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피터팬의 네버랜드가 된 놀이터> 글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영국에는 크고 작은 공원이 정말 많다. 그래서 때로는 마치 보물 찾기를 하듯이 새로운 공원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나는 만 7세 아들과 종종 런던의 공원으로 탐험을 나서곤 하는데 공원에는 아이가 놀 수 있는 놀이터가 필수로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이 좋으면 작은 공원이라도 공원 안에 두세 개의 놀이터가 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날씨가 화창한 날에는 이렇게 놀거리가 많은 공원의 놀이터에서 해 질 녘까지 아이가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번 글에는 런던 해머스미스 지역의 작은 공원인 레이븐스코트 파크(Ravenscourt Park)에 있는 놀이터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위치 및 환경
런던의 서쪽 해머스미스(Hammersmith) 쪽에 위치한 레이븐스코트 파크는 지하철 디스트릭트 라인(district line)을 타고 레이븐스코트파크(Ravenscourt Park) 역 앞에 내리면 쉽게 찾을 수 있다. 레이븐스코트 파크는 내가 사는 곳에서 버스로 30분이 걸리는 옆동네에 있다. 이곳은, 굳이 분류하자면, 런던에서는 작은 규모의 동네 공원에 속한다. 영국 대부분의 공원이 그렇듯이, 레이븐스코트 파크도 산업혁명 이후 도시의 재건 사업을 위해 영주의 저택이 있던 개인의 소유지를 런던시에서 매입한 후, 1888년에 시민들의 공원으로 개방하였다.
런던에서도 비교적 안전하고 잘 관리된 동네에 있는 레이븐스코트 파크의 주변은 대부분 주택가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레이븐스코트파크 역 쪽에는 하이스트릿처럼 한국 식당을 포함한 작은 상점들이 죽 늘어선 거리가 있다. 공원에 오는 경로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라면 아이와 쉽게 걸어올 수 있는 접근성이 좋은 놀이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공원에 바로 인접해있는 학교나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이 하교 후에 놀다 가기 좋은 이용 빈도가 높은 놀이터이다. 또한 몸이 불편한 친구들이 휠체어를 타고 놀이터에 진입하기에도 어렵지 않게 되어있다.
영국의 공원은 대개 공원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철제 울타리와 게이트가 있고,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다. 우리 집 앞의 공원은 계절별로 이용시간이 달라져서 공원에 들어설 때 게이트 앞에 게시된 이용시간을 꼭 확인하곤 한다. 아마도 공원을 훼손시킬 수 있는 반달리즘을 예방하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서 어두워지면 공원 게이트를 걸어 잠그는 것 같다.
레이븐스코트 파크의 오픈 시간은 아침 7시 반이고 해가져서 어둑어둑해지면(애매모호하게 공원 닫는 시간은 "Dusk"라고만 표시되어 있음) 공원 게이트의 문을 닫는다고 하니, 놀이터도 이 시간 안에만 이용할 수 있다.
레이븐스코트 파크 지도, 놀이터는 3번으로 세군데에 표시됨
레이븐스코트 파크에는 놀이터가 3개가 있는데 두 개는 5세까지, 나머지 한 개는 12세까지의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터로 나뉘어 있다.
공원 안에 위치한 놀이터는 아이들이 자연을 탐색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나와 공원에서 킥보드를 탈 수도 있고, 잔디 위에서 원반 던지기 같은 다른 놀이를 하거나 피크닉을 하며 휴식을 취하기에도 좋다. 영국의 공원은 비교적 관리가 잘 되는 편인데, 이는 공원이 속한 자치구에서 매일 공원의 쓰레기를 치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쾌적한 놀이터의 환경에서 마음껏 놀이를 즐길 수 있다.
