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하루, 거룩한 일상

13. 올해 맞이하는 생일에 :

by 박인조

나이를 한 살 더 먹는 날로 새해와 생일을 생각하다 보면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잠깐 생각을 바꿔보면 어떨까요?

생일은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낸 ‘첫날’이고, 새해는 또다시 시작하는 한 해의 ‘첫날’이니, 이 ‘첫날’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설레지 않나요?


이날들은 삶의 의미를 되새기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 다짐하는 소중한 날입니다. 소소한 하루에서 거룩한 일상을 누리는 경험을 나누고 있는데, 이번에는 그 해의 유일한 하루인 생일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생일 케이크에 담긴 의미

생일에 빠지지 않는 한 가지가 케이크입니다. 생각해 보면 케이크는 단순한 음식이 아닙니다.

생일을 맞은 사람과 그의 인생 전체를 상징하는 특별한 존재이지요. 케이크의 둥근 모양은 각 문화에서 조화와 평온을 상징하듯, 인생의 조화를 의미합니다.


케이크의 달콤함 또한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데, 생일을 맞은 사람이 주위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소중한 존재임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케이크를 함께 나눠 먹는 것은 사랑과 존중의 표현입니다.

Sargent_-_The_Birthday_Party,_1885,_62.84.jpg 존 싱어 사전트, <생일 파티>(1885년)


무엇보다 케이크 위의 촛불은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초의 개수가 해마다 늘어나는 것은 단순히 나이가 많아짐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세상이 점점 더 밝아지고 따뜻해짐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생일을 축하하는 행위는 한 사람의 존재와 삶 그 자체를 기리고 축하한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의 특별한 행위나 업적 때문이 아니라, ‘태어났음’ 그 자체만으로 축하받는 날입니다. 이날에는 모두가 자신의 존재 가치와 소중함을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때로 나이가 들수록 생일이 예전만큼 반갑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젊을 때는 누군가의 축하를 기대하며 손꼽아 기다리던 날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달력 속 그 날짜가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초의 숫자가 늘어나는 만큼,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지켜 오신 모든 날의 총합이 그만큼 길다는 것을 기억해 보면 어떨까요?


초의 숫자의 무게보다 하나님과 함께 걸어온 날들의 깊이가 훨씬 더 값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일은 나이를 세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한 날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경 속 에녹의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2, 24).

에녹의 인생을 결정지은 것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이후 300년을 살았던, 삼백육십오 해라는 긴 세월이 아니었습니다. 그 세월을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나이의 길이가 아니라 동행의 깊이가 그의 생애를 빛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생일도 ‘내가 몇 살이 되었는가’를 세는 날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가’를 헤아리는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나이 듦을 생각할 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계속해서 변합니다. 그리스 신화에 이런 유명한 수수께끼가 나옵니다.

“아침에는 네 개의 다리로 걷고, 낮에는 다리가 두 개가 되고, 밤에는 다리가 세 개로 변하는 생물이 무엇입니까?”


스핑크스는 고대 그리스의 중요한 도시국가인 테베 성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던졌고, 대답하지 못하면 잡아먹었습니다.

어느 날 오이디푸스가 이곳을 지나다가 질문을 받고 정답을 말하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이었습니다. 생(生)의 아침인 어린 시절에는 기어다니느라 네 개의 다리로 걷고, 낮과 같은 청년 시절에는 당당하게 두 발로 걸으며, 인생의 황혼기에 해당하는 노년에는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 인간의 모습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Frederick_Daniel_Hardy_(1827-1911)_-_Baby's_Birthday_-_OP371_-_Wolverhampton_Art_Gallery.jpg 프레데릭 다니엘 하디, <아기의 생일>(1867년)


그런데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서 경험하는 변화는 신체만의 일이 아닙니다. 그것 못지않게 삶의 방식과 태도와 같은 내적인 변화도 일어나는데,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깊은 사고와 성숙한 인격이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군자삼변”(君子三變)은 『논어』에서 나오는 말로, 군자가 가져야 할 세 가지 서로 다른 모습의 변화를 가리킵니다.

