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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등과 부득호사(少年登科 不得好死)

by 행복한 시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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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공부 끝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1년 만에 시험에 합격했다면 어땠겠냐고. 친구는 스스로가 너무 꼴 보기 싫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어느 정도 정설이라 믿게 된 고사성어가 있다. 바로 소년등과 부득호사(少年登科 不得好死)이다. 어릴 적 과거에 급제하면 결국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는 의미이다. 다소 의역하면, 조속한 성공은 불행을 낳는다는 것이다. 격언을 진리로 치부하길 꺼리지만, 이 격언은 굉장히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살아가면서 이 가설의 검정력을 올리는 귀납적 근거를 많이 발견했다.


왜 소년등과 하면, 부득호사 할까. 이 인과관계는 왜 일리 있을까. 여러 근거가 있을 것이다. 주변의 시기 질투를 받는다거나, 성숙도에 맞지 않는 지위를 누려 힘에 부친다거나 하여, 거창한 시작과 맞지 않게 미미한 결말을 맞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가장 주목하는 근거는 “실패 없음” 이다. 실패하지 않고 성공만 해온 삶은 위험하다. 사람은 마땅한 실패를 겪으며 성장해야 한다. 마땅한 때에 실패하지 않은 사람은, 과도한 자신감, 특별한 인간이라는 착각, 능력에 대한 과신을 가진다.


정말 노력과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가? 자신에 대해 그렇다고 답하는 것은 위험하며, 타인에 대해 그렇다고 답하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삶은 우연의 연속이고, 부조리하다. 나의 국적, 부모님, 유전자부터 삶의 사사로운 사건 대부분이 우연이다. 인간의 열망을 세계는 보기 좋게 부숴버린다. 자신이든,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든 언젠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때 스스로와 주변인을 위로할 수 있어야 한다. 단지 노력이 부족했다고 타이른다면, 이는 조속한 성공으로 삶의 본질을 심히 잘못 파악한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는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주 다행히도, 조속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성인이 되고, 경제학도 전공하고, 프로그래밍도 배우고, 철학도 배우고, 교육에도 종사하며, 다양하게 시도하고 실패하며 살고 있다. 아마 앞으로 몇 년간 더 실패하며 지낼 것이다. 삶은 길고, 사람은 실패를 먹이로 하여 성숙해진다. 실패하고, 충분히 아파한 다음에, 즐겁게 성숙해진 나를 맞이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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