이미 차가 다니지 않는 울타리가 처진 공원 안에 안전하게 놀이터가 위치해 있음에도, 놀이터에는 열고 잠글 수 있는 게이트가 있는, 놀이터 전체를 둘러싼 철제 울타리가 따로 하나 더 설치되어 있다. 대부분의 영국 놀이터가 이렇게 되어있는데 이것은 아이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호기심 많은 유아들이 혼자서 놀이터 밖으로 나가는 것을 방지한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을 공격하거나 놀라게 할 수도 있는 반려견의 진입을 막고, 연약한 아이들에게 자칫 치명적일 수 있는 동물 기생충의 감염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예전에 남편이 한국의 모래 놀이터에서 반려견의 출입에 대해 의아해했던 적이 있었는데, 아이가 놀이터에서 기생충에 감염된 모래를 만지다가 눈을 만지면 실명을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톡소카라증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모래가 있는 한국의 놀이터에 아이를 데려갈 때마다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곤 했던 기억이 있다.
놀이터 안전수칙 표지판
각 놀이터의 입구마다 놀이터에서 지켜야 할 수칙을 명시한 표시판이 세워져 있다. 여기에는 아이를 동반하지 않은 어른의 출입금지, 유리제품 반입 금지, 놀이터에서는 자전거나 킥보드 등을 탈 수 없음을 명시해 놓고 있다. 특히 반려견의 출입을 엄격히 금지하기 위해 우리나라 돈으로 12만원 정도하는 75파운드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놀이터마다 놀이기구가 간격을 두고 여유 있게 배치되어 있고, 아이들이 놀이기구에서 떨어져 넘어져도 다치지 않게 놀이터 바닥은 나무껍질이나 우레탄을 사용하여 폭신폭신하다. 놀이터에 피크닉 테이블과 벤치가 있어 보호자가 아이들과 간단히 간식을 먹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혹시라도 아이의 간식을 빼먹고 왔다면, 공원 안에 있는 카페에서 음료나 케이크 같은 간단한 요깃거리를 찾을 수도 있다.
#영유아를 위한 놀이터
5세까지의 유아들을 위한 놀이터 두 곳은 레이븐스코트 파크 역 쪽에 위치해 있다. 그중 하나는 지하철이 지나다니는 철로 밑이라는 조금 독특한 환경에 있다. 만 7세 우리 아들이 아직까지 기차나 지하철에 열정적인 관심을 쏟는 것처럼, 이동수단을 좋아하는 남자아이들은 지하철이 지나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이 놀이터를 좋아할 것 같다.
그리고 이 놀이터의 바로 옆에 수영장과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다. 우리나라 한강 시민공원에 있는 수영장처럼 여름 한철 정해진 기간에만 오픈하는 무료 수영장이다. 지금은 겨울이라 사용하지 않으니 울타리로 막아 놓았다. 물의 깊이가 얕은 수영장이어서 위험하진 않겠지만 수영장에서 지켜야 할 수칙을 눈에 띄는 곳에 명시해 놓았다. 수영장과 놀이터가 이곳에 있어서인지 뒤쪽으로 공원 화장실이 있다.
두 번째 영유아 놀이터는 첫 번째 놀이터보다 공간이 더 탁 트인 느낌을 준다. 첫 번째 영유아 놀이터에는 시설물이 있는 곳에 낮은 턱이 둘러싸여 있었다. 그런데 두 번째 놀이터에는 시설물을 구분해 놓는 경계가 없이 공간이 부드럽게 연결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뛰어다녀도 방지턱에 걸려 넘어질 위험이 없다. 영국 정부가 운영하는 5세까지의 아이들을 위한 무료 놀이방인 Children's Centre(우리나라 "아이사랑 놀이터"와 비슷)가 바로 앞에 있다.
