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 고결한 통치자의 삶이 담긴 문장들

by 임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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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은 로마 제국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전쟁터 막사에서 쓴 글이다. 애초 저술 목적으로 쓴 게 아니라 일기나 비망록처럼 쓴 글이므로 당연히 제목이 있을 리 없다. <명상록>은 후대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전쟁터 막사에서 세계 제국을 통치하는 황제로서 마땅히 해야 할(그러나 일부 황제들은 향락에 빠져 무시한) 격무에 시달리면서 어떻게 제국을 통치해야 하는가를,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사색하면서 이 글을 썼다. <명상록>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고결한 삶이 담긴 문장들이다.


서기 161년 양아버지인 안토니누스 피우스 황제가 죽자 마흔 살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로마 제국의 제16대 황제에 올랐다. 그는 스스로가 준비된 황제였다.


루스티쿠스로부터 훌륭한 인품을 갖추기 위해서는 그에 합당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함을 배웠다. 또한 그에게서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꾸민 거짓 이론에 속지 말 것, 막연한 추측에 근거한 글을 쓰지 말 것, 남에게 도움이 안 되는 훈계를 삼갈 것, 학식이 높다거나 수양을 닦은 사람인 양 과시하기 위한 선행을 베풀지 말 것 등을 배웠다.
※ 루스티쿠스는 스토아 철학자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어릴 적 교사 중 한 명이었다.


그에게서(세베루스로부터) 만인에게 평등한 법률을 바탕으로 한 통치철학을 정립할 것을 배웠으며, 만인에게 평등한 의사 표현의 자유, 권리 정신에 입각한 정치 이념 그리고 피지배자의 자율을 존중하는 것은 지도자가 지녀야 할 철칙이라는 것도 배웠다.
※ 세베루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가 총애했던 인물로 후에 제20대 로마 황제가 되었다.


그는 광대한 제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동생 루키우스 베르스와 공동 황제에 올랐다. 당초 원로원은 그를 단독 황제로 추대했으나, 그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두 명의 황제가 로마를 통치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는 권력과 쾌락보다는 이성, 정의, 선을 지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얼마 안 되는 유산을 두고도 가족 간 다툼이 치열한데, 그는 제국의 통치권을 동생과 과감히 분점했다.


세속적인 욕망에 마음을 빼앗기다 보면 진정 선하고 옳은 것을 외면하게 된다. 만인에게 칭송받고, 권력과 쾌락에 탐닉하는 삶에 길들여지게 되면 이성, 정의, 선을 지향하는 삶이 어려워진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세속적 욕망은 어느 순간 최고의 가치로 부상했다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뜨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꺼운 마음으로 선을 선택하고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 선만큼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은 없다.


루키우스 베르스 역시 선대 황제의 또 다른 양아들이었으니 두 사람은 친형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두 형제 황제는 우애가 두터웠고 제국을 통치하는 일을 슬기롭게 나눠 처리하였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 달리 동생이 8년 만에 요절하면서, 그는 19년 재위 기간의 절반 이상을 혼자 제국을 이끌기 위해 고군분투해야만 했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정치에는 온갖 이전투구가 많았으므로 그는 늘 다음과 같이 다짐하며 대화와 합의를 통해 어려운 국정을 해결해 나갔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라. "나는 오늘 하루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거만한 사람, 신의가 없는 사람, 시기심 많은 사람, 비사교적인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중략) 그들은 내게 상처를 줄 수도 없고, 그들의 죄악이 내게 영향을 끼칠 수도 없으며 나 또한 나와 같은 동류인 그들에게 화를 내서도, 미워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양손, 양발, 두 개의 눈꺼풀, 위 아랫니와 같이 상호 협조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로마 제국은 선대 황제가 재위한 23년 동안 유례없는 태평성대를 구가했지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즉위하면서 잇따른 자연재해, 전염병 창궐, 잦은 이민족 침입 등으로 제국 전역이 혼돈에 휩싸였다. 더구나 재해 복구와 전비 지출 등으로 국고 재정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혼돈과 위기를 해결하는 것을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으로 받아들여 이를 회피하지 않았다.


행복한 삶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원칙에 따라 성심성의껏, 열성을 다해, 다른 일에 한눈파는 일 없이 차분하게 완수하라. 마치 무언가를 고이 되돌려주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내면의 신성이 손상되지 않게, 그 무엇을 바라거나 두려워하지도 말고, 다만 하늘이 내게 맡긴 일을 해내는 데 만족하며 모든 언행에 거짓이 없다면 반드시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는 제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온몸으로 헌신했다. 수도 로마의 황궁에 칩거해 사치와 향락에 빠져 살면서 명령만 내릴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재위 기간 내내 불편하고 위험한 전쟁터 막사에서 힘들게 생활하면서 국방력을 강화하고 이민족과의 전쟁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재정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황실의 재산을 처분해 국고에 보태고, 막사에서 업무를 보다 틈틈이 수도 로마로 복귀해 중요한 국정을 처리하는 등 검소하고 성실한 삶을 살았다.


