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하루, 거룩한 일상

12. 집에 돌아와 전화를 걸며 :

by 박인조

한나절 외출에서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몸과 마음에 안도감이 밀려옵니다. 힘든 하루를 보냈다면 더욱 그렇겠지요.

외투와 짐들을 내려놓고 물이라도 한잔 마시며 잠시 의자에 앉아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봅니다.


이때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 즐거운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 사람, 스쳐가듯 인사하며 지나친 사람, 그리고 오늘 만나지 못했지만 하고 싶은 말을 미루고 있는 사람이나 오랫동안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소한 하루에서 거룩한 일상을 누리는 경험을 나누고 있는데, 이번 이야기는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와 전화를 거는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하루의 끝자락에서 기억나는 사람들

이 시간이 되면 오늘 만났지만 미쳐하지 못한 말이 있거나, 시간이 없어 이야기하지 다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고마움을 표현하긴 했는데 충분하지 못한 것 같은 또는 미안함을 전했지만 여전히 죄송한 마음이 드는 사람도 생각납니다.


무엇보다 한동안 소식을 듣지 못한 사람의 안부가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그 순간, 미루지 말고 전화 한 통을 넣어보세요. 직접 이야기를 하면 제일 좋지만, 여의치 않으면 전화를 하거나 문자라도 보내는 겁니다.

“안녕하세요, 생각나서 전화했어요!”


이 간단한 안부 인사 한마디가 따뜻한 손길처럼 상대방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누군가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인사를 전한 사람의 마음에는 홀가분함이, 피곤한 몸에는 다시 활기가 느껴집니다.


전화는 참 신기합니다. 얼굴이나 몸짓을 보지 않아도 목소리에서 건강 상태를, 말투에서는 미묘한 감정을 읽을 수 있습니다. 웃음소리에서는 즐거움도 전달 받습니다. 전화 한 통으로 많은 것을 나눌 수 있어요.


요즘은 스마트 폰이 있어 정말 편리합니다. 앉아서, 일어나서, 다른 일을 하면서도 상대방과 대화할 수 있으니까요. 간단한 조작으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영상 통화를 하다보면 눈앞에 있는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관심과 사랑을 표현하고 나누는데 참 유용합니다.

960px-A_Lady_Writing_by_Johannes_Vermeer,_1665-6.png 요하네스 베르메르, <편지를 쓰는 여인>(1665-70년)


정치학과 교수인 조앤 트론트(Joan Tronto)는 돌봄이란 “관심 기울이기”에서 시작된다고 말합니다.

돌봄(care)은 병원이나 위기 상황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연락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쓰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사회학자인 로버트 퍼트넘(Robert Putnam)은 개인이 맺는 “느슨한 관계”도 사회적 자본의 중요한 축이라고 설명합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안부 전화도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조율하는 중요한 행위입니다.


현대 사회는 도시화와 디지털화로 인해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기회가 줄어들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화와 문자로 이루어지는 소통은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작은 실천이며, ‘나는 혼자가 아니다’는 감각을 주고받는 중요한 경험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를 재확인할 수 있게 합니다.


소통이 깊어지는 경험들

과거에는 편지가 멀리 있는 사람과 소통하며 관심을 기울이는 주요한 방법이었습니다.

편지는 전화와 달리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마음을 정리하여 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요즘은 편지를 잘 쓰지 않아 길거리의 우체통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예전에 편지를 쓰고 답장을 기다리던 추억은 잊지 못할 기억입니다.


신약성경이 된 바울의 여러 편지들은 그가 직접 찾아가 만나지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쓴 관심의 결과물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편지를 쓸 때 이후에 성경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편지들은 개인적인 안부를 넘어 초대교회 공동체 전체에게 보내진 공적인 메시지가 되었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인 성경이 되었습니다.

그림1.jpg 렘브란트, <사도 바울>(1657년)


바울은 편지 곳곳에서 여러 사람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디모데, 실라, 마가를 비롯해 함께 사역했던 동역자들과 여러 제자들은 바울과 기쁨과 슬픔, 승리와 좌절을 함께 나누며 서로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어려운 마음을 편지에 전하기도 했는데, 아들과 같이 여기던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네가 올 때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딤후 4:11)고 한 것에서는 마가와의 갈등을 풀려는 용기가 느껴집니다. 이렇게 편지는 훌륭한 화해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편지에는 기다림의 미학이 있습니다. 편지를 쓰서 보낸 후에 답장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상대방에 대한 생각은 더욱 깊어집니다. 이러한 기다림은 관계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게 합니다.

