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나쁜 말은 아니다. 처음부터 이혼을 염두해 두고 하는 결혼은 좀 문제가 있으니, 당연히 모든 결혼한 사람이 지향해야 하는 바 이기도 하다. 조금 다정한 어투로 말하면 로맨틱한 말이 될 가능성도 있다. 조금 더 부드럽게, '무슨 일이 있어도 너와의 결혼을 포기하지 않겠다.' 정도로 말한다면 사실 그 찜찜함이 훨씬 덜 할 것같긴 하다. 그러고 보면 이혼 이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부정적인 느낌 때문에 조금 꺼림직한 느낌이 드는 것일 수 도 있겠다. 굳이 이혼 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평생 이혼하지 않겠다는 말은 뭔가 찝찝하다.
왜 그럴까?
먼저 남편들이 이런 말을 하는 의도를 먼저 설명해 보겠다. 이건 정말 순수하게, 말 그대로 이 결혼에 올인하겠다는 의미이자 다짐일 확률이 높다.(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논외로 하자) 자신의 인생을 결고 결혼을 지키겠다는 어찌보면 경건하기 까지한 '맹세'이다. 스스로 뱉은 말을 지키려고 하는 남편들이 대게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이는 자기 내면의 어떤 원칙이자 신념, 어떤 중요한 가치관 같은 그런 문장이다. 아주 조금만 과장하자면, '당신이 무슨 짓을 저질러도 나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겠다.' 라는 말이며 '다른 여자에게 절대 눈을 돌리지 않겠다' 라는 의미 이기도 하다. 뭐, 이렇게까지 이야기 하면 조금은 로멘틱한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어쨌거나 남편들의 이런 말은 이런 신성한 느낌의 무언가 선언 같은, 아내를 향한 사랑고백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남편들이 이 말을 할 때 기대하는 아내의 반응은 사랑고백을 할 때의 그것과 같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아내의 반응이 무언가 애매하면, 남편 입장에선 굉장히 당황스럽다. 그냥 아내에게 '당신만을 평생 사랑할게', 라고 말했는데(차라리 그냥 이렇게 말하는게 더 좋을텐데..) '뭐 그게 되겠어?'라는 말을 듣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물론 아내도 대충 남편이 굉장히 좋은 의도로 그렇게 말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언젠가는 이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여하튼 아내의 반응이 예상과 다르면, 남편은 어쩌면 화를 낼 수도 있겠다. 혹은, '당신은 날 진짜 사랑하지 않는거야' 라고 서운해 할 수도 있겠다. 뭐, 남편 입장에서는 억울하긴 하다.
결혼, 부부관계를 바라보는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여기에서 조금 드러난다.
남성들에게 있어서 결혼은 어떤 '사건'이며, 그 사건이 발생한 이후의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다. 결혼을 하는 순간, 난 결혼했음. 이라는 속성이 내게 생기는 것이다. 결혼 생활이라는 것은 결혼한 상태 를 유지하기 위한 여러가지 활동(집에서 잠자기, 아내와 시간보내기 등..)으로 인식한다. 남성들에게 결혼은 때때로 스스로 이룩한 성과나 성취와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다.
반면 여성들에게 결혼은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남편과 어떤 특별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내 인생에 남편이라는 존재가 생기면서 그 존재와 함께 상호작용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단지 남편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남편의 가족과의 관계도 생기며 그 관계들 역시 중요하게 관리되어야 하는 그룹이다. 내가 새로운 그룹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주기적으로 관리하고 확인해야 하는 어떤 것이며 언제든지 '깨질 수 있는' 것이다.
즉, 관계를 어떻게 맺어 왔는지 경험의 차이에서 생기는 문제이다. 남성들은 한번 친구가 되면, 별일 없는 한 그 관계가 계속 유지된다. 한 번 친구가 되었다면 몇 년만에 연락해도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엄청 친한 친구이지만 일 년에 한번도 연락을 안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여성들은 그렇게 관계를 맺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연락의 빈도와 친밀감의 빈도가 비례하는 편이다. 주기적으로 관계를 '관리'하지 않으면 그 관계는 점점 나빠지고 사라진다.
