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무새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니.

딸들한테 화내고 나서 씁니다 1.

by 소년의 초상

작년 여름, 첫째 여름방학 때 나와 단 둘이 앵무새 카페에 간 적이 있다.


둘째는 어린이집을 다니니 방학이 일찍 끝나서 먼저 어린이집에 등원을 시켰다. 한참 둘째가 말을 안 듣고, 망나니처럼 굴 때라서 첫째는 둘째와 함께 다니기를 싫어했다.


그래서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첫째는 나에게 귓속말로 본인의 명확한 의사를 전달했다.


"아빠, 앵무새카페가 있대. 거기 둘째 어린이집 등원시키고, 아빠랑 둘이만 가자. 둘째 놔두고 아빠랑 나만 같이 가는 거야. 알겠지?"


'오호라. 알겠다. 진심으로 함께 다니고 싶지 않았구나... 아빠가 몰랐다. 혼자 제대로 놀고 싶은데 둘째가 난리 치면 부모님이 그걸 수습해야 하니까 첫째의 아쉬움이 많았겠구나.'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둘째가 먼저 등원을 했다. 첫째와 나는 곧바로 앵무새 카페로 데이트를 하러 갔다.


처음 가보는 곳인데 사장님이 되게 독특했다. 사장님은 1992년작 '나 홀로 집에 2'에 출연하는 비둘기 아줌마처럼 생겼었다. 배우 이름은 브렌다 프리커, 1990년에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도 받았던 배우이다.

비둘기 아줌마

앵무새 카페 사장님의 생김새도 생김새지만, 앵무새들이 카페 사장님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니, '와 보통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결제를 마치고 자리에 앉으니 사장님은 우리에게 새끼 앵무새들을 소개해주었다. 해바라기 씨도 구매를 했기 때문에 밥도 주고 시간을 적절히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첫째는 새끼 앵무새들 보다도 덩치가 큰 앵무새들에게 관심이 있는 듯했다.


물론 아빠가 용기를 내어서 딸 손을 이끌고 먹이를 주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이 맞지만, 난 정말 새가 싫었다. 앵무새 카페에서도 팔짱만 끼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비둘기도 싫어했다.


그래도, 힐끔힐끔 쳐다만 보고 있는 딸이 짠해서 아빠가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첫째에게 해바라기씨 한 개를 빌려 용기 있는 모습으로 하얗고, 부리가 큰 앵무새에게로 갔다. 첫째는 따라오지도 못하면서 뒤에서 짐짓 소리를 쳤다.


"아빠, 조심해! 물어!, 조심해! 피나니까!"


말리진 않는구나. 그래, 아빠가 가보겠다.


카페 사장님이 갑자기 다가오더니 그냥 손바닥에 먹이를 두고 있으면 손은 안 물고 먹이만 잘 가져간다고 일러주었다.


그대로 해보았더니 큰 앵무새가 부리 속에서 혓바닥을 날름 꺼내 해바라기씨만 쏙 가져갔다. 와 신기했다.


해바라기씨를 더 가져와서 하얀 앵무새에게 계속 주었다. 계속 잘 받아먹었다. 너무 신비로웠다. 괜히 비둘기 엄마가 있던 것이 아니다. 분명 신비롭고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첫째가 용기를 내었다. 아빠와 함께 조그마한 손으로 먹이를 주자, 하얀 앵무새는 아주 야무지게 잘 받아먹었다. 앵무새는 첫째 근처로 내려와 앉아, 계속해서 얌전히 받아먹었다. 그렇게 첫째는 1시간 30분 동안 먹이를 주었다.




그 당시 정말 재밌었던 기억인지 첫째는 6개월 동안 앵무새 카페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귀찮아서, 아니면 날씨가 좋지 않아서, 아니면 날씨가 좋으니 밖에서 놀자며, 어떻게든 이유를 만들어서 앵무새 카페를 가지 않았다. 나는 새가 싫기 때문에 가기 싫었다.


그럼에도 첫째는 이번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부터 나의 귀를 또 귀롭혔다.


"아빠, 둘째 몰래 꼭 앵무새 카페 가자. 갔다가 고기에 밥도 먹자. 알았지?"

"아빠, 나 앵무새카페 꼭 갈 거야. 기억해야 해. 알았지? 첫날부터 가자."

"아빠, 하얀 앵무새 잘 있을까? 오전에 문 닫는다던데, 오후에 바로 가야 해. 알았지?"

"아빠, 오늘 전화해 봐. 그때 문 여는지. 몇 시에 여는지 확인해 봐."


아흐. 정말 괴로웠다. 눈만 뜨면 앵무새 이야기만 해대서 꼭 가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둘째의 방학이 먼저 끝났고, 나와 첫째만의 방학 데이트가 시작됐다. 곧바로 앵무새 카페로 돌격했다. 그곳엔 여전히 비둘기 아줌마가 있었다. 영화 은행나무침대 황장군처럼 그곳에 계속 그대로 있었다.


"어서 오세요~"

"아 예, 딸하고 여름방학 때 왔었는데, 6개월 동안 괴롭혀서 또 왔어요."

"아, 천천히 둘러보세요~"


첫째는 오랜만에 온 앵무새카페가 어색했는지 자꾸 몸을 베베꼬며 이상행동을 보였다. 해바라기 씨를 가져와서 새끼 앵무새들에게 모이를 주라고 해봤지만 도통 관심이 없었다.


오랜만에 와서 어색한가 보다 하고 있을 찰나, 딸아이가 하얀 앵무새에게로 갔다. 내게 먼저 모이를 줘보라고 말하며 자꾸 팔을 이끌었다. 내가 먼저 모이를 줘보니 첫째도 안심이 됐나 보다. 곧바로 하얀 앵무새에게 먹이를 주려고 까치발을 들었다.


그리곤 하얀 앵무새에게 이름을 불렀다.


"구름아~~ 밥 먹어. 오랜만이야~~"

하얀 앵무새 구름이. 엄청 크다. 부웅~ 날아다닌다.


이름이 구름이인가? 이상해서 비둘기 아줌마에게 물어봤다. 이름이 구름이가 맞단다. 첫째는 6개월 동안 하얀 앵무새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이 정도로 애타게 그리워했는지 몰랐다. 나는 새가 싫어서 어떻게든 오지 않으려 했었는데 우리 딸은 그저 구름이가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한 마음을 감추려 애써 해바라기 씨 봉지를 뜯어 투명한 원통에 다시 담아주며 "구름이 한테 편하게 밥 줘~"라고 말했다.


그렇게 첫째는 또다시 1시간 30분 동안 구름이에게만 밥을 주었다.




1시간 30분이 모두 지나고 둘은 앵무새 카페를 나와 근처 빵집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앉아서 초코빵도 먹고 달콤한 우유도 마셨다. 첫째는 여운이 남아있는 듯 보였다.


상기돼 있는 표정 속에서 여전히 구름이에게 밥을 주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는 듯 보였다. 정말 기특했다.


그런 첫째의 모습을 조용히 마주 보며,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어느덧 또 이렇게 자랐구나. 6개월 동안 앵무새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니. 아빠가 좀 더 신경 써서 잘해볼게. 용서해 줘~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