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쓰지 말고 당당하게 쓰자 (feat.브런치)

글쓰는 무대가 바뀌다

by 하늘 예쁨

어렸을 때부터 참 말을 잘했고 물에 빠지면 주둥이만 뜰거란 듣기 싫은 얘기도 많이 들었다.

말 잘하면 변호사 되는 줄 알고 겁도 없이 법대가서 사법시험 한번에 통과하고 폼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장래희망을 이야기 했었다

현실은 뭐. 쩝.

특출나게 공부 잘하는 1등이 꿀 수 있는 꿈이었고 말은 그냥 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했다.

언젠가 미련 못버리고 이제라도 로스쿨 가고 싶다는 나에게 신랑이 얘기했다.

'그거...스쿨이라고 다 들어가는 학교아냐.'

'참나'


그렇게 현실로 돌아와 어른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면서부터 말이 주는 무게가 어쩌고 떠드는 사람들을 만나고, 하고 싶은 말을 참아야 할 때가 많다는 것, 사회 생활은 할 말을 넣어둘 때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을 못해서 하는 후회보다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을 해서 하는 후회가 훨씬 많다.'


'그 말 할걸, 했었어야 하는데, 그 인간 민망하게 얘기할걸, 말로 복수를!!!' 이러면서 가끔은 말싸움 연습을 거울보고 했던 적도 있었는데 어느 날 책에서 읽은 이 문구는 나를 돌아보고 조심하게 만들었다.

발산함으로 안정을 찾고 충전이 되는 기질을 타고난 나로서는 꽉 막혀서 터질 수도 있겠다 싶어져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글을 쓰기보다 욕 쓰는 걸 먼저 시작했다.

엄마를 불편하게 하는 아빠욕, 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들 험담, 저 놈은 왜저래, 저 인간은 대체 왜. 두명 이상이 모여서 한 이야기와 행동에는 비밀이 없다고 굳게 믿는 의심 많은 나는 혼자만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런 저런 형태로 수 많은 글을 쓰며 살아왔다.

어릴 때는 백일장 상을 받기 위해 ,학생 때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보고서를, 직장 다닐 때는 수익 보고서 발표용 글을 썼는데 정작 내 이야기를 편하게 써본 적이 없는 듯 하다. 학창시절 잠깐 일기를 쓴 적도 있지만 일기라는 것도 결국 방학숙제 검사를 위해 썼으니 자기 검열된 보여주기식의 글짓기에 불과했다.


'아무튼 이제는 나를 위해 쓰자. 어디에 쓸까? 다이어리를 새로 사? 컴퓨터에 폴더를 만들어?

글쓰는 어플을 깔아볼까?'


어떤 곳에서든 생각 나는대로 눈치 안보고 쓸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하다 문득 밴드가 떠올랐다.

다른 어떤 것보다 수고로움을 덜하고 공간을 얻는 좋은 방법이었다.

바로 개설했고 당연히 밴드장은 나다. 나만의 공간에 입주한 주인이 되어 회원은 한명도 없는 비공개 1인 밴드명을 뭐로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마치 내 집 간판다는 심정으로.

'뭐라도 쓰기!'

주제 구애받지 않고 매일 쓰는 다짐을 할 수 있는 밴드명. 이게 좋겠다.

그럼 필명은 뭘로 할까?

혼자 쓰는 방에서 무척이나 진지했다. 나중에 누군가 볼 때 창피하면 안되니까.

'뭐 어때!' 딱이다.

뭘 쓰던, 뭘 하던 뭐 어때. 무슨 일이 생기던. 앞, 뒤 어딘가에 '괜찮아'가 숨어있는 '뭐 어때'는 그렇게 나의 필명이 되었다.

밴드명에 딱 맞게 정말 거의 매일 뭐라도 적었고 훗날 내가 떠나게 될 때 가족,지인들에게 밴드 초대장을 보내고 내가 이렇게 살아왔노라 알려주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멋있게 눈을 감겠다는 야심찬 계획까지 세우고 채워나갔다.


어느 날 유명출판사 작가로 등단한 친구가 글을 쓰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평가받는 것도 용기라며 그렇게 혼자 쓰지말고 나서보라 하며 '브런치'를 소개해줬다.

'그래? 그런게 있어? 오케이! 접수~!!!'

성질 급한 나는 브런치 소개 받은 날 밤 작가 신청하기에 들어가 야심찬 포부를 밝히며 그간 써 놓았던 글을 끌어다 붙여 놓고 신청 완료 버튼을 클릭했다.

수일 내로 연락이 올거라 했고 며칠을 설렘 반 기대 반으로 보냈다.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불합격 통지를 이렇게 하는구나 생각하다가 ' 안타깝기는 한거야? 됐어 안해! 내 밴드에 쓰면되지뭐' 만만하게 생각했던 내 오만과 감정에 치우친 어줍잖은 내 글은 생각 않고 화가 났다.


그렇게 난 또 1인 밴드의 장으로 돌아가 숨어서 글을 쓰면서도 늘 그렇듯 소통이 그리워 어디 갈 곳 없나 기웃기웃 거린다. 그러다 집 근처에서 하는 에세이 수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런 수업은 주로 서울에서 하는 경우가 많았고 예전에도 분당까지 가서 수업을 들었던터라 같은 구 내에서의 수업이 반가워 무작정 신청했다.


'감히 내 글에 저런 말을? 의도를 어찌 알고. 내가 뭐라고 당신 글에 잔소리를...' ' 각자 색깔이 있는 것 아닌가. 정형화된 틀 안에 같이 들어가야 되는건가' 솔직한 첫 날 느낌이다. 그러니 불편했고 어색한 합평이었다.

숨어서 혼자만의 글을 감정 쓰레기통에 퍼붓듯 쓰던 내가 세상밖에서 들리는 객관화된 소리가 어색해서 듣기 싫었던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행인건 난 적응이 빠른 편이다. 내 글을 꼼꼼히 읽고 이야기 해 주는 건 애정 없이 할 수 없는 일이고 몰랐던 부분을 알아가는 좋은 계기가 된다는 것을 회차가 거듭할 수록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달콤한 칭찬의 말이 더 좋긴 하다.

그렇게 시작된 에세이 합평 모임에서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는 분을 만나게 되었고 난 다시 도전해보고 싶어져 용기를 내었다. 나를 몰라봤다며 다시는 안한다고 했었는데 어느새 아주 겸손한 자세로 세심하게 목차를 작성하고 간절하게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었다.

이래서 떨어뜨렸나 보다.그 오만함을 벗고 오라고.


'작가가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와우! 대박!!! 작가래. 날더러 작가래.축하한대'


브런치가 아침과 점심 사이에 먹는 서양 음식 정도로 알고 있던 신랑의 뜨뜨미지근한 축하를 받고 카톡 프로필을 브런치 합격 통지서로 바꿔놔도 나만 아는 이야기겠지만 행복했다.

이제 글쓰는 무대가 바뀌었다.


먹는 브런치나 쓰는 브런치나 모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