레이븐스코트 파크의 영유아 놀이터는 딱 필요한 몇 가지의 놀이기구가 보호자와 아이가 이용하기에 넉넉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핵심기구들만 선별해 놓은 영유아 놀이터의 놀이 시설이 단출하고 별거 없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놀이터를 생애 처음 접하는, 아직 한참 신체 발달 과정에 있는 어린아이들이 편안하게 놀이터를 즐길 수 있게 하는데 중점을 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가 놀이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통적이고 단순한 형태의 놀이시설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는 아이들이 놀이기구를 이용하면서 낯설 수도 있는 놀이터의 공간에 대해 안전함을 느끼게 하고, 집 밖에서의 놀이에 대한 즐거움에 대해 알아가게 한다.
#12세까지 놀 수 있는 놀이터
마지막으로 12세까지 이용 가능한 놀이터를 집중 소개하고자 한다.
골드훡로드(Goldhawk Road) 버스 정류장에서 가까운 이 놀이터는 공원으로 들어와 나무로 우거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오른쪽에 위치해있다.
이 놀이터의 게이트는 세 개, 그래서 놀이기구로의 진입 경로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휠체어를 타는 친구들도 이용하기 편리하게 진입로의 연결이 매끄럽게 되어있다.
이 놀이터는 다른 두 놀이터에 비해서 공원의 자연경관과 가장 잘 어우러진 놀이터이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곁에 있어서 아이들은 나무 위에 올라타기도 하고, 그 주변에 잠시 앉아 친구와 대화도 나눌 수 있다. 조경이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어 아이들이 노는 데에 불편함이 없고, 아이들의 모습도 한눈에 다 들어와 보호자가 아이를 찾느라 애를 쓸 필요가 없다.
놀이 기구는 대부분 나무로 된 소재를 사용하였고, 혼자 그리고 함께 탈 수 있는 놀이 시설이 다양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연령대와 신체 능력에 맞게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공간마다 적절히 배치되어 있었다. 놀이터의 중간중간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볼 수 있는 시설물도 있고, 접시처럼 생긴 1인용 스피너도 있었다.
좌) 청각 놀이기구, 우) 1인용 스피너
미끄럼틀도 두 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어린아이들이 언덕으로 올라가서 쉽게 타고 내려오는 슬라이드만 있는 단순한 디자인의 미끄럼틀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성이나 작은 오두막집이 연상되는 미끄럼틀이었는데 미끄럼틀의 슬라이드까지 진입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했다. 사다리나 로프를 잡고 오르거나 중간에 연결된 흔들 다리를 건너서 오는 등 여러 방향으로부터 슬라이드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미끄럼틀 시설에는 작은 문처럼 뚫린 구멍이 난 공간이 있는데 아이들이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거나 숨어서 쉴 수 있게 해 놓았다.
뺑뺑이(roundabout)의 높이가 약 0.5미터 정도로 기존의 놀이터의 것보다 높이 붕 떠 있었고, 흔들 다리로 진입하는 디딤대도 서로 다른 높낮이로 되어 있어 아이들이 다양한 시선으로 풍경을 바라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최종 목적지까지 높이가 2 미터 정도 되는 스릴만점의 도전적인 구조물도 있었다. 나무껍질이 바닥에 쿠션처럼 푹신하게 깔려있어 떨어져도 다치진 않지만, 만 7세인 우리 아들에게도 큰 용기가 필요했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risk taking) 놀이 구조물이었다.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위기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다양한 방법으로 목적지에 이를 수 있게 한 영리한 디자인의 시설물이었다. 또한 아이들이 이 놀이 기구를 도전하는 모험을 통해 어려워 보였지만 결국 해냈다는 작은 성취감도 느끼게 해 주는 것 같았다.
사회성이 발달하고 있는 초등학생 고학년까지 이용할 수 있는 놀이터인 만큼 영유아 놀이터와 달리 다른 친구들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놀이시설이 더 많았다. 그래서 아이가 그런 놀이기구를 이용하는 동안 놀이터에서 처음 만난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협동할 기회를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별한 그네?
