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에서 느끼는 계절의 변화
계절의 변화를 무엇을 보고 느끼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결에 스치는 바람과 기온만으로 계절의 변화를 판단하는 듯싶다. 물론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더군다나 워낙 수동적인 사람이었던 터라 계절이 변화하는 것에 대해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한마디로 무관심했었다.
그런 내게 도봉산의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이 체험의 기회는 내 자의에서 시작됐지만 결국 이것을 선택했으니 기회는 기회였던 것이다. 지금은 내게 은근이자 친구와도 같은 도봉산의 첫인상은 매우 사악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등산이라고는 중학교 때 현장학습으로 끌려간 것이 전부였고, 꽤나 묵직했던 나의 체중들이 등산을 꺼려했다.
그래도 친해지려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도봉산은 마음의 문이 열었는지,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깨닫게 해줬다. 자연이 주는 색상, 모양 그리고 변화가 너무나도 신비했고 그 모습들을 나의 눈과 사진 속에 기록하며 도봉산과 친해져 갔다.
길다면 긴 시간을 투자해 우여곡절 끝에 완성한 '도봉산의 사계'를 소개해볼까 한다.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의 도봉산은 한 번씩 경험한 적이 있던 터라 그 모습들이 익숙했는데 계절 '봄'만은 경험하지 못했던 터라 그 변화가 궁금했다. 그렇게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올 무렵, 도봉산의 봄을 찾았다. 덥지도 차갑지도 않은 훈훈한 날씨 속에서 오랜만에 등산하는 기분은 참 좋았다. 산을 가득 채우고 있는 수많은 나무들에선 연두빛깔의 새싹이 새록새록 피어났고, 알록달록 다양한 색감들을 뽐내는 봄꽃이 가득했다.
매서운 추위에 한껏 몸을 움츠리고 있었던 나 자신도, 서서히 계절 봄에 적응을 해가는지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땀 흘리는 즐거움'을 봄에게 배우고 있었다. 등산은 익숙했지만 봄에 오르는 산은 새롭고 희망찼다.
그 여리던 봄 새싹들이 진한 색감을 내뿜으며 더욱 강해졌다. 태양이 쏟아내는 강렬한 불볕도 차단할 만큼 강인해졌다. 하지만 푸르른 나무가 햇볕을 가려준다고 한들, 여름 산에 도전하는 건 정말 쉽지 않다. '등산해볼까?'라는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고 쉽게 생각하지만 '등산 하자'라는 다짐을 받아내는 건 꽤 어려운 일이다.
그 다짐만 받아낸다면 다음의 과정들은 손쉽게 풀린다. 비처럼 쏟아지는 땀을 보며 희열을 느끼게 되며 자신의 체력에 한계점에 도달하게 되면 아드레날린과 같은 물질이 분비되어 아무리 힘든 능선길도 가뿐히 오르고 내리는 초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계절 봄의 꽃,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처럼 아름다운 빛깔은 없지만 가장 재밌는 등산의 계절을 꼽으라면 여름을 선택할 것이다.
오색찬란의 계절이 돌아왔다. 그 누구는 가을 단풍을 보기 위해 1년을 기다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을산의 색은 참 곱다.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도봉산을 붉게 물들인 가을 단풍은 있는 힘껏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떠나간 뒤 후회 말라는' 바람과 함께 말이다.
단풍이 내린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발걸음은 더뎌진다. 지금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붉은 색감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담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 어느 계절보다 시간 소모가 크지만 자연이 주는 진득한 감성을 누릴 수 있기에 모든 게 용서된다. 가을이 주는 즐거움을 가득 품고서 하산하지만 짧게 지나는 단풍은 너무나도 아쉽다.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한다. '눈이 내리면 곧바로 산에 간다'라는 나만의 다짐이 있었지만 정작 눈이 내리기 시작하니 내 마음은 갈팡질팡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면 분명 후회할 것 같아 다부진 마음을 먹고 설산으로 향한다. 산을 오르는 내내 춥고, 어렵고, 외롭다. 오로지 눈부시게 아름다운 설경을 보기 위해 힘을 쓰고 힘을 낸다.
정상 부근에 다다르면 산아래에선 상상치도 못했던 순백의 세상이 펼쳐진다. 한없이 올라 이젠 익숙할 법도 한데 눈으로 뒤덮인 도봉산의 모습은 아직도 낯설다. 살이 파이는듯한 칼바람이 불어댔지만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능선길이 눈앞에서 펼쳐지니 고통은 곧이어 희열로 변해갔다. 나 혼자만 보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비경이었다. 이 짜릿한 겨울산의 매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눈이 눈을 즐겁게 하는 이 세상을 말이다.
아낌없이 주는 도봉산 덕분에 몸과 마음이 치유되고 더 나아가 '자연을 즐기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 내가 여행을 좋아하게 된 계기도 바로 도봉산에서부터 시작됐다. 산의 광활한 전경이 시야를 넓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지금은 전국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다소 늦게 터득한 여행의 참 재미를 즐기는 중이다.
계절의 변화는 아쉽기도 하면서 기대된다. 참, 웃기면서도 오묘한 감정이 아닌가? 이러한 감정들은 10년이 지나도 20년이 지나도 쉽게 변하진 않을 것 같다. 그저, 지금 내게 주어진 계절을 최대한 즐겁게 누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