킨텍스가 쏘아올린 작은 공
여행박람회 트래블쇼에 가기로 한 당일 아침, 가면서 먹을 김밥과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알차게 차에 실은 후 산뜻한 마음으로 출발했다. 지난 9월 말, 메가쇼 사전등록자 초대 메시지를 받은 후 함께 계획한 일정이었다.
“거기 킨텍스 몇 홀인지 봐봐.”
“잠깐만 거기가……. 코엑스라는데?”
“코엑… 에?”
다만 이제 그간 다녔던 메가쇼 데이터에 기반해 한 치의 의심 없이 일산 킨텍스로 향하려던 우리는, 사태 파악 후 한동안 정처 없이 주변을 떠돌았다. 더 멀리 가기 전에 확인해서 다행이다 싶다가도 어지간히 무심한 우리 모습에 어이없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차마 목적지를 강남으로 변경할 자신은 없어 급하게 노선을 방탈출로 틀었다. 올해 초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방탈출은 우리의 공통 취미 중 하나로 자리잡은 터였다. 어느덧 20방을 향해 가고 있지만, 이번에도 힌트 남발해서 겨우 탈출한 방린이 둘이었다. 어째 실력이 점점 퇴보하는 것 같다고 느끼며 카페로 향했다. 벌써 몇 번째 방문하는 레드벨벳 케이크 맛집이었다. 떨어진 당을 보충하고 있자니 고양이가 도도하게 주변을 거닐었다.
‘나만 고양이 없어’
다음날 가기로 했던 트레이더스를 하루 당겨 갔다. 언젠가부터 월례 행사처럼 매달 방문하는 데 의의를 두는 우리는 계란 두 판만을 덜렁 카트에 넣은 채 돌아다녔다. 문득 평소엔 관심도 두지 않던 즉석식품 코너의 유린기가 눈에 들어왔다.
“유린기는 용용선생이 맛있는데… 이건 그 맛 안 나겠지?”
정신을 차려보니 용용선생에서 유린기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알코올이 몸을 지배한 극P 인간 둘은 이내 극극그그극P로 진화해 코인노래방을 덮쳤다. 네다섯 곡만 부르고 가려 했던 생각과 달리, 우리는 ‘퍼펙트스코어’를 실행한 채 같은 곡을 세 번씩 부르며 노래 열정을 불태웠다. 의도치 않은 타이밍으로 다른 커플에게 방을 뺏겼지만 굴하지 않으며.
‘4곡만 더 부르고 가자’
‘딱 30분만 더 충전할게’
‘얼마 차이 안 나니까 12곡짜리로….’
세 시간이 훌쩍 지나, 다시 밖으로 나왔을 땐 버스킹이 한창이었다. 그들은 ‘윤종신-좋니’를 열창했다. 공교롭게도 조금 전 오랑우탄이 불렀던 곡이었다. 저런 노래였구나.
마지막 사치로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진이 다 빠졌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했다. 어느 것 하나 계획대로 된 건 없지만 나름 멋진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