나는 로마인으로서 사랑과 자유, 정의감을 갖고 주어진 일을 진솔하고 성실하게 완수할 것이며, 모든 잡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리라. 앞으로의 모든 행동은 마지막 날인 듯이 행하리라.


그는 제국의 황제로서 해야 할 무수히 많은 격무에 시달렸지만 불평하지 않았다. 휴가를 떠날 겨를이 없을 정도로 업무가 많았지만 휴식이나 재충전을 위한 그만의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명상이었다. 이 책 제목이 <명상록>이니 후대 사람들이 책 제목을 제대로 붙였다.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산이나 해변, 또는 한적한 시골을 찾아 떠나는 사람이 있다. 이때 이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자신도 그들처럼 훌쩍 떠났으면 하고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이는 잘못 알고 하는 소리다. 알고 보면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자신의 내면으로 은신하여 휴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자신의 영혼이 거하는 내면보다 더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은 없다. 더구나 그곳에 들여다보기만 해도 즉시 평온을 되찾게 해주는 지혜가 담겨 있다면 더 이상 무얼 바라겠는가. 평온한 마음이란 잘 정돈된 마음이다. 그러니 이런 식의 휴식을 통해 재충전의 시간을 갖도록 하라.


그는 우리를 두렵게 하는 고통이나 즐겁게 하는 감각적 쾌락, 명예 등은 시간의 강을 따라 흘러가고 잊히는 덧없는 것이기 때문에 오직 현재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과거는 지나가 버렸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내게 주어진 것은 현재 밖에 없지 않은가.


비록 3천 년, 아니 그보다 열 배나 더 오래 산다 하더라도 결국은 내게 주어진 삶을 살다 갈 뿐 절대 덤으로 다른 인생을 살 수는 없다. 짧게 사나 길게 사나 결국은 마찬가지다. 현재라는 시각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졌다가 누구나 똑같이 그것을 잃을 뿐이다. 과거나 미래를 잃는 자는 누구도 없다. 지금 갖지 못한 것을 어느 누가, 무슨 수로 빼앗는단 말인가?


아마 황제는 이렇게 현재에 충실한 삶과 사유를 통해 '자연의 섭리'를 느꼈던 것 같다. 이것은 하이데거가 모든 존재자의 고유한 존재가 드러나는 '현-존재'로서의 인간의 경지인 듯싶다. 우리들 중 어느 누가 멧돼지의 입에서 흘러나온 거품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자연의 섭리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을 통해 우리는 뜻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면 노릇노릇 구운 빵의 껍질에는 균열이 있다. 제빵사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이처럼 균열이 생긴 빵은 식욕을 자극한다. 무화과도 무르익으면 열매가 갈라지고, 거의 썩기 직전의 잘 익은 올리브 열매에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있다. 무르익어 고개를 숙인 옥수수, 사자의 눈썹, 멧돼지의 입에서 흘러나온 거품,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것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미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고유의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감성은 누구나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 자연의 섭리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자만이 그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격무는 그의 건강을 악화시켰고 그는 서기 180년 도나우 전선의 병영에서 59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하였다. 그에게 있어 죽음은 "봄이 되면 장미가 피고, 여름이 되면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단순하고도 뻔한 일"이었다.


신이, "너는 내일이나 모레 죽을 것이다."라고 말하더라도 연연하지 마라. 비굴한 겁쟁이가 아니라면 거기서 대단한 차이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긴긴 세월을 살다 죽든, 내일 당장 죽든 시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통치자로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풍전등화 같았던 제국의 위기 상황을 잘 관리하였을 뿐만 아니라 후대 황제들에게 제국 통치의 모범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그는 삶에 지친 현대인들에게도 과거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쳐 버리고, 칭찬이나 비방과 같은 덧없는 외부 소리에 연연하지 말고 오직 현재와 자신의 내면에 집중해 진실되고 선한 삶을 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삶을 한 문장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는 이미 <명상록>에 답을 해 놓았다, 이렇게.


그들은(위대한 인간들은) 진실되고 초연하게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길을 가다가 떠날 준비가 되면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아무런 회한 없이 세상을 하직한다.




※ 이 글은 작가의 개인 블로그(blog.naver.com/happy-walker)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