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아산 외암 민속마을 가는 길
유명 여행지들로만 채워진 가이드북을 벗어나 나만의 느낌이 담긴 충청남도 여행을 계획했다. 명소를 무작정 찾아 나서기보다 내 취향과 느낌을 존중한 여행이었다. 아산, 예산, 부여에 이르는 2박 3일간의 홀로 버스여행을 시작한다.
오전 8시 25분, 온양온천 역에서 외암 민속마을로 향하는 101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창에 비치는 따스한 가을볕은 곡식의 고개만 숙이는 것이 아닌 사람들의 고개까지 떨궜다. 그렇게 15분쯤 지났을까, 버스는 읍내동에 있는 한 친숙한 길목에 들어섰고 나는 창 밖을 응시하며 깊은 사색에 잠긴다. 101번 버스가 읍내동을 지나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여운은 생각보다 더 강렬했다.
나에게 충청남도 아산은 특별한 도시다. 할머니의 고향이자, 엄마의 청춘이 고스란히 담긴 장소이기 때문에 그 애정이 남달랐다. 특히 읍내동은 할머니가 살아생전 거주했던 동네였기에 애정을 넘어 애환이 서린 장소였다. 오랜만에 보는 읍내동 전경이 반갑다가도, 다신 보지 못할 할머니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진다.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복잡 미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버스도 정류장을 떠나듯, 먹먹해진 마음도 곧 지나리라 믿고 현실에 주어진 여행길에 집중하기로 한다.
우여곡절 끝에 101번 버스의 마지막 승객으로 정류장에 하차했다. 입장시간에 맞춰 찾다 보니 마을은 한적함 그 자체였다. 외암마을은 약 500년 전, 예안 이 씨를 중심으로 민가가 형성되어 건재고택, 참판 댁, 송화 댁, 고수 댁 등 다수의 문화재가 보존되어있는 전통마을이다. 마을 뒤쪽으로는 설화산이 자리 잡고 있으며, 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마을 옆을 지난다. 몇몇 고택과 초가는 실제 사람이 거주하는 공간이기에 정숙한 관람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소나무길에 불어오는 시원한 산들바람과 함께 시작된 마을 견학은 조선시대 과거 여행이라 표현해도 충분할 만큼 고택과 초가의 원형이 잘 보존돼 있었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푸른 들녘은 수수한 매력을 뽐냈으며, 돌담길에 만들어진 시원한 나무 그늘은 힐링된 마음을 갖기에 충분했다. 소박한 마을의 모습에서 다양한 생각과 감정이 느껴진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느림의 고장' 외암마을에서도 빠르게 지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시곗바늘이다. 자연 속 여유를 만끽하다 버스 시간을 놓친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구수한 입담을 가진 기사님의 배려로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다시 친숙한 읍내동을 지나며 기분 좋은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