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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하 Jul 30. 2024

열한 살 아들

저에게는 올해 열한 살이 된 아들이 있습니다.

생일이 얼마 전 지났으니 '만'나이 셈법으로는  열 살이라고 해야 정확하겠네요.

하지만 이 녀석은 십 대 대열에 정식으로(?) 들어설 수 있는 기회를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박탈 당했다고 한동안 불만을 표시했어요.

제 눈 엔 열 살이나 열한 살이나 아직 어리고 개구진 아들로만 보이는데,

열 살의 시선으로는 열한 살과 열 살은 엄연히 다르게 보이나 봅니다.

(마흔 살이었던 제가 아직 만 나이로는 삼십 대라고 우겼던 몇 년 전의 제 마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ㅎㅎ?)

초등학교 저학년으로 분류되는 3학년인 열 살과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분류되기 시작하는 4학년인 열한 살

천지 차이로 느껴질 것 같기도 해요.


이런 녀석이 오늘 처음으로 엄마 아빠와 떨어져 홀로 제주도로 떠났습니다.

아니 사실은,

맞벌이 엄마(아빠: 아빠는 엄마보다 방학 임팩트가 덜하니까 괄호 속으로)의 초등 아들 여름 방학 케어를 자본주의 방식으로 해결하기 위해

3주 동안 제주도에서 진행하는 영어 캠프에 보.내.졌.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여름 방학 돌봄을 걱정하고,

여름 방학 돌봄이 해결되면 겨울 방학 돌봄을 바로 걱정하기 시작하는 게

워킹맘의 숙명이라고 하던데..

저 역시 그 숙명을 벗어 날 수 없는 대한민국 워킹맘 11년 차에요.

학교 돌봄 교실에도 보내보고, 재택근무하면서 아이를 돌보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학원을 뺑뺑 돌리면서 아침에 도시락을 싸놓고 출근을 해보기도 했었는데요.


그러다가,

그저 그렇게 재미없이 학원-학원-학원으로 돌리는 것보다,

집에서 혼자 아이패드 삼매경에 빠지는 꼴을 보면서 화를 참는 것보다,

재택근무와 아이 돌봄을 동시에 하면서 스트레스받는 것보다,

자본주의에 살짝 기대어 '나도 좀 편하게 여름 방학을 지내보자'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리고 오늘 여름 방학 7일차.

제주도로 19박 20일 동안 영어 캠프에 보내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파도처럼 밀려오는 미안함과 (요 며칠동안 숙제로 화를 참지 못하고 잔소리를 했던게 너무 미안했어요.ㅠㅠ)

낯선 곳에서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울지는 않을지 걱정되는 마음과

혹여 다치거나 아프지는 않을지 스며드는 불안감과

그래도 잘 적응하고 재밌게 지낼 거라는 기대감과

여름 방학은 이제 해결이 되었다는 안도감 등..

온갖 복잡한 감정으로 제 머릿속과 마음은 헤집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큼성큼 씩씩하게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언제 저렇게 컸나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열 살과 열한 살은 엄연히 다르다며,

열한 살이 된 올해는 열 살이었던 작년보다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도전해 볼 수 있다고

해가 바뀌던 올해 1월 1일에 자신만만하게 말하던 아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만,

다치지 말고 즐겁게만 지내다 오라고..

마치 주문을 외듯

아들이 생각 나는 메 초마다 읊조리는 저는

여전히 우리 나이로 셈법을 하는

열한 살 아들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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