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이 심화되고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지금, 인도는 전 세계에서 가장 '전략적 가치'가 높은 국가로 부상했다. 과거의 인도가 저렴한 노동력의 공급처였다면, 지금의 인도는 글로벌 패권 전쟁의 향방을 결정짓는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다.
나는 레바논 UNIFIL 연락장교 시절과 인도 체류 기간 동안, 인도가 국제 정세의 흐름을 얼마나 냉혹하고 영리하게 이용하는지 목격했다.
인도는 전통적인 비동맹 노선을 고수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모든 강대국과 각기 다른 패를 쥐고 협상하는 '다각동맹' 전략을 취한다. 안보를 위해 미국·일본·호주와 '쿼드(QUAD)'를 형성하면서도, 경제와 에너지를 위해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저렴한 원유를 사들인다.
국제 정세의 파고 속에서 인도는 결코 의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오직 '인도의 국익'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만 줄을 탄다. 이 영악한 균형 감각이 인도를 대체 불가능한 공급망의 핵심으로 만들었다.
글로벌 제조 기업들이 중국을 떠나 인도로 향하는 것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하지만 인도는 단순히 공장을 유치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제조 시설뿐만 아니라 R&D 센터와 공급망 전체를 인도 내부로 끌어들이려 한다.
나는 인도 정부가 자국 내 생산 비중을 높이기 위해 수입 관세를 무기로 휘두르며 글로벌 기업들을 길들이는 과정을 보았다.
한국 기업에게 이는 '중국 시장의 대안'이라는 기회인 동시에, 인도의 자국 중심 공급망에 종속될 수 있다는 거대한 위기이기도 하다.
인도는 동남아시아와 중동, 유럽을 잇는 지경학적 요충지에 위치해 있다.
* 지리의 힘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특히 인도가 지리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위치에 있는지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최근 논의되는 IMEC 프로젝트는 중국의 일대일로에 대항하는 새로운 물류 지도를 그리고 있다. 연락장교 시절 중동의 물류 흐름을 지켜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인도는 아시아와 중동을 잇는 거대한 물류 허브이자 안보 방파제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이 공급망의 중심에 올라타지 못하는 기업은 향후 20년의 글로벌 비즈니스 지형도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
많은 한국 기업이 인도를 단순히 저임금 제조 기지로만 바라본다. 하지만 인도는 자신들을 '하청업체'가 아닌 '전략적 동반자'로 대우해 주길 원한다. 공급망 재편의 물결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인도의 지경학적 야심을 이해하고, 그들의 국가 전략에 우리 기술과 자본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논리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우리가 인도를 이용하려 할 때, 인도 역시 우리를 이용하려 할 것이다. 이 치열한 이용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는 것이 대인도 전략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