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바다가 그리울까?
우리 어머니는 10살,
그 어린 나이에 외할머니를 바다에 묻었다.
지금 살아계셨다면 나에게
외삼촌이라 불리었을 어머니의 남동생과 엄마.
흑백사진조차 없어
상상으로 그려낼 수도 없는 두 분은,
어느 날 갑자기 거품처럼 사라졌다.
작별인사 할 겨를도 없이 두 명의 가족을 집어삼킨 바다는,
우리 엄마가 평생 흘리신 땀과 눈물을 받아내며 더 깊고 매서워지는 듯했다.
성인 남성도 힘들어 도망간다는 새우통발 배를 타며 새벽부터 밤늦도록 멀미와 씨름했던
우리 어머니는 가정의 평안과 당신의 청춘을 맞바꾸며 꽃다운 20대를 보내야 했다.
내가 어머니였다면,
외할머니를 앗아간 바다가
쳐다보기도 싫었을 텐데,
우리를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기 위해
엄마는 철저히 바다에 무릎 꿇었다.
엄마가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 했던 10살,
내가 그 나이 됐을 때쯤
우연히 엄마의 일기장을 훔쳐보게 되었다.
“오늘은 그물에 다리가 걸려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다.
이대로 휩쓸려 떠내려가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
그때는 무덤덤하게 읽어 내려갔던 엄마의 일기에서,
뼛속까지 시린 고독이 느껴졌다.
5남매의 엄마로서,
경상도 장남 맏며느리로서의
책임만 다 하느라,
스스로를 잃고 서서히 소멸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여린 20대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너무도 험난했기에 엄마는
여느 20대 엄마들처럼 재기 발랄할 수 없었다.
늘 지쳐있었고, 몸과 마음은 상처나 있었다.
제비 새끼들처럼 엄마만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그 고단함은 늘 전이되었고,
나는 그렇게 엄마 이야기만 나오면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터뜨리는 마음 여린 아이로 자랐다.
그래서일까?
허리와 골반이 무너져 엉거주춤한 걸음걸이,
또래보다 많은 흰머리,
앞머리에 살짝 가리어진
어머니의 뇌 수술 자욱이
언제나 내 가슴을 무너뜨렸다.
그와 반대로
요즘 SNS에는 잘 정돈된 수목원의 꽃들처럼, 예쁘게 가꾸어진 50~60대 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친구의 어머니들만 봐도 이모나 친한 언니처럼 보이는 어머니들이 많다.
딸과 함께 샴페인을 즐기는 어머니도 보이고,
예쁘게 차려입고 백화점에 쇼핑가는 분들도 더러 있었다.
어머니 또래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 엄마의 고생이 내 탓인 것만 같아
괜히 죄송하고 코끝이 시려온다.
옷 한 벌 사고, 친구 만나는 게 어색해진 사람.
여행가방보다 시장가방 꾸려 일하러 가는 삶이
더 익숙한 우리 어머니께서
갑자기 한마디를 툭 뱉으셨다.
“엄마 제주도 한 달 살기라는 걸 하고 싶네..”
19살에 시집와 62살이 되기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일만 하셨던
우리 어머니.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개인적 욕망의 표현은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30년 전 밧줄에 이끌려 떠내려가고 싶다 말했던 한 여성에게,
진심으로 하고 싶은 것이 생겼나 보다.
그녀의 눈빛이 반짝이는 걸 처음 본다.
우리 엄마는 다시 바다를 사랑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