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TO 불안정한 일자리에 있는 나의 동료에게
나는 당신을 모르지만 알 것도 같습니다. 네, 알겠습니다가 입에 붙어 있고 감정을 숨기는 데 능하며 현실주의자로 살아가는 당신. 간밤에는 개가 목줄을 끊고 달아나고 고양이가 나무 위에서 구슬피 울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은데 사람들이 궁금해하지 않을 이야기를, 한여름 뙤약볕에서 당신과 땀을 뻘뻘 흘리며 나누고 싶습니다.
조용히 따로 만나요.
상사가 이런 문자를 보내왔을 때 저는 아마 떨고 있었을 것입니다. 언 몸을 녹이느라 난로 앞에 모여 앉은 사람들에게 표정을 들킬까 봐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았어요. 장갑에 목도리까지 중무장을 한 채 철봉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 중년 남자를 눈으로 좇으면서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습니다. 들고 있던 커피가 손 안에서 미세하게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을까 생각해 보니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지더군요. 그거로군. 고개를 돌려 거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한 달 사이 많은 것이 변해 있었습니다. 성에가 낀 거울을 손바닥으로 문지르고 더듬더듬 얼굴을 매만졌습니다.
“점심 맛있게 먹었어요?”
그녀가 살갑게 인사를 건네더군요.
“이거 내가 집에서 가져온 커피인데 한잔 마셔봐요.”
커피 향이 코를 찔렀습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속이 안 좋아서요.”
“속이? 왜?”
그녀가 뜸을 들이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스무 명이 넘는 계약직 가운데 일부만 계약 연장이 된다는 사실을 저도 모르지 않았어요. 그 시기가 언제고 어떤 식으로 통보되는지 모르긴 몰라도 계약 종료일 전후로 개별적이고 기습적으로 알리지 않겠느냐고 수군거리던 사람들 사이에 저도 있었습니다.
사람이란 아무리 힘이 들어도 희망 고문으로는 죽지 않습니다. 희망이란 그런 것이지요. 희미한 빛이라도 있다면 연명해 갈 수 있는 게 사람입니다. 그런 힘으로 조직은 굴러가는 것이고요.
“그런데 무슨 일로.”
서두가 긴 건 말하는 사람한테나 재미있겠지요. 저는 파트너가 신경이 쓰여서 더 기다릴 여유가 없었습니다. 제 파트너는 눈치가 보통이 아니라 제가 밖에서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이상하게 생각할 게 뻔했습니다. 이내 팀장이 목을 가다듬더니 말문을 열더군요.
“내가 쭉 봐왔는데, 뭐라고 해야 하나.”
“그냥 편하게 말씀…….”
“사람들 선동하고 그런 거 하지 마세요.”
너무 쌀쌀맞게 말하는 바람에 저는 적잖이 놀랐습니다. 당황해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처음에는 감을 잡을 수 없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다고 하는데 왜 그쪽만 사사건건 따지고 들어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눈만 끔벅거리다가 아차 싶었습니다. 대체 저는 제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요.
“저 그런 적 없습니다. 사람들 선동한 적은 더 없고요.”
“어제 대화방에서 다들 네 네 대답하는데 그쪽이 그런 문자를 보내니까 사람들 대답이 쏙 들어갔잖아요. 분위기도 이상해지고.”
“저는 계약서에 나와 있는 대로 말씀드린 것뿐이에요.”
“사람 일이 무 자르듯 딱 맞아떨어져요? 업무 준비하고 마감하는 데 시간 걸리니까 그거 감안해서 일하자는데 이게 뭐 그리 불만 가질 일이에요?”
“그럼 이 추위에 30분 일찍 나와서 근무하라는데 알겠습니다가 쉽게 나옵니까?”
“어디서 언성을 높여요?”
저는 또 한 번 말문이 막혔습니다.
“8시부터 코로나 검사하려고 사람들 줄 서 있는 거 뻔히 알면서 계약서 타령만 하면 되겠냐고요.”
