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올 날을 기약하며
여행 첫날 새삼 건강의 중요성을 느꼈던 우리는, 마지막까지 무리하지 말고 잘 마무리하자고 다짐하며 호텔 로비에 짐을 맡겼다.
‘절대 무리하지 말고 스벅 갔다가, 우캉루 구경한 다음 마트 들러서 선물 사고, 식ㄷ….’
중국에 와서 내가 가장 종잡을 수 없었던 비용은 식비였다. 적게는 한 끼에 몇천 원, 많게는 5만 원이 훌쩍 넘어가곤 했는데, 마지막 날 방문했던 ‘상해 스타벅스 리저브 로스터리(星巴克臻选上海烘焙工坊)’는 후자에 속했다. 세계에서 두 번째, 아시아에서 제일 큰 스타벅스 매장이라는 이곳에서 우리는 5만 원어치를 해치웠다. 브런치 메뉴와 크루아상, 아메리카노 두 잔 시킨 가격치고는 비싸지만, 관광지로서의 구경 값도 포함됐다고 합리화하니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볼거리로 눈이 즐거웠던 건 사실이니까.
‘우캉루(武康路)’는 가장 강행군이었던 일정으로 기억된다. 우리는 양산으로도 막을 수 없는 강한 햇빛을 맞으며 길고 긴 우캉루를 걸었다. 부내나는 유럽풍 집들이 즐비한 거리를 걷는 건 좋았지만, 날은 안 좋았다. 마지막엔 더위 먹은 게 아닐까 싶을 만큼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어 카페로 피신했다. 그나마도 행운이었다. 빈자리 있는 카페 찾기도 힘들었다. 다 아침의 다짐을 그새 잊은 우리의 불찰이었다.
그 와중에 현지 마트에 들러 알차게 쇼핑까지 한 후 공항으로 갔다. 담배 냄새로 절여진 택시에서 내리자 기사님이 캐리어를 꺼내주며 인사하셨다. 그는 젠틀한 골초였다.
곧장 공항 안으로 들어가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했다. 두 세트에 5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햄버거였지만 콜라는 미지근했다. 그리고 미지근한 콜라가 따뜻해질 때까지 우리는 연착된 비행기를 기다렸다.
한국에 돌아와 처음 탄 택시는 감동적일 정도로 쾌적했다. 기사님이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는 사실도 감격스러웠다. 이번 여행을 통해 못 알아듣는다는 게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 백번 되새긴 터였다. 근데 또 궁금한 건 많아서 오랑우탄 엄청 귀찮게 함(미안).
익숙한 동네가 보이자 슬슬 긴장이 풀렸고, 집에 들어서자 무사히 돌아왔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고작 며칠 떠나 있었다고 이렇게 감회가 새로울 수가. 우리 집 침대가 참으로 뽀송뽀송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나에게 상해에서 가장 큰 고난은 누가 뭐래도 축축한 호텔 침대였는데, 마지막 날엔 일회용 커버를 사서 씌우고 잤음에도 뚫고 올라온 습기에 경악했다.
상해 여행을 계기로 몇 가지 결심한 것이 있다. 첫 번째는 중국어를 공부하기로 했다. 첫 해외라 인상이 깊었는지 내가 누볐던 그곳의 언어를 배우고 싶어졌다. 운 좋게도 바로 옆에 과외선생님을 두고 있는 나는, 글을 쓰고 있는 시점 약 1달 차 중린이다. 두 번째는 다시 중국에 갈 것이다. 여행 내내 오랑우탄에게만 의지한 것이 못내 아쉬웠는데, 여러모로 성장한 사람이 되어 꼭 다시 중국에 방문하고 싶다. 그곳이 상해일지, 다른 도시일지는 모르겠다.
끝으로 여행 내내 잘 이끌어준 남편 오랑우탄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깊은 여운으로 아직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던 상해 여행을 드디어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