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여행, 전국 빵집 편
큰 기대와 긴장 속에서 내일로 여행을 떠났다. 2년여의 군생활을 제외하면 가장 긴 기간 집을 비우는 것이었기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여행에 대한 고민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내일로'라는 여행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특별한 순간이었고 오랜 기간 추억에 남을 여행일 것만 같았다. 앞일 알 수 없다지만 7일간의 여행을 혼자 떠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특별함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 여정 속에 소소한 재미를 더 해 보기로 했다.
기분 좋은 버터향에 기분이 '만빵'되어 그 유혹의 덫에 걸려들 수밖에 없는 '빵'을 여행의 테마로 삼아 떠나보기로 했다. 물론 '빵'이라는 주제로 인해 무언가를 느끼고 깨닫는 건 분명 아닐 것이다. 하지만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고 더욱 달콤하게 만들어줄 거라 생각했다. 여행도 결국 맛있어야 즐거운 법이니깐.
내일로 여행 첫날부터 강행군이었다. 무등산 등산을 시작으로 담양 죽녹원과 관방제림까지 돌아보는 아주 혹독한 일정이었다. 그만큼 광주에서의 시간은 바쁘게 흘러갔고 나의 체력 역시 빠르게 방전됐다. 분명 힘들었지만 나의 테마를 포기할 순 없는 것,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던 충장로 궁전제과를 찾아봤다.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궁전제과는 그 유명세에 알맞은 클래식한 외관을 자랑했다. 또한 그 역사가 40년이 넘었다고 하니 그 내공이 엄청났다. 빵의 맛에 있어선 광주의 수많은 빵집들이 1등에 도전할 수 있지만 광주를 대표하는 빵집이라면 궁전제과가 제일이 아닐까 싶다.
늦은 저녁 시간대에 찾아서일까? 궁전제과의 시그니처 메뉴인 공룡알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너무나도 아쉬운 마음에 '빵 먹으러 저 멀리서 왔어요ㅠ'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공룡알빵의 존재 유무를 물었는데 아쉽게도 다 판매됐단다. 슬펐지만 방법이 없었고 다른 빵을 골라봤다. 이름은 '망고 브리오슈'였는데 고소한 버터향과 망고의 과하지 않는 달콤함이 매력적이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빵을 들고 제과점 2층에 올라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대표 메뉴 : 공룡알빵, 나비 파이 등
영업시간 : 오전 8시 30분 ~ 오후 10시 30분 (충장 본점 기준)
주변 가볼 만한 곳 : 5·18 민주광장, 충장로 거리, 광주천, 무등산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짙은 바다 내음과 함께했던 여수는 일몰이 아름다운 도시였다. 여수엑스포역을 시작으로 오동도, 거북선대교, 돌산대교와 공원, 수산시장, 이순신광장 마지막으로 진남관을 연결하는 바닷길 코스가 매력적이었다. 또, 여수 하면 여해 이순신 장군을 빼놓을 수 없다. 장군의 이름을 딴 이순신광장에 들어서면 커다란 거북선 모형과 함께 '거북선 빵'이라는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빵집을 만나게 된다.
호기심을 증폭시키는 이 빵집은 두 가지 메뉴만 판매했다. 하나는 거북선 모형으로 만든 '거북선빵' 또 하나는 노오란 색감에 크림이 쏙~하고 들어간 '유자빵'이 있었다. 빵집 상호대로 거북선빵이 대표 메뉴이긴 했지만 그 맛이 너무 뻔할 것 같아 유자빵을 선택했다.
토실토실한(?) 빵의 모양과 크기부터 나의 시각을 사로잡더니 코끝으로 전해지는 향내도 참 상큼했다. 그리고 빵의 맛 역시 독특했는데 진한 유자향이 입안을 가득 채워 내가 빵을 먹고 있는 건지 유자를 먹고 있는 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화룡점정, 유자빵 한가운데에 올려진 유자 크림은 다소 과할 수 있는 유자향을 조절해줬고 쉽게 물리지 않게 만들어줬다. 그리고 주의할 점은 유자빵의 포만감은 생각보다 크다는 점이다. 배가 빵빵해져 다른 음식들을 못 먹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해야겠다.
대표 메뉴 : 거북선빵, 유자빵
영업시간 : 오전 9시 ~ 오후 6시
주변 가볼 만한 곳 : 진남관, 이순신광장, 해양공원, 오동도, 돌산대교 등
통영 중앙시장 주변은, 정말 다양하고 신선한 먹거리로 가득가득했다. 갓 잡아 올려 '펄떡펄떡' 싱싱한 해산물도 즐비했고 평소 접하지 못했던 시락국, 우짜, 멍게비빔밥 등 생소한 음식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통영의 명물이라 하면 고소하고 달콤한 매력의 '꿀빵'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통영의 명물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중앙시장 한편에는 수많은 꿀 빵집들로 가득했다.
