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상해
마지막 글을 올린 지 두 달이 훨씬 더 넘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도저히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면 당연히 거짓말이다(연말은 제외). 막 브런치를 시작해 열심히 글을 올렸던 때와 달리 다시 직장을 다니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인투식스 직장인에 비하면 백배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있다. 난 파트타임이니까. 그냥 귀찮아서 안 올렸던 걸로.
약 한 달 전까지 내 일상은 중국어 공부와 메이플스토리로 꽉 차 있었다. 물론 그 사이엔 회사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열정을 쏟는 대상은 아니므로 일단 제외. 아무튼 그 말인즉슨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열정을 가진 것들에만 시간을 쏟을 여유가 있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매일 스타벅스에서 일정 시간 중국어를 공부하고, 저녁에는 오랑우탄과 나란히 앉아 메이플스토리를 했다. 그런 생활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아쉽게도 오래 유지되지는 못했다. 12월에 유독 큼지막한 이벤트가 많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벤트는 10월에 넣었던 LH 매입임대 모집에 당첨된 것이었다. 3순위를 받은 터라 큰 기대가 없던 상황에서, 예정보다 일주일가량 빨리 발표된 당첨 소식은 우리의 정신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얼떨떨함이 가시기도 전에 곧바로 난관에 부닥쳤다.
당장 사는 집을 빼는 것부터가 고비였다. 우리는 오랑우탄의 명의로 받은 중기청 전세대출로 살고 있었는데, 계약이 9달 정도 남은 상태였다. 문제는 LH 주택을 계약하게 되면 중기청 대출을 모두 상환하고 60일 내 입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집주인분께 상황을 설명한 후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집을 보겠다는 사람이 없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이 스멀스멀 머릿속을 지배했다.
‘이러다 당첨 취소되는 거 아니야?’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인터넷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글을 찾아보는 것뿐이었다. 절망과 희망 사이를 오갈 때 다행히도 우리의 사정을 안 집주인분이 전세를 월세로 변경해 주셨고, 베스트는 아니지만 적어도 이사는 할 수 있게 되었다. 난생처음 열람 기간에 맞춰 집을 살펴보고, 치열한(?) 계약 체결 현장도 경험했다. 높은 순번이 아니라 원하던 호수를 골라가진 못했지만, 나름 차선으로 생각한 곳에 갈 수 있던 건 행운이었다.
이사 한 번으로 그간 차곡차곡 모아둔 돈이 우습게 거덜 났다. 그럼에도 새 보금자리에 대한 기대가 더 컸나 보다. 통장 잔고를 봐도 자동 흐린 눈 되는 거 보면. 참, 별개로 이사는 정말 고됐다. 둘뿐이라 짐이 많지 않은 편인데도 꼬박 이틀은 짐 정리만 했다. 일주일 다 돼가는 지금도 아직 적응은 안 된다. 여기 왜 이렇게 좋아, 우리 집 맞아? 아니야, 임대야.
마지막으로 앞서 말했던 연말 이벤트 중에는 오랑우탄과 여행을 계획했던 일도 있다. 그래서 꼭 이 말로 마무리하는 글을 쓰고 싶었음. 곧 다시 상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