담고 싶어도 담기지 않아서, 오랫동안 머물러 충분히 바라보았다.
이렇게 여행하다 보니 문득, 시간을 지키는 게 서구 문명의 산물임을 깨달았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인간이 발견한 것인지, 아니면 발명한 것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시간을 지키는 삶은 발명해 낸 게 틀림없다. 우리에게 시간은 아주 당연한 것인데, 몽골 여행을 하다 보니 그게 당연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오히려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시간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예부터 인간은 자연 앞에서 무릎을 꿇어왔는데, 이제는 모든 것을 극복하려고 하고 있다. 지하철이 정시에 오지 않으면 화내고, 뛰어가서 맞춰서 타려고 하고, 이 모든 건 시간을 통제하려는 욕구이다. 망각하면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삶은 “부조리”하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열망에 세계는 다르게 반응한다. 마치 정해진 어떤 규칙이 있다고 믿을 때, 세계는 보기 좋게 균열 내곤 한다. 그게 인간의 조건이다. 알베르 카뮈는 이야기한다. 부조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하며, 극복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우리는 보통 문명인에 대한 동경이 있지만, 때때로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선조들의 지혜를 더듬어볼 필요가 있다. 몽골 유목민에게서 세계의 부조리함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지혜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