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의 오지, 쿠마바오

아직 12시간을 더 가야 한다고?

by 우스갯소리

"조심해, 총 맞는다."

내가 필리핀으로 선교를 간다고 하자 친오빠가 나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어릴 적부터 나를 강하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수많은 고통을 선사한 오빠였기에 걱정이 담겼을 말마저도 참 얄궂었다. 실제로 나에게 총을 겨누는 사람은 없었지만, 이번 일정에 있어서 의외로 내게 가장 큰 난항은 마을까지 당도하는 일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마닐라 공항에서 내려 버스로 내리 12시간을 더 달려야 이름도 생소한 '쿠마바오'라는 마을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스에 올랐을 때는 이미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각이었다. 어두컴컴한 밤길을 12시간 동안 운전하는 일은 기사 한 사람으로 버거운 일이었기에 현지 버스 기사 두 분이 교대를 하며 운전을 해주셨다. 한 분이 운전을 하는 동안 한 분은 뒤에서 쪽잠을 자는 방식이었다. 팀원들은 일주일 치의 짐을 옮겨 버스에 싣는 일을 마치고, 한 명 한 명 버스에 올랐다. 버스 내부에 들어서면 여느 것들은 한국의 버스와 다를 바가 없지만, 하차 문이 있을 자리에 한 칸 짜리 화장실이 있었다. 필리핀의 땅덩이는 우리나라보다 넓으니 이렇게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버스에는 자그마한 화장실이 딸려 있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좁은 공간에 화장실의 형식만 갖춰 놓은 것이었으므로 사용하기 편할 리 없었지만 소변을 자주 보러 가는 나는 크나큰 안도감을 느꼈다.


버스에 올라 자리를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동 모두 마취총을 맞은 듯 잠에 빠져 들었다. 새벽이기도 했고, 마닐라까지도 30여명의 일행이 두 대의 비행기로 나뉘어 오느라 대기 시간도 두 배로 길어졌기 때문에 피곤한 상태였다. 한참 잠들었던 것 같은데 화장실에 갈 타이밍이 되었다. 귀찮음을 물리치면서 창 밖을 들여다 보니 칠흑같은 어둠만 있었고, 버스는 S자로 굽이진 길을 따라 여러 번 방향을 바꿔가며 달리고 있었다.


앉은 자세로 오랫동안 잠들었던 탓에 뻐근해진 몸으로 일어나 비틀거리며 간신히 화장실 앞에 도착했다. 힘 주어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작은 체구의 나로도 공간이 꽉 찼다. 버스는 여전히 뱀이 기어가는 모양새로 빨리 달렸기에 볼일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하는 나로서는 참 난감했다. 앞에 놓인 손잡이 하나가 그 순간 의지할 전부가 될만큼 인간이란 존재가 변의 앞에서 얼마나 나약해지는지를 실로 오랜만에 체감했다.


소정의 목적을 달성하고 팀원들의 코고는 소리에 리듬을 타며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사방이 잘 보이지도 않는 어두운 도로를 달리고 있으니 문득 정신이 아득해졌으나, 걱정이 무색하게 다시 곯아떨어졌다.

"어이고, 다들 선교 체질이구만. 24시간쯤 더 가도 되겠네."

페이드인으로 느껴지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정신이 몽롱하게 돌아왔다. 날이 밝아서 창 밖으로 필리핀의 건물과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 조금만 더 들어가면 곧 도착하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핸드폰 액정에 비춰 밤새 돌보지 않은 몰골을 점검했다. 언뜻 봐도 느껴지는 꾀죄죄함에 어떻게든 매무새를 가다듬어보려 했으나, 내 능력 밖의 일이었다. 버스에서 땀이 흘렀다가 식었다가를 반복하면서 씻지 못한 몰골은 현저히 누추해져 있는 상태였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의 얼굴을 보려고 기다릴게 분명했으므로, 만나기도 전에 송구한 마음이 자라났다.


비행기와 버스까지 도합 하루만에 드디어 도착한 필리핀의 오지 마을, 쿠마바오. 버스가 마을로 들어서자 함성 소리가 들렸다. 언제부터 기다렸는지 모를 아이들과 학교 선생님들이 운동장에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아이들이 함박 웃음으로 다가와 우리 손에 웰컴플라워를 쥐어 주었다. 웰컴드링크는 몇 번 마셔봤어도 웰컴플라워는 처음이었다. 풀꽃을 따서 한 손에 쥘 수 있게끔 종이로 감싸 만든 것이었다. 동네에 핀 예쁜 꽃을 앞다투어 찾아다녔을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내가 한 것이라고는 누추한 몰골로 입꼬리를 올려 어색하게 웃은 게 전부인데 이런 융숭한 환영을 받아도 될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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