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 안 낳을 거면 결혼을 왜 해?
결혼하면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의견에 대해 동의하는 여성들 조차 이런 말을 듣는 것을 썩 유쾌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아마도 이렇게 항변할 것이다. 난 그냥 사실대로, 내 의견을 말했는데 뭐, 그것에 대해 기분 나빠 하느냐고.
조금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키 작은 사람에게 너 키 진짜 작다. 라고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이유이다. 그럼 아마 또 이 말을 한 사람들은 화를 내며 그게 왜 이것과 같냐고 할 것이다. 그건 신체를 비하하는 것이고 이것은 특정 대상을 한정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다르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짧게 설명하자면, 기분 좋게 말할 수 있는 건 기분 좋게 말하자는 의미이다.
그럼 위의 말의 무엇이 기분이 나쁠 수 있는지에 대해 먼저 설명해야 할 것이다. 위의 '의견제시'는 상당히 많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런 의견이나 생각들은 말하는 사람의 가치관이나 의견과 상관없이 듣는 사람 입장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러올 '수' 있다. 물론 그런 사회적 메시지를 모르는 사람 입장에서는 당연히 무엇이 부정적인 이미지인지 모를 것이다. 혹은 그런 사회적 메시지를 알고 있지만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뭐, 그렇게까지 크게 받아들이냐고 불평할 수도 있겠다. 일단, 위의 발언이 어떤 부정적인 인상을 불러 올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잠시후 다시 이야기하겠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앞선 '의견제시'에 이런 긴 글을 적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냥 기분 좋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자고 말하는 정도의 의미이다. 이왕이면 그렇지 않은가? 말을 할 때는 기본적으로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떻게 들리는지 고려해서 말하는 것이 항상 좋다. 일부러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할 의도가 아니라면 나쁘게 들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것은 피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 이말이다.
그리고 하나 더, 여성들은 대부분의 경우 사적 대화의 자리에서, 의견을 나눔 보다 친근한 대화 자체를 더 중요시 한다. 즉,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는 발언은 기본적으로 대화의 목적인 '친근한 대화'를 심각히 훼손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염두해 두기 바란다.
이쯤에서 누구에게 이 말을 했는지에 대해 한번 언급해야 겠다. 이 발언을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이나 위 발언 자체와 관계가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사실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미 결혼해서 애를 낳은 사람이라던가 그냥 사적인 내용을 전혀 서로 전혀 모르고 관계도 없는 사람이라면 뭐 기분이 나쁠 확률은 드물다. 하지만 말하는 사람과 연인관계같은 특별한 관계에 있거나, 아직 결혼을 안한 사람 (그러나 사회적으로 결혼의 압박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는), 혹은 결혼은 했지만 아이를 낳지 않은 사람이라면, 위의 '의견제시'는 말하는 사람이 의도하지 않은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 그러니까 듣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좀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잡설이 길었다. 위의 '의견제시'가 가져올 부정적인 느낌에 대해 더 설명해 보겠다.
먼저 위의 '의견 제시'를 평문으로 바꾸면 '아이를 안 낳을 거면 결혼을 하지 않는다.' 일 것이다. 이는 '결혼을 했다면 아이를 낳아야 한다.'와 같은 말이다(대우명제이다). 여기서 첫번쨰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아이를 낳는 주체는 여성이다. 결혼을 하면 여성의 입장에서는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의무가 생기는 것이다. 남성을 아이를 낳지 않고 기른다. 낳다는 말을 넓은 의미로 해석하면 남성에게도 의무가 생기는 것이라고 항변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어쨌건 실제로 아이를 '낳는'것은 여성이다. 위 말은 결혼하면 여성은 아이를 낳아야한다는 의무를 상기하는 말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아이를 낳는 것이 왜 의무냐고? ~해야 한다는 말이 의무를 나타내는 말이다.
두번째로, 사실 위의 의견은 왜 결혼해, 로 끝났기 때문에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을 한다' 라는 말과 같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런 해석은 결혼의 필요성을 논하는 것으로 사실 결혼의 의미를 상당히 격하시킨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현대사회에서 결혼을 하는 목적은 아이를 낳기 위해서가 아니다. 결혼을 하는 이유는 함께 살기 위해서이며, 특별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이다. 아이는 결혼으로 인해서 생긴 결과이다. 아이를 낳기 위해 결혼을 한다는 해석은 결혼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격하시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아이를 낳는 의무를 가진' 여성의 입장에서는 아이를 낳는 도구로 전락하게 되어 버린다. 사람은 누구나 도구취급을 받으면 기분이 나빠한다. 여성도 당연히 그렇다.
이 외에도 여성들 입장에서는 결혼, 아이, 등의 단어를 듣는 순간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연상된다. 육아, 경력단절, 워킹맘, 시집살이(시월드)와 같은 단어들 말이다. 물론 더 긍정적인 단어들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위 단어들도 시집살이 정도만 제외하면 사실 그렇게 부정적이기만 한 단어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말이다.
거기다가 앞서 이야기한 사회적 메시지 중 몇 가지 부정적인 것들만 예시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여자는 때되면 결혼해야해', '요즘 여자들은 아이를 안 낳으려해서 문제야.', '여자는 결혼 잘해서 애나 키우면 되지.' 와 같은 말들이 있다. 물론 펄쩍 뛰며 여기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위와 같은 말이 떠오를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이 말을 듣는 사람이 갑자기 엄청 기분 나빠하면, 난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고! 하며 회내지 말라는 말이다. 아 그럴 수 있지 하고 이해해 주면 된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은가.
그럼에도 아이를 낳는 것은 결혼을 결정에 있어서 그만큼 매우 중요하기 떄문에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말할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 어떻게 그렇게 세세하게 상대방의 감정까지 다 신경써서 말하냐고 하면서 말이다. 여성들도 기분나빠하는 순간 상대방의 감정을 신경쓰지 않는게 아니냐면서 말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 상대방의 감정이나 기분을 고려하지 않고 말하는 것은 물론 자유다. 근데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것이 그렇게 엄청 어렵거나 대단한게 아니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말해보자고 하는 것이다.
사실 위의 말은 우선순서가 잘못되었다. 결혼보다 아이를 우선하고 있다. 물론 결혼을 결정함에 있어서 아이를 낳을 지 여부는 매우 중요한 요인임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렇게 물어보자. 결혼이 중요한가 아이가 중요한가? 물론 둘 다 중요하다. 그래도 하나를 우선해야 한다면 무엇을 우선해야 할까? 당연히 결혼이다. 위의 말에서는 우선순위가 결혼보다는 아이에 있다. 사실 그래서 기분이 나쁜거다. 그래서 그냥 순서만 바꾸면 된다.
결혼 하면 아이는 낳는 게 좋을 것 같아.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은가? 어려운 말이 아니다. 좀 더 강하게 의견을 피력하고 싶다면 '결혼하면 아이는 꼭 낳아야 한다고 생각해'도 있을 것 같다. 아이 안 낳을 거면 왜 결혼해? 와 궁극적으로는 같은 말이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엄청나게 다르다. 그냥 듣는 사람 좋으라고 이렇게 말하는게 그렇게 어려운가? 만일 당신이 이 글을보며 계속 마음에 안들어 했다면, 이 별것 아닌 말 때문에 여성들과의 관계를 심각하게 망치려고 한 것이다. 이건 여성들에겐 중요한 문제고 당신한텐 어려운 일 아니니까 그냥 이렇게 말하면 어떨까? 이 말하려고 이렇게 길게 썼다. 중요하는 건 내용이 아니라 말하는 방식이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