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말의 의미에 대한 성찰

by 임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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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의 책 띠지에는 이 소설이 일본에서 유명한 문학상을 받았고 국내 전문가들이 추천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독자들은 이 띠지를 보고 이 책이 읽을 만하다고 느낄 것이다. 권위가 갖는 후광효과(後光效果, Halo effect)란 이런 것이다.


이 소설은 말의 권위와 의미에 대한 이야기이다. 평생을 괴테 연구에 바쳐 온 도이치는 가족과 함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 티백 꼬리표에 적혀 있는 괴테가 했다는 명언을 보고 놀란다. 자타 공인 일본 최고의 괴테 전문가인 자신도 처음 보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도이치는 이를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라고 해석했다. 지금까지 도이치는 '잼적 세계'와 '샐러드적 세계'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괴테를 연구해 왔다. 그런데 이 명언에 나오는 confuse(혼동하다)와 mix(뒤섞다)라는 단어가 각각 잼적 세계와 샐러드적 세계에 해당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명언은 도이치가 그동안 해 온 괴테 연구의 진수를 표현한 지언(至言)일 것이다.


평생에 걸친 자신의 괴테 연구가 괴테가 했다는 한마디 말로 압축될 수 있다니,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런지는 이 명언이 나오는 원문의 문맥을 확인해 봐야 알 수 있었다. 명언이 나오는 원문을 찾아야 했다. 더구나 명색이 일본 괴테 연구의 일인자인데 괴테가 어디선가 그런 말을 했겠지라며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종종 자기의 의견을 밀어붙일 때 유명한 사람의 말을 인용한다. 그것은 말의 의미보다는 유명 인사의 권위에 기대는 게 설득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독일 유학 시절 도이치의 하숙집 친구였던 요한도 비슷한 말을 했다.


독일 사람은 말이야. 명언을 인용할 때 그게 누구의 말인지 모르거나 실은 본인이 생각해 낸 말일 때도 일단 '괴테가 말하기를'이라고 덧붙여 둬. 왜냐하면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거든.


소설의 제목인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는 요한의 이 말에서 나왔다. 괴테가 모든 것을 말했다면 도이치는 이 명언이 진짜로 괴테가 한 말인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이치의 제자인 쓰즈키의 말처럼 한 인간이 모든 것을 말하기란 불가능하다.


도이치는 영화 <다빈치 코드>에서 로버트 랭던(배우: 톰 행크스)이 숨겨진 문서의 행방을 추적하는 것처럼 괴테 명언의 원문을 찾아 온갖 데이터베이스를 뒤지고 심지어 독일까지 날아간다. 비록 영화처럼 스릴이 넘치진 않지만 도이치의 원문 찾기의 집념은 로버트 랭던 못지않았다. 그런데 괴테 명언의 원문 찾기는 도이치의 스승이자 장인인 운테이 마나부의 한마디로 전기를 맞았다.


도이치. 괴테의 그 말 말이지, 자네는 그걸 찾을 수 있을 게야. 그 말이 진짜라면.


아니 이게 무슨 말인가? 괴테가 진짜로 그 말을 했는지 원문을 찾고 있는데, 그 말이 진짜라면 찾을 수 있다고? 갑자기 도이치에게 전에 없던 의문이 떠올랐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이 말은 진짜인가? 스승이 말한 '진짜'라는 건 무슨 뜻일까? 도이치는 스승의 말이 자신이 깨쳐야 할 화두처럼 느껴졌다. 결국 도이치는 TV 강연 프로그램에 나가 괴테의 말이라며 이 명언을 인용하고 말았다.


어떤 면에서 괴테는 자신의 '자기중심성'을 그 한계까지 포함해 인정했던 게 아닐까요? 그걸 전제로 모든 사람이 본연의 모습 그대로 이야기하는 세계를 <파우스트>라는 작품으로 압축한 거죠.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구제 불능의 산물이지만, 거기에 사랑이라는 띠를 둘렀습니다. 그는 실제로 이런 말도 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도이치는 이 명언이 괴테의 말인지 확증을 얻지는 못했지만 이 명언이 진짜라는 걸 믿었다. 그리고 "여러 차례 연습하며 입에 붙이는 과정에서 자연스러움을 획득하면 마침내 그 의미가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말은 전부 미래로 던져진 기도"이기도 했다. 이것이 도이치가 자신의 스승으로부터 건네받은 화두에 대한 해석이자 소설의 결말이었다.


이 소설은 술술 읽히지는 않는다. 학술 논문처럼 각주가 많고 인물들의 대화는 실생활에 흔히 쓰이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 다 읽고 나면 어 이게 왜 이렇게 끝나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괴테의 말인지 명확하지 않은데도 도이치는 왜 괴테가 한 말이라고 내뱉고 말았을까?


해를 등지고 있는 물체의 그림자는 그 물체의 실제 크기보다 훨씬 큰 법이다. 말도 누가 했는지에 따라 그 말의 무게감이 달라진다. 하지만 우리 앞에 실재하는 것은 물체뿐이다. 해가 없어도 물체는 존재한다. 말도 그 말이 진짜라면, 그 말이 진실이라면 누가 그 말을 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일 수 있다.


도이치는 스승의 말에서 깨달음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도이치는 애초 명언의 정확한 의미를 알기 위해 명언이 나오는 원문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도이치가 절실히 찾고자 했던 것은 명언이 실려 있는 원문보다는 명언의 정확한 의미였다. 그런데 스승의 말을 듣고 난 후 어느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닐까? 말의 의미, 그것은 그 말이 진짜라면 마침내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언젠가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가 혹은 우리의 삶이 진실하다면 억지로 드러내 그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정말로 진실하다면 언젠가 그것은 마침내 저절로 드러날 것이다, 주머니 속의 송곳처럼.




※ 이 글은 작가의 개인 블로그(blog.naver.com/happy-walker)에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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