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산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도 적응 안 되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겨울 날씨다. 일 년 중 6개월은 흐리고 비 오는 날이 많은데, 특히 겨울이 그러하다. 이번 주도 일주일 중 하루만 해가 빼꼼히 나오고 다시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습도 90퍼센트가 넘는 우기이다 보니 온몸 뼈 마디가 시리다. 집이 추운데 보일러 요금이 비싸고 틀어도 레디어이터의 온기는 오래 못 가서 늘 추위에 시달리고, 그러다 보니 기분이 종종 언짢다. 집 앞 공원을 몇 번 돌면 혈액 순환이 되어서 몸이 잠시나마 따뜻해지기에 오늘도 가랑비를 맞으며 공원으로 나섰다. 그런데 갱년기를 겪고 있어 쉽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나서 그런지 오늘은 영국의 지긋지긋한 날씨에 욕이 나올뻔했다.
한발 한발 내딛으면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생각들이 먼지처럼 떠다녔다. 한국에 그냥 있었다면... 요즘 한창 주가가 상승 중인 남편 회사에서 주는 보너스로 아이 사립학교 학비도 벌써 몇 년 치 벌었을 텐데... 나는 내가 배우고 싶은 것 마음껏 배우러 다녔을 텐데... 홀로 계신 엄마 곁에 더 가까이 있을 수 있을 텐데... 몇 마디 나누지 않아도 그저 위로가 되는 친구들을 더 자주 만날 수 있을 텐데... 나는 좀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에서 생각들과 줄다리기를 하며 공원을 한 바퀴 반쯤 돌았을 때, 공원 건너편 집에서 엠블란스 들것에 실려가는 이웃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일주일 전쯤엔 옆집 아이가 엠블란스에 실려갔었고 요즘 유난히 동네에서 엠블란스를 자주 만났다. 그제야 나는 간사하게도 다시 무탈한 하루를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꼈다. 아무 비극이 없는 일상을 살고 있음에 감사했다. 내 두 발로 걸을 수 있음에 감사했다. 이 마음을 잊지 말아야지 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