통영의 다소 따뜻한 날씨에 빵을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다 탄생한 것이 바로 '꿀빵'이라고 한다. 기름에 튀겨내 오랜 시간 보관이 가능하고 맛은 더욱 고소해지니 이것이야말로 일석이조 아닌가. 지금은 그 종류도 다양해져 고구마 꿀빵, 완두 꿀빵, 흑미 꿀빵 등 입맛에 따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맛은 누구나 상상 가능한 그 맛이다. 고소하고 달달한, 호불호가 크게 갈리지 않을 맛이다.
대표 메뉴 : 통팥 꿀빵, 고구마 꿀빵, 완두 꿀빵 등
영업시간 : 오전 7시 ~ 오후 10시
주변 가볼 만한 곳 : 동피랑 마을, 남망산 조각공원, 통제영지, 이순신공원, 미륵산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광 도시하면 제주도, 서울 그리고 부산을 꼽게 된다. 손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명소와 여행지가 존재하고, 대중교통이 편리하며, 다양한 먹거리가 즐비하니 뚜벅이 여행자에게 이로운 삼박자가 톡톡 맞아떨어지는 도시다. 이러한 부산의 관광지들 사이에도 유명한 빵집은 존재했는데 그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지만 부산의 3대 빵집(옵스, 백구당, 비엔씨) 중 하나라고 하는 옵스를 찾아봤다.
빵집에 들어서니 수많은 빵들의 유혹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더군다나 결정장애가 있는 나에겐 빵 선택에 있어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 수밖에 없는 혼돈(?)의 빵집이었다. 또 사람들은 어찌나 많던지 '옵스'라는 빵집의 인기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옵스를 대표하는 빵보다 크림이 차지하는 비율이 더 높은 '슈크림빵'을 먹어보기로 했다.
부드러운 빵의 겉면을 뚫고 들어가면 입안으로 슈크림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온다. 분명 이름은 빵인데 내가 빵을 먹고 있는 건지 슈크림을 먹고 있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평소, 크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 찾아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대표 메뉴 : 슈크림빵, 명란 바게트 등
영업시간 : 오전 8시 ~ 오후 11시 (해운대점 기준)
주변 가볼 만한 곳 : 해운대 해수욕장, 해운대 시장, 달맞이 길, 동백섬
천년고도 경주는 다양한 문화재와 접근성에 있어서 좋은 도시였다. 버스를 타지 않아도 될 만큼 여행지간의 간격이 좁았고 두발로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서 기분 전환하기에 좋은 여행지였다. 이러한 경주에는 전 국민이 알고 있을 법한 빵이 하나 있는데 '경주시 특산명과'로 지정된 황남빵이 대릉원 앞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경주시 황남동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하여 황남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부산 옵스의 슈크림빵과 같이 빵이 맞나 싶을 정도로 팥이 가득가득했다. 그렇다고 팥소의 당도가 높지도 않았으며, 팥을 감싸고 있는 빵 반죽이 팥의 당도를 야금야금 먹어치웠다. 그래서인지 물리지 않고 많은 양을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황남빵은 따뜻한 온기가 사라져도 맛있지만 되도록이면 구입 즉시 먹는 걸 추천한다. 빵을 호호~ 불어 가며 먹는 그 담백하고 달콤한 맛이 황남빵의 참매력이기 때문이다.
대표 메뉴 : 황남빵
영업시간 : 오전 8시 ~ 오후 11시
주변 가볼 만한 곳 : 대릉원, 첨성대, 교촌 한옥마을, 반월성, 동궁과 월지, 황룡사지 등
장마의 시작과 함께 찾았던 경북 포항이다. 비가 미친 듯이 쏟아져 여행을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하지만, 나의 내일로 여행이 가진 테마를 무너트릴 순 없었다. 오로지 빵집 방문을 목적으로 거세게 몰아치는 장마를 뚫고 달려 나갔다. 상호는 한스드림 베이커리, '프랑스 제빵 월드컵 국가대표 기능장'이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100% 유기농 밀과 우리밀을 사용한다고 한다. 빵집을 찾는 손님들의 건강까지도 챙기는듯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한스드림 역시 다양하고 색다른 빵 종류가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이 집을 대표하는 갈릭 바게트를 먹어보기로 했다. 바게트라 하여 딱딱할 줄 알았는데 부드러운 식감을 가지고 있어 굉장히 놀랐다. 마늘의 풍미와 적절한 달콤함이 뒤섞여 '맛 깡패'라 칭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그 맛이 좋았다.
대표 메뉴 : 갈릭 바게트, 아몬드 카스텔라 등
영업시간 : 오전 8시 ~ 오후 11시
주변 가볼 만한 곳 : 형산강, 영일대, 송도해수욕장, 죽도시장 등
여행을 하는 데 있어서 소소한 재미를 더하고 입까지 즐겁게 해줬던 빵집 투어! 각 지역의 맛과 특색을 살린 빵이 전국적으로 정말 많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무계획 또는 자유여행도 물론 좋다. 하지만 자신만의 테마를 내세워 조금 더 유익하고 기억에 남을 여행을 계획해보는 건 어떨까? 몸은 조금 힘들겠지만 깊고 진한 추억이 되어 내 마음에 오랫동안 새겨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