“팀장님은 초과근무하시면 초과수당 받으시잖아요. 그런데 왜 저희는 초과수당도 없이 일하라는 건데요.”
그녀가 눈을 홉뜨고 저를 노려보더군요.
"선별진료소 일당이 다른 데보다 높다는 건 알고 있죠? 그래서 이번에 지원자가 몰린 것도 잘 알 테고. 지금 비상상황이라 초과수당을 줄 만한 예산이 없어요. 다들 계약 연장을 걱정하는 판에 무슨 수당 타령이에요?”
“팀장님.”
목소리가 떨려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은 뒤죽박죽이었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잘 몰랐습니다. 다만 이것만은 확실했어요. 매일 집을 나설 때마다 다짐했지만 저도 어쩔 수 없이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지금 제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오늘 아침 기온이 몇 도였는지 아세요?”
그녀가 무심히 제게 따라주었던 커피를 홀짝이더군요.
“체감온도 영하 23도였어요. 팀장님은 천막이 아니라 컨테이너 안에서 난로 쬐고 계시니까 일에 대한 생각을 하실 수 있는지 몰라도 저는요 밖에 서 있으면 아무 생각도 안 나요. 코로나 검사하러 오는 사람들도 눈에 안 들어와요. 하루 종일 지금 바람이 어느 쪽에서 부나 그것만 봐요. 조금이라도 바람 덜 맞는 데 찾아서 종종걸음 치다 보면 내가 지금 여기서 뭐 하나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가고 싶다 그 생각만 들어요. 시계 쳐다보면서 집에 가자 거의 다 됐다 진짜 집에 가자 그렇게 6시까지 버텨요. 1분, 1분 그렇게 온몸으로 밀고 나간다고요. 1분이라고 다 같은 1분인가요? 당신의 발이 나의 손과 쎄쎄쎄를 하자고 하는데 그럼 제가 좋다고 해야 하나요?”
스테인리스 잔에 담긴 커피가 그녀의 손 안에서 출렁거렸습니다. 그녀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는 고개를 한껏 위로 쳐들더군요. 마치 그렇게 하면 숨을 더 잘 쉴 수 있다는 듯이.
옆 컨테이너로 돌아가는 길에 바람이 적잖이 불어왔습니다. 방호복 사이로 바람이 파고들어 다리를 휘감고 지나갔습니다. 저는 이제 원두커피를 마시지 않게 되었어요. 추위에 떨다 보면 들쩍지근한 커피가 당긴다는 걸 그녀는 모를 겁니다. 얼음장 같은 손잡이를 돌려 안으로 들어서니 파트너 영심이 제 손을 잡아당기더군요.
“점심시간에 운동 같은 거 하지 말라니까 이 언니는 도통 말을 안 들어. 밖에 종일 서 있는 게 운동이 아니고 뭐야. 어머나 이 언니 이젠 손발도 모자라서 눈까지 얼었네. 아주 빨개. 내가 못 산다.”
그러면서 종잇장처럼 구겨진 다리를 힘겹게 펴고는 문을 밀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오후에는 제가 먼저 근무할 차례였지만 바꿔줄 모양이었습니다. 창문 앞을 지나가는 영심의 곱슬머리가 바람에 헝클어지는 게 보였습니다. 덕분에 저는 너무 매서웠던 한겨울 추위로부터 잠시 몸을 녹일 수 있었지요.
저는 영심의 진짜 이름을 모릅니다. 그저 유쾌하고 명랑한 여자였다는 것만 기억할 뿐. 잠시 스쳐 가는 사이에 이름이 무슨 소용일까 싶은데 그런 인연 중에도 누군가는 오래 기억되곤 합니다. 그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으로 시간을 길어 올립니다. 두 번, 세 번, 그렇게 잔잔하게 파문을 일으킬 테지요.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다시 만날 때까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당신의 시간이 평화로웠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의 외로움이 나를 부를 때*, 그때 다시 만났으면 합니다.
*장필순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