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토요일이었다. 엄마랑 홈스쿨링 하는 의찬이가 유일하게 뭔가를 배우러 바깥에 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여느 주말과 마찬가지로 클라이밍을 배우는 의찬이와
함께 이웃에서 홈스쿨하는 아이들을 센터에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왔다.
아들이 수업을 받는 동안 남편과 나는 의찬이가
좋아하는 감자탕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때 즈음 감자탕 비법을 알게 된 후, 나는 열심히 해댔고 남편과 아들은 맛있게 먹어줬다.(이럴 때 주부들은 신이 난다ㅎㅎ)
정육점에서 감자탕에 들어갈 돼지 등뼈를 사다가 핏물을 빼기 위해 물에 담가 놓고 우리는
점심 메뉴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뭘 먹지?"
"시간 너무 많이 걸리는 거 말고.."
그러다 문득 냉장고에 있던 자투리 채소들이 생각났고 빨리 안 먹으면 물러져서 음식물 쓰레기로 전락할게 뻔했기에 비빔밥을 먹기로 했다.
큰 양푼에 밥이랑 채소, 고추장, 참기름, 또 뭔가 허전해서 계란 프라이 두 개를 넣어서 쓱싹쓱싹 비볐다. 대충 해도 비빔밥은 맛없을 수가 없는 게 장점 중에 장점이다 ㅎㅎ
"이렇게 간단히 해결하다니..
난 냉파(냉장고 파먹기의 준말)의 신이야!"
그렇게 먼저 비빔밥을 먹고는 남편이 다 먹길 기다리던 찰나.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마치 망치로 내리치는 듯 한...
평소 남편이 잦은 두통으로 자리에 누웠으면 누웠지, 나는 두통이 잘 없었기에 설마 두통이 날 괴롭히리라고는 1도 생각 못했다.
그렇게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한 여자분이 다급하게 나를 깨웠다.
"김지영 씨, 눈 떠보세요. 김지영 씨!"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은 119 대원이었다)
후에 남편에게 들었는데 난 119차를 타고 충북대학교 병원으로 옮겨졌고 CT를 찍으니
지주막하출혈로 판명 나서 응급수술을 했다.
수술 후엔 이틀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아
가족들은 애를 태워야 했다.
담당 주치의가 사망할 수도 있으니 맘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니 친정엄마가 소식을 듣고 우셨던 마음도 이해가 간다. 실제 지주막하출혈 환자의 3분의 1은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3분의 1은 병원에 가는 도중이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죽고 3분의 1만 살아남는다고 한다.
지금도 재활이 너무 힘겨울 땐 그 시절 생각을 한다. 바로 죽었으면 이 고생은 안 할 텐데... 하고.
하지만 곧바로 살아있는 게 참 다행이다... 하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을 볼 수 있으니까.. 그렇게 나의 기나 긴 병원 생활이 시작됐다.
처음엔 몇 달 있다가 퇴원하겠지.. 했으나 그건
큰 오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