첫째 일변(一變)은 멀리서 바라보면 엄숙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둘째 이변(二變)은 가까이 대하면 대할수록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겉은 엄숙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속은 따뜻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셋째 삼변(三變)은 그의 말을 들어볼 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언행을 하는 사람입니다. 즉 ‘군자삼변’이란, 외면의 엄숙함과 내면의 따뜻함에 논리적인 언행까지 더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군자의 권위는 지시하고 명령하며 항상 자기주장이 옳다고 고집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권위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태도와 그의 말을 듣는 경청의 자세, 그리고 먼저 수고하고 애쓰는 섬김에서 나타납니다.


진정한 노년의 아름다움이 여기에 있습니다. 멀리서 볼 때는 인격이 우러나고, 가까이에서 대할수록 편안하며, 대화를 나눌수록 지혜가 전해지는 사람이 바로 나이 듦의 열매를 맺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생일이 그 열매를 확인하는 날이라면, 나이 드는 것이 결코 초라하지 않습니다.


생일을 단순히 축하받는 날로만 두지 말고, 삶의 열매를 나누는 나눔의 날로 바꾸어 보시기를 제안합니다. 지난해를 돌아보며 감사했던 순간을 기록하는 것, 나를 위해 수고한 이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 손주나 이웃에게 작은 선물을 나누는 것, 이 모든 것이 생일을 더욱 빛나게 합니다.


생일에 드리는 기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샬롯에 있는 빌리 그레이엄 기념 도서관에는 2007년에 세상을 떠난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아내 루스의 무덤이 있습니다.

그 무덤 앞 비석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습니다. “End of Construction-Thank you for your patience”(공사 끝! 참아주셔서 감사합니다)

Gravestone_of_Ruth_Bell_Graham_IMG_4206.jpg <루스 그레이엄의 묘지>, 샬럿의 빌리 그레이엄 도서관


이 묘비명을 정하게 된 데는 특별한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남편과 자주 운전하며 가던 길에서 보던 “공사 중입니다.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공사 표지판이 “공사 끝. 그동안의 인내를 감사드립니다”라고 적힌 간판으로 새롭게 세워진 것을 보았습니다.

이 글귀가 마음에 든 루스 여사는 남편에게 그것을 묘비명으로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한 가지 더 특별한 것은 중국에서 의료선교사로 사역하던 선교사의 자녀로 태어난 루스 여사는 좋아하던 중국어 ‘의’(義) 자를 묘비 중앙 위에 크게 써넣었습니다.

인생이라는 긴 ‘공사 구간’ 동안 적지 않은 허물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자신을 빚으셨고 또한 자신을 아는 많은 이들이 인내로 지켜봐주었음을 고백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인생 말년에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볼 때, 자족함을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배웠다고 고백했습니다. 유대인에게 수없이 맞고, 돌에 맞고, 배가 침몰해 일주일을 어둠 가운데 지내야 했으며 심지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노년에 감옥에서 어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을 위해 기도로 또는 물질로 돕는 교회들을 생각하며 감사하면서 수많은 어려움 중에서도 자족함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또한 신체의 장애인 육체의 가시로 인해 무시와 오해, 비난도 받았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비밀을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으며 감사하고, 그 가운데 자족함을 배웠던 것입니다.


생일은 단순히 나이를 세는 날이 아닙니다. 창세기의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겉으로 나타나는 외모만 아니라 인격과 성품을 갖추는 삶,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해 오늘도 무화과를 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맞이하는 생일의 참된 의미입니다.

Otto_Rethel_-_The_Birthday_Cake.jpg 오토 레텔, <생일 케이크>(1866년)


올해 맞이하는 생일에는 나의 ‘공사 구간’을 돌아보는 날로, 하나님이 여전히 나를 빚고 계심을 확인하며 감사하는 날로 보내보시기 바랍니다.

촛불을 끄며 드리는 짧은 기도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내일의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한, 생일은 언제나 기대되는 날입니다. 그리고 그 기대는 나이와 상관없이 매일을 새롭게 살아가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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