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결혼식에 가려고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다.
거의 종착역까지 가야하는 긴 노선인지라
자리를 꼭 사수하고 싶었다.
토요일 오후의 지하철 자리가 비어있을리 만무했고
하필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 앞에 서게 되었다.
역이 지날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들과
새로이 자리에 앉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내 옆에서 어깨 나란히 섰던 사람들은
모두 자리를 쟁취해냈다.
그만큼의 거리를 오는 동안 앉지 못한 사람은 나뿐이었다.
이름 모르는 덩치 큰 입석 동지만이
암암리에 나의 서사를 알고 있었다.
입석 동지는 진즉에 자리가 나서 앉아 있었는데
역 몇개를 지나치고 자리에서 우뚝 일어났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는 그 빈자리를 차지했다.
편히 앉고나자 왜인지 입석 동지가 일부러 일어난 것 같다는 직감이 들어 그 뒷모습을 시선으로 좇았다.
웬걸, 다음 역에서 내리지 않고 또다른 입석 군중 속에 묻혀
멀어지고 있었다.
앉으세요, 하고 대놓고 자리를 양보하면
미안해서 사양할까봐 아무 말 없이 일어나
멀리 멀리 사라진 입석 동지.
그 뜻밖의 선의에 아직 세상이 살만하다 여긴다.
복 받을거야, 청년!
그냥 내가 꼴보기 싫어 멀리 떠났을지도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