아내에게 있어 결혼이란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아주 중요한 관계이다.
중요한 관계일 수록 좋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만일 그 관계가 나빠진다면 결혼생활은 정말로 불행해질 것이다. 그런데, 남편이 절대 이혼하지 않겠다, 라고 선언하였다. 물론 이혼하고 싶지 않지만, 이혼하지 않겠다라고 하는 선언에는 관계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다. 좋고 긍정적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하기 보다는 '결혼한 상태'를 더 중요시 하겠다는 의미로 들리기도 한다. 아내들 입장에서는 단지 '결혼을 유지'하기 보다는 '좋은 결혼생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단지 이혼하지 않겠다는 선언에서는 관계에 대한 언급이 없기 때문에, 조금 과장하자면, 아내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말이다.
조금 더 확대해서 해석하자면 이미 결혼했기 때문에 무언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겠다는 의미로 들리기까지 하다. 이미 '결혼'이라는 상태에 도달했다면 무언가 더 할 필요가 없게 된다. 아내의 입장에서 남편이 '좋은 결혼 생활'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이며, 걱정할 만한 문제이다. 우리세대의 젊은 아내들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결혼에 대한 좋은 예시를 많이 경험하지 못했다.(무심한,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남편이다.) 너무도 많은 불행한 결혼에 대한 예시를 아내들은 알고 있으며, 자신의 결혼 생활이 그렇게 되지 않기를 정말이지 간절하게 바란다.
'정말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만일 결혼생활이 그렇게 나빠진다면,
'정말 그러고 싶지 않지만' 아내가 그 관계에서 탈출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이혼이다.
그리고 남편이 이혼은 안하겠다는 선언을 함으로 유일한 탈출구를 막으려하고 있다. 정말이지 퇴로가 없는 느낌이라 답답하다. 적절한 예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직 결혼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는데 남자친구가 너랑은 절대 헤어지지 않을꺼야 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결혼은 연애와 다르긴 하지만 그런 퇴로가 없다는 느낌은 비슷하다. 여자친구가 아내가 되고, 남자친구가 남편이 되었다고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는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같은 사람이니까 결혼해도 같은 느낌인 거다.(물론 결혼 이후 엄청 다르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결혼을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닌 것 처럼, 이혼 역시 남편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남편이 그걸 혼자 결정하고 선언하는가. 물론 이혼할 생각이 있는 것 아니지만, 선택을 할 수 있는 선택권은 아내에게 주어져야 한다. 그리고 애정을 인질로 그러한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물론 앞서 이야기 했듯 남편들은 서운할 수 있다. '당신을 사랑하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남편이 생각하는 결혼 생활의 개념과 아내가 생각하는 결혼 생활의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아내가 그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들은 그런 식으로 관계를 맺지 않을 뿐이다.
관계는 깨질 가능성이 있을 때 오히려 더 집중하고 관심을 가지게 된다. 헤어질까 두려워 연인사이에 서로에게 더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결혼한 이후에도 이혼할까 두려워 서로에게 더 관심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관계까 더 좋아질 수 있다면 이혼할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이, 이혼할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보다 더 좋은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말 평생 남편만을 사랑하고 싶지만, 관계는 쌍방에서 함께 노력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편도 그렇게 노력해 주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연애할 때 다정했던 남자친구가 결혼 한 이후 무심한 남편이 되어버릴까봐 두려워 하는 것 뿐이다.
남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사실 이거다. 결혼했다고 해서 관계를 소홀히 하면 아내는 당신과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싶어하지 않게 될 것이다. 사실 당연한 이야기다. 만일 남편들이 결혼 이후에 충분한 신뢰를 안내에게 제공하고 많은 시간을 함께 한다면 아내들의 마음에서 그 찝찝함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아내들도 남편의 그 맹세에 시큰둥 하지 말고 무엇을 무엇을 걱정하는지 설명해 주면 좋을 것 같다. 그런 맹세까지 할 정도의 남편이라면 대부분의 경우 이해하며, 좋은 관계를 위한 노력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니까, 서로 사랑하는 부부 여러분들, 작은 것으로 서로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