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친구를 떠나 이방인으로 사는 게 좋진 않지만, 이제는 그런대로 지금 영국에서의 삶에 만족하게 된 것 같다.
어찌 보면 정말 다행이다. 그전까지는 내가 영국에서 잘 지낼 수 있을까 너무 불안하고, 자신 없었고, 두려웠기 때문이다.. 과거에 힘들었다고 현재나 미래도 힘들 건 아닌 것이었다.
요즘은 특히 내가 사는 런던에 대한 애정이 마구 샘솟는다.
거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문화 예술 관람
우선, 문화 예술을 공부했고 사랑하는 나에게 런던은 박물관과 미술관에서의 전시, 그리고 Barbican을 비롯한 여러 공연장에서 항상 세계 최고의 예술을 빠르게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수준 높은 문화 예술을 향유하는 데 있어서 돈이 그렇게 많이 드는 것이 아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영국의 박물관, 미술관의 입장료는 공짜여서 상설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그리고 공연 티켓 가격도 한국보다 저렴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표적으로 여름에 하는 가장 큰 클래식 음악축제라고 할 수 있는 BBC Proms는 서서 봐야 하는 스탠딩석인 6파운드짜리 티켓으로 수준 높은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Royal Ballet나 뮤지컬 공연장에서도 잘 찾아보면 저렴한 스탠딩석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소규모 클래식 공연장인 Wigmore Hall이나 현대무용전용 공연장인 Saddler's Wells에서도 15파운드(한화 약 22,000원)에 공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종종 있다. 성악가 조수미나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와서 공연을 하기도 했던 Wigmore Hall에서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공연을 15파운드에 주고 본 적이 있다. 발레나 현대무용 공연을 볼 때 아이의 티켓은 어른의 반값일 경우도 많다.
뮤지컬 공연 같은 경우 8월에 <뮤지컬 키즈위크> 행사가 있다. 이것은 8월에 공연하는 뮤지컬을 어른이 티켓 구매 시 아이 티켓은 무료인 행사이다. 항상 인기가 많아서 6월 초쯤에 officiallondontheatre 같은 데서 예매 사이트가 오픈하자마자 티켓을 구매해야 된다.
영화의 경우 잘 찾아보면 저렴한 티켓을 구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다. Vue에서는 홈페이지를 잘 참고하면 <슈퍼 먼데이>라고 해서 월요일 상영 중인 영화 티켓을 반값에 구매할 수 있다. 그리고 주말 오전에 Vue의 <Mini Mornings>는 어린이 영화를 2.5파운드 정도로 저렴하게 볼 수 있게 해 준다. 비슷하게 Barbican에서도 토요일 오전에 <family film club>이라고 어린이 영화를 3.5파운드에 상영한다.
다양한 무료 이벤트
매주 화요일에 발행되는 무가지 Time Out London을 잘 보면 다양한 무료 이벤트들을 찾아볼 수 있다.
이번 주말에는 특히 여러 가지가 많았는데 그중 <West End Live>라고 매년 트라팔가스퀘어에서 11시부터 5시까지 하는 무료 뮤지컬 갈라쇼가 있었고, <Open House Families>라는 건축 축제가 있었다. 이 건축 축제는 런던의 다양한 장소와 기관에서 진행되는 이벤트로 나는 아들과 Royal Institute of British Architects(RIBA)에서 이 행사를 즐겼다. RIBA에선 루마니아의 특정 지역의 전통 건축양식을 소개하며 Breaking the Boundaries라는 주제로 이벤트를 진행하였고, 평소 레고나 블록으로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와 함께 상자로 빌딩을 만드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였다.
RIBA에서 건축축제 행사
이번 주말과 다음 주에도 계속되는 <Greenwich Docklands International Festival>은 이스트 런던에서 하는 다양한 거리극 축제라고 할 수 있는데, 나는 다음 주에 아들 친구네와 함께 이 행사에 가볼 예정이다.
쇼핑
우리나라에서 옷을 사는 것보다 영국에서 사는 게 가격이 저렴할 뿐만 아니라, 요즘 하는 여름 세일을 잘 이용하면 득템의 기회가 많다. 겨울에는 Boxing Day라고 해서 12월 26일부터 영국 최대의 세일이 있긴 하지만 사실 경기 불황인 영국에서는 중간중간에 10-20% 정도 세일도 많이 한다.
나는 최근에 존 루이스에서 프랑스 고급 양말을 정가의 4분의 1 가격에 득템 했다. 발이 큰 나는 한국에서는 맞는 사이즈의 신발이나 여성 양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색깔이 예쁘고 신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아서 사버렸는데 말도안되는 남대문 가격대에 산거나 마찬가지이다.
런던에는 유럽 최대의 쇼핑몰인 Westfield도 있고, 옥스포드 서커스 같은 곳에 가면 쇼핑할 곳이 넘쳐나기 때문에 세일 기간을 잘 노리면 좋다.
그게 아니더라도 TK MAXX라고 아웃렛이 있는데 명품 의상뿐만 아니라 욕실, 주방 용품 및 가구 의류 장난감 등 모든 이월상품을 할인해서 판매한다. 저렴한 가격대에 물건을 득템 할 수 있다.
공원
런던 시내 중심에도 Regent's park, Kenshington Garden 같은 공원, 좀 나가면 야생 사슴 무리를 볼 수 있는 Richmond park등 녹지대가 많지만, 동네 곳곳에 접근성이 좋은 다양한 공원이 많다. 우리 집에서 버스로 조금만 가면 갈 수 있는 공원도 두세 군데나 된다. 그래서인지 런던도 서울처럼 복잡한 곳이긴 하지만 조금 더 여유가 있게 느껴진다.
런던은 비싼 집세와 살인적인 교통비, 인종차별, 그리고 우리나라에 비하면 좋지만 그래도 공기가 그다지 좋지 않은 등 여러 단점도 있지만 요즘에는 장점이 더 많이 보이는 것 같다. 아니면 내가 여기서 어떻게든 잘 살아보려고 무의식 중에 장점을 더 많이 보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분명한 건 매일 다양한 이벤트가 곳곳에서 펼쳐지는 곳이라 신나고 설렌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