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딸이 되고 싶었어
흥선대원군의 딸로 산다는 것
나는 흥선대원군 같은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에 견줄 정도로, 우리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만류했다. 당신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아버지에 대한 반발심 때문인지 나는 집 밖으로, 그것도 아주 멀리 떠나는 것을 늘 꿈꿨다.
그런 내가 중학생 때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라는 책을 읽었을 때 어떤 생각을 했겠는가. 지금에야 여행 유튜버들이 많이 활동하지만, 당시에는 해외 여행이 귀했고 그 중에서도 세계 곳곳에 있는 오지를 여행하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책으로나마 들여다 본 그녀의 삶은 버라이어티했고, 생동감 넘쳤으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찐하고 짠한 무엇인가가 느껴졌다. 내가 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멋졌다.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 치우고 여자 혼자 배낭 하나 메고 세계 오지를 누비는 이야기는 나의 마음에도 바람을 넣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현실은 집에서 멀다는 이유로 내가 가고자 했던 기숙형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것조차 어려웠고,
입시 공부에 매달리다 보니 바람의 딸처럼 살고 싶다는 꿈도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나마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오랜 꿈을 좇아 나는 교사가 되었고, 하루 하루 어린이들의 성장을 위해 애쓰다 보니 10여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긴급 구호 활동가도 교사도 누군가를 돕는 일이니 아예 다른 일은 아니겠으나. 빈곤 및 전쟁으로 간절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열망은 계속 품고 있었다.
때마침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매년 팀을 꾸려 해외로 선교 활동을 나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주일 동안 필리핀 오지 마을에 가서 의료 봉사를 중심으로 교육, 이미용, 시설·수리 봉사를 하고 오는 것이다. 바람의 딸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훌훌 떠날 용기는 없었지만, 교육 봉사 쪽이라면 자신 있었고 기간도 일주일이라면 승산이 있어 보였다. 남편은 내 뜻을 존중해 아기가 생기기 전에 다녀오라며 경비까지 지원해 주었다. 결혼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한 순간이다.
바람의 딸이 되고 싶었던 나의 오랜 바람이 작게나마 실현되리라는 사실에 내 마음은 두근거렸다.
이와는 별개로 내 골골한 몸뚱아리가 현지에 가서도 빛을 발해 팀에 도움은 커녕 민폐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은근히 걱정이 되어, 혼자서만 다른 비행기를 타고 애먼 곳에 내리는 꿈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렇게 설레이기도, 두렵기도, 걱정되기도 하면서 필리핀 오지 마을로 떠날 시간은 점점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