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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물딱진 박똥글 Aug 26. 2023

05. 성인 ADHD의 회사생활

일을 못하니 왕따를 당하지

“00 씨 제발 까먹지 좀 말아요. 한 번에 챙기라고요.”
“몇 번을 얘기하는 거예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처음 회사 생활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핀잔은 어느 직종이든 어떤 회사를 가든 나를 따라오는 말이었다. 턱관절이 뻐근해질 정도로 긴장을 하고 오늘은 절대 실수하지 말아야지 하고 아침에 외치고 온 다짐이 무색할 정도로 오늘도 듣고야 말았다.



나는 약 3번의 직장을 거쳤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어떤 회사에 속하든 나는 그 그룹에서 은근한 따돌림을 당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직장은 사회복지관이었다. 나는 사회복지학과를 나와 사회복지사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복지사의 업무량은 상상을 초월했다. 대면업무, 현장업무, 서류업무까지 한꺼번에 밀려드는 일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일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고 늘 마감기한에 쫓기며 일을 처리했다. 늘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니 놓치는 업무들도 많았고 잔실수가 많았다. 그래서 매번 상사에게 불려 가 혼이 났다. 사회초년생인 나는 일은 많이 주면서 완벽을 바란다는 게 불합리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제대로 일처리 하는 방법을 알려주지도 않고 혼내기만 한다고 그들이 너무 야속했다. 그래서 더 사람들과 관계에 선을 긋고 아싸의 길을 걷다가 수습기간 3개월, 계약기간 1년을 마치고 바로 퇴사했다.  

그리곤 사회복지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고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전공까지 바꿔서 일반 회사에 취직했다. 


두 번째 직장은 일반 회사의 경영관리팀의 인사팀원으로 일을 했다. 일반회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난이도가 높았다. 좁은 사무실 안에 8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괴로웠다. 

차라리 복지관을 다녔을 때가 나았다. 사회복지사는 현장에 나가서 발로 뛰어야 하는 업무가 많았기에 그나마 괜찮았었던 것이다. 

답답함에 나는 늘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외근을 한 번 나가면 다시 들어가기 싫어서 뺑뺑 돌다가 늦게 들어가곤 했다. 하지만 나의 이런 꼼수가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게다가 신입이 그런 짓을 하다니 따돌림을 당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또, 사무실에 있는 것 자체에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져 있는 상태에 업무를 처리하려니 실수가 늘었다. 게다가 나의 업무는 사람들의 초과근무시간을 계산해서 야근수당을 내보내는 일이었다. 급여 관련 업무였기에 더욱 꼼꼼해야 하는데 나의 잦은 실수로 상사가 두 번 세 번 손을 대야 하니 미운털이 제대로 박힐 수 박에 없었다. 혼나는 일이 많아지니 더욱 위축되고 긴장해서 정말 어이없는 부분까지 놓치는 실수가 더 많아졌다. 악순환이 계속되자 이해해 주려고 노력했던 팀원들까지 등을 돌렸다. 심지어 팀장의 마음을 이해한다며 팀장에게 붙어 나는 밥까지 혼자 먹게 되었다. 우울증이 심하게 와서 2년간 꾸역꾸역 버티던 직장생활을 그만두게 되었다. 


마지막 회사는 보험대리점의 서류업무를 처리해 주는 일이었다. 이곳의 업무는 굉장히 프리했다. 혼자 사무실을 지키는 경우가 많아서 그 당시 투잡을 하고 있던 나에게 최적의 조건이었다. 심지어 지각을 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일이 없을 순 없어서 일을 처리할 때면 어김없이 놓치는 부분이 발생하고 말았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너무 착해서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이젠 정말 나에게 문제가 있었음을 제대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전엔 사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위축되어 실수가 많았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자기 위로였을 뿐이었구나라고 느꼈다. 비교적 프리한 상황에서도 실수를 하고 놓치는 것을 보고는 두 번째 직장에서의 트라우마와 나는 왜 이럴까의 자책이 심해져서 이때 처음 ADHD의심을 하고 병원을 찾게 되었었다.

 


이러한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친구들에게 토로하면 사랑하는 친구들과 가족들은 직장욕을 해주거나 나를 이해하는 말들로 나를 위로해 주었다. 하지만 나이가 쌓이고 사회생활이 쌓이면서 위로보다는 스스로 부끄러움이 많이 올라왔다. 직장욕, 직장상사욕을 하면할 수록 나의 자존감은 더욱 깎여갔다. 

결국엔 내 얼굴에 침 뱉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명백하게 나의 잘못을 내가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 내가 변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는 실수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다시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런데 결과는 또 실패.. 실패의 경험들이 쌓이면 쌓일수록 사회인의 끝자락 도태의 절벽에 간신히 매달려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다시 만난 의사 선생님께 어린 시절 이야기와 사회생활이 힘들었던 이 이야기들을 다 털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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