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 짐을 낚아챈 것은 순식간이었다.
현지인들의 환대를 받은 후 가방을 얹은 캐리어를 끌고 숙소로 향하는 중이었다. 숙소가 멀지 않았지만 짐과 함께 이동하는게 수월하지 않았다. 캐리어에는 일주일치의 개인 짐 외에도 의약품, 식료품, 교육 자료 등 공용 짐들이 있어 상당히 무거웠다. 그 캐리어 위에 커다란 부피를 차지하는 가방까지 얹어 놓았으니, 무거운 와중에 가방이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어떻게 하면 덜 힘들게 갈까 궁리하며 걸어가는 중 짐의 주도권이 나에게서 다른 이에게 넘어가 버렸다.
고개를 돌렸을 때 내 눈에 들어온 이는 작은 소년이었다. 캐리어보다 고작해야 두어 뼘 정도 더 큰 아이가 내 캐리어를 낑낑대며 끌고 가는 것이다. 여기에 고만고만한 아이 두 명이 더 합세해 서로 저가 들겠다고 엎치락 뒤치락 하기도 했다. 아이들는 점점 내게서 멀어졌고, 숙소 쪽으로 가고 있었다. 나의 목적지와 그들의 목적지가 동일하다는 것은, 그들이 내 짐을 숙소까지 날라준다는 의미였다. 남을 의심하는 법부터 익힌 내 머릿 속의 예상과는 결이 다른 배려였다.
그렇다고 해서 작은 아이들에게 무거운 짐을 맡기고 편하게 걸어가는 것은 어른의 양심상 허락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만치 앞서 있는 아이들을 따라 잡아 내 짐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자 손을 뻗었지만, 허사였다. 언어는 통하지 않아도 짐은 자신들이 옮길테니 편히 오라는 뜻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나는 미안함을 담은 낯빛으로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아이들은 기꺼이 기뻐하는 얼굴로 혹시라도 내가 또 짐을 들겠다고 할까봐 걸음을 재촉했다. 편한 걸음을 내딛으며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왜인지 코가 시큰거렸다.
초등교사로 일한 10년 동안 아이들의 다양한 표정을 많이도 봐 왔다. 웃음을 터뜨리며 노는 모습, 대결에 져서 토라진 모습,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배우는 모습... 숱하게 봐온 표정 중에 남을 도우면서 기꺼이 기뻐하는 모습이 있었던가 생각했다. 아니, 애초에 그런건 아이들에게 기대하기 전에 어른들에게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내 깨달았다.
'조금도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스스로의 생활을 즐기는 것'이 똑똑한 처세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자리잡은지 꽤 되었다. 우리는 무엇 하나 밑지지 않으려고 한다. 희생의 가치도 자연히 폄하되었다. 공동체성은 잃었는데 경쟁은 더 심해져서, 일상에서 남을 도우면서 기꺼이 기뻐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누군가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의심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지도 모른다.
나 역시 손에서 캐리어가 빠져나갔을 때 내 것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의심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가 살고있는 사회가 너도 나도 돕는 형국이었다면 당연한 호의로 생각했을 것이다. 내 의심은 알 길 없이 천진한 얼굴로 짐을 대신 짊어진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코가 시큰거릴 수 밖에. 자꾸 울음이 나오려고 해서 정말 궁금한 말을 목으로 삼켰다.
"너, 이름이 뭐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