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이 햇살보다 익숙해졌던 날들의 기억
학교에서는 꽤나 익살스러운 포지션을 자처하는 나였지만, 학원에서는 그 어떤 이와도 가까이 지내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의 무책임함을 알면서도 내가 얼굴에 구김하나 없이 밝은 표정으로 모두를 대한다는 건 말 그대로 죄였다. 내가 학원에서 기쁨이나 행복이라는 감정을 가지는 것은 은밀해야만 했다. 그 감정의 소유를 표정으로 드러내는 순간, 어떤 중죄에 대한 공범이라는 것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신의를 다하지 않은 것을 아들인 나까지도 묵과한다면, 그 뻔뻔함에 수많은 학생들이 질려 도망갈 것 같았다. 나만큼은 양심을 끝까지 품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그들에게 실낱같은 정나미라도 남아 있지 않을까. 난 가족을 위하고 싶었다. 물론 내 성적이 기적처럼 오른다면, 그것이야말로 더없는 효도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성적표의 숫자들은 내 고통을 비웃듯 무시했고, 그 고통은 보상으로 더 큰 쾌락을 갈망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의 나는 절대 그런 류의 앓는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무엇도 원하거나 무엇에도 신음한 적이 없었다. 학원을 제외한 그룹에서 나는 항상 유쾌하고 또한 어딘지 모르게 음침한 면이 있는 아이 었을 테고, 그 지옥에서의 색채가 나의 표정이나 행동에 처연히 묻어 나온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외침은 서로의 주파수를 알아 본댔던가. 마치 나의 절규에 응답하다시피, 들개들이, 그보다는 더 정제되지 않은 위험에 가까운, 이리나 늑대 같은 것들끼리 서로의 꼬리를 들고 냄새를 맡듯, 야생의 그 친구들이 나를 먼저 찾아주었다. 서로의 아픔에 대해 꺼내어 놓고 예기된 동정과 위로를 구태여 주고받는다던가, 혹은 그 아픔에 대해 섣불리 지레짐작하지는 않았지만, 머리로 설명하기 이전에 마음으로 끌어당겨지는 그런 편안함의 방법을 그들은 익히 알고 있는 듯했다. 나 또한 그 방법에 대해 직접적으로 물음으로써 그들을 부담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들에게 속하고 싶었고, 그 무리를 이루고 싶었다. 그 이리 떼의 하나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내게 단비 같은 휴식을 안겨줄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들은 기존의 내 닫혀있는 가치관을 완전히 비웃는 듯한 자유로움을 가지고 있었다. 흔쾌히 그런 가치관을 부수어 넓히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었고, 앎에 대해 재고하도록 유도해 주었다. 가령, 작고 가엾은 개구리를 괴롭혀선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앎’이라는 것은 막연히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추상적인 절대적 강령이라든지, 어떤 거대 존재가 역으로 나를 희롱하는 것에 대한 무력함을 상상해 보라는 등의 막연한 주입에 불과했다. 날 괴롭힐 거대한 개구리가 이 세상에는 없다는 것을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어른들이 규정해 놓은 여러 말도 안 되는 조치들에 대해 피난하듯 물음표를 던져댔다. 동물을 괴롭혀선 안될 이유를 찾지 못했고, 술을 마셔선 안될 이유를 찾지 못했고, 담배를 피우면 안 될 이유도, 오토바이 위에 올라타면 안 될 이유도 찾지 못했다.
어른들이 ‘질 나쁘다’고 규정하는 아이들과 어울리게 되었지만, 이제는 ‘우리’가 되어버린, 그들에게 나는 확실히 위로받고 있었다. 이면의 내 아픔을 위로해 주는 그들은 사회의 인식처럼 철딱서니 없다거나, 문제만 일으키고 다니는 사고뭉치도 아니었다. 이 사회의 시스템은 당연하게도 모두를 품을 수 없었고, 미처 품어지지 못한 안타까움을 이구동성으로 토해내다 보니 서로의 냄새에 이끌려 자연스레 우리는 뭉치게 된 것이다. 그뿐이다. 그 속에서도 우리는 학교와 같이 무언가에 호기심을 가졌고, 그것에 대해 함께 배우며, 때때로 서로를 가르치기도 했다. 같은 시간에 모여, 항상 하는 것들을 다 같이 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배우기도 하며, 약속된 듯 무언가를 함께 섭취했다. 또한 그 가운데에 분명한 배움이 있었고, 가르침이 있었다. 학교인지 공터인지, 급식인지 술인지, 국어 영어 수학이냐 일탈이냐, 단지 그것의 차이였다. 이 것을 질적인 차이로 몰아버리는 시선은 국가가 정한 곳에서만 배움을 강요하는 폭력적인 오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유의 생각을 하며 학원으로 향하는 오후 5시 버스였다. 교복 바지의 오른쪽 뒷주머니에는 색이 기억나지 않는 라이터가 본인을 알리듯 내 엉덩이를 찔러댔다. 잠깐 다시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나 그 라이터를 옆으로 치워버리고 정리한 뒤 앉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골목으로 들어가, 언제부터였는지 한 자리를 꾸준히 지켜주는 먼지 쌓인 차 아래로 라이터를 조심히 던져 넣었다. 한숨을 서너 번 내쉰다. 하늘을 쳐다본다. 무지개는 오늘도 없구나. 학원으로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