여러분의 어릴 적에 그네를 타는 경험이 어떠했는지 모르겠다. 나에게 그네는 기분이 안 좋은 일이 있으면 흔들흔들 내 마음을 달래주고,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자유로움과 함께 신나는 경험을 안겨줬었다. 그래서 그네는 어릴 적 내가 좋아하던 놀이터의 시설물 중 하나였다.
이 놀이터에는 종류만 해도 4가지의 그네가 있었는데 그중 내 시선을 사로잡는 특별한 그네가 있었다.
좌) 첫번째 유아용 그네, 우) 두번째 바구니 그네
세번째 함께 마주보고 타는 원형그네
첫 번째는 어린 유아들을 위한 그네, 두 번째는 친구와도 함께 탈 수도 있고 반쯤 누울 수도 있는 바구니 그네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일반 그네인데 5개의 그네가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어서 친구들의 얼굴을 마주 보고 타는 구조이다. 그네를 타다가 아이의 몸이 앞으로 쏠려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바처럼, 아이가 앉으면 몸통을 가로지르는 줄이 양쪽 손잡이 줄 사이에 하나 더 연결되어 있다. 이 그네의 구조상 맞은편 그네를 탄 친구와 부딪히지 않게 조금 신경을 써야 하는데, 이때 아이들은 서로 배려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이 아까 언급했던 그 특별한 그네인데, 이 그네가 특별한 이유는 여러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 모여서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놀이터가 속한 지역구에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의 활동 단체인 "페어런츠 액티브(Parents Active)"에서 모금 활동을 하여 설치한 놀이기구 중 하나인 휠체어 그네이다. "페어런츠 액티브에서는" 이 휠체어 그네를 설치하기 전에 이미 앞에서 소개한 유아 놀이터에 휠체어 뺑뺑이를 설치하는 데에도 앞장섰다. 둘 다 놀이기구 한쪽에 사용법이 설명되어 있어서 처음 이용하는 친구들도 어려움 없이 이용할 수 있다.
놀이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네를 중심으로 한쪽에는 휠체어를 탄 친구가 탈 수 있는 그네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안전바가 장치된 그네가 어깨동무하듯이 함께 붙어있어 인상적이다. 몸이 불편한 친구들의 놀이 공간을 따로 분리해두지 않고, 이렇게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서 그네를 탈 수 있게 했다. 영국의 학교에서도 몸이 조금 불편한 친구들이 다른 친구들과 차별 없이 함께 어울려서 배우고 공부한다. 이렇게 영국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놀이터에서나 학교에서 몸이 불편한 친구와 자연스럽게 어울려 생활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떨까?
언젠가 서울 강서구의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하기 위해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이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이 실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 사진 한 장이 우리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016년에 서울 어린이대공원에 생긴 "꿈틀꿈틀 놀이터"처럼 우리나라에도 몸이 불편한 친구들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놀이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작년에 광명시에서는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소외되지 않게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통합 놀이터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럼 우리나라의 이런 통합 놀이터에 휠체어 그네도 있을까?
찾아본 바로는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 씨의 기증으로 2014년에 휠체어 그네가 처음 국내에 소개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장애인 놀이시설에 대한 안전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설치와 철거가 반복되다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17년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마침내 휠체어 그네 법을 발의했다. 그리고 2019년에 조수미 씨가 함양에 기부한 "조수미 통합 놀이터"에 휠체어 그네가 다른 놀이기구와 함께 당당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혜화동 마로니에 공원에 외롭게 홀로 서있는 휠체어 그네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휠체어 그네가 놀이터에서 제자리를 찾는 것이 여전히 쉽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
영국과 한국이라는 다른 장소이지만 장애아동에 대한 특별한 사랑의 마음이 모아져서 휠체어 그네가 설치되었다는 공통점을 발견한 것이 흥미롭다. 휠체어 그네가 지금은 두 나라 모두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특별한 그네이지만, 활발한 보급과 사회적 인식의 변화로 나중에는 놀이터의 다른 기구들과 함께 어느 놀이터에서든지 볼 수 있는 그런 평범한 그네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