때로 전화는 즉각적인 소통에 편리해도, 성급함을 낳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걸 때,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말을 하도록 기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얼굴이나 표정을 볼 수 없어 어떤 경우에는 침묵으로 어색해지기도 하지만, 조금 기다리며 상대방의 말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합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하느라 분주해지는 머리를 잠시 멈춰야 합니다. 상대방의 말을 중간에 끊거나 섣부르게 교훈조의 이야기를 하려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야 성급함이 낳는 폐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변화하는 시대에 관계의 소중함

현대 사회는 다양한 정보통신기술을 노인을 위한 돌봄에 도입했습니다.

서울시의 ‘AI 안부 로봇’ 서비스는 대표적인 사례로, 하루 한 번 독거노인에게 전화를 걸어 “괜찮으세요?, 식사는 하셨나요?”와 같은 기본적인 안부를 묻습니다. 만약 응답이 없거나 우울한 음성이 감지되면 즉시 가족이나 사회복지사에게 알림이 전송됩니다.


그 외에도 고령자나 환자의 몸에 장착해 움직임을 보조할 수 있는 웨어러블 로봇(wearable robot),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자율주행 자동차, 상담과 같은 정서적 반응을 챙겨줄 수 있는 감성 인공지능 등의 기술 발전은 초고령시대에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고령화 시대의 관계 문제를 해결하는 한 예로, 일본의 오키나와 지역 노인들은 은퇴 후에도 마을회관에서의 봉사 활동, 유치원에서의 동화책 읽어주기 등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지속합니다.

이러한 ‘조부모 선생님’ 활동은 노인을 단순히 ‘부양의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사회 구성원’으로 인식하게 합니다. 서로에게 기울이는 관심에서 존재 이유를 찾고, 자아성취를 통한 성장의 기회도 얻습니다.


관계는 유지하려는 지속적인 노력, 작든 크든 관심을 기울이는 행동이 없으면 사라집니다. 그래서 늦은 오후에 감사와 사랑의 표현, 죄송하다는 미안함의 표현을 담은 전화는 참 유용합니다.

혹시 낮 동안의 바쁜 일상에서 생각나지 않았던 사소한 상처나 하지 못한 말들이 선명하게 떠오를 때면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전화를 거는 겁니다.

그리고 “그날은 미안 했어요, 제가 좀 예민했네요, 그때 말씀 잘못 드린 것 같아요”처럼 화해의 말을 전할 수 있습니다.


지금 그런 일이 떠오른다면, 용기를 내서 전화를 걸어보세요. 누군가를 갇힌 공간에서 열린 공간으로 나오도록 이끄는 이 말 한마디는 정말 귀합니다.

전화 한 통으로 사랑의 섬김을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의 가치에 대해 인상적으로 전하셨습니다.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도, “피하여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인이 있었습니다.

반면에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상처에 붓고 싸매어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봐준, 그곳을 여행하던 한 사마리아 사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두 부류의 사람을 예로 드시며 ‘보고’, ‘가까이’ 가는 관심을 기울인 사마리아 사람이야말로 강도만난 사람의 이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한 율법교사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예수님께 질문했을 때 들려주신 말씀이라는데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말씀 끝에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고 하셨습니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 대해 예수님은 구체적인 관심과 실제적인 지원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어간다는 말에 무리와 같이 서둘러 그의 집으로 가실 때에도,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해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괴로워하는 여인이 자신의 옷에 손대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의 주의력이 다른 사람의 필요와 고통에 얼마나 민감하셨는지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그리고 이 여인의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언급하시며 평안히 가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사람에게 세세히 관심을 기울이시는 예수님을 발견합니다.


노년기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바로 이러한 마음의 표현입니다.

자신 안에 담긴 경험과 지혜, 그리고 사랑을 아낌없이 타인에게 전하려는 의지의 구현입니다.

Vermeer-Girl-Reading-a-Letter-by-an-Open-Window-.jpg 요하네스 베르메르, <열린 창에서 편지를 읽는 여인>(1657-59년)


노년기에는 시간의 유한성을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되면서, 미루어왔던 화해와 용서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집니다.

과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노년기에 자신의 연구실에서 과학자들의 사진을 내리고 간디와 슈바이처의 사진을 걸어두었습니다.

“이제는 성공이 아니라 섬김의 상징을 걸어야 할 때”라는 그의 말은 노년기 가치관의 전환을 잘 보여줍니다. 성취와 업적보다는 관계와 섬김이 더 중요해지는 시기, 그것이 바로 노년기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늦은 오후, 집에 돌아와 누군가를 떠올리며 전화기를 드는 작은 행동에서 작지만 의미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성공이 아니라 섬김을, 침묵이 아니라 대화를, 무관심이 아니라 따뜻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소통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변하지만, 마음을 전하려는 인간의 본질적 욕구와 관계의 소중함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관계를 회복하는 치유자가 되고, 고독한 이웃에게 위로를 전하는 사랑의 전령이 됩니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 나서는 잠시 상대방을 위한 짧은 기도를 해봅시다. 관심 기울이기의 마지막 단계는 바로 그 사람을 하나님께 맡기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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