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방갈로르에 도착한 첫 달이었다.
숙소 근처 카페에 자주 갔다. 노트북을 펼쳐놓고 앉아 있으면 주변이 온통 노트북을 든 청년들이었다. 한국이라면 스터디 카페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풍경이었을 텐데, 이들은 달랐다.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서로 뭔가를 그리고 있었고, 노트북 화면에는 사업계획서처럼 보이는 것들이 가득했다.
어느 날 옆 자리 청년에게 물었다. "뭐 하는 거예요?"
"스타트업 준비해요. 지난달에 IIT 졸업했어요."
그게 처음이었다. 인도 청년들에게 창업이 선택이 아니라 기본값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 나도 언젠가는 창업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금세 친구가 되었다. 서로 왓츠앱으로 번호를 주고받았다.
왜 방갈로르인가
방갈로르가 인도의 실리콘밸리가 된 건 우연이 아니다. 1960~70년대 인도 정부가 IT 기업 유치를 위해 세금 혜택과 인프라를 이 도시에 집중했다. 인포시스, 위프로가 뿌리를 내렸고, 그 주변으로 글로벌 IT 기업들이 모여들었다. 지금 방갈로르에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가 모두 R&D 센터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 기업들 주변에 IIT 출신 청년들이 모인다. 대기업에 들어가는 대신 창업을 택하는 비율이 매년 높아지고 있다.
세 가지 구조적 연료
인도 스타트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이유를 하나만 꼽으라면 틀린다. 세 가지가 동시에 맞물렸다.
첫째, IIT라는 인재 파이프라인이다. 120만 명이 지원해 1만 6천 명이 붙는 대학. 합격률 1.3%의 이 졸업생들이 창업 시장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내가 방갈로르에서 만난 IIT 출신 친구 하나는 구글 오퍼레터를 받고도 거절했다. "구글에 가면 부품이지만 여기선 내가 제품을 만든다"라고 했다.
둘째, 14억이라는 내수 시장이다. 한국 스타트업이 처음부터 글로벌을 노려야 하는 반면, 인도 스타트업은 처음부터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를 상대로 검증한다. 실패해도 배울 수 있는 규모가 다르다.
셋째, UPI라는 디지털 인프라다. 인도는 2016년 정부 주도로 통합 결제 인터페이스를 만들었다. 이 위에 핀테크, 이커머스, 에듀테크,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올라탔다. 기반이 없었다면 이 속도는 불가능했다.
유니콘 100개의 의미
인도의 유니콘(기업가치 1조 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 수는 100개를 넘었다. 미국, 중국 다음이다. 한국은 30개 남짓이다.
숫자보다 중요한 건 분야다. 페이티엠(핀테크), 바이주스(에듀테크), 올라(모빌리티), 스위기(푸드딜리버리), 제프토(퀵커머스). 거의 모든 산업에 인도식 솔루션이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처음부터 인도 특유의 문제를 인도 방식으로 풀도록 설계됐다.
카페 청년의 3년 후
방갈로르를 떠나기 직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카페에서 만난 그를 다시 만났다. 그때는 청년이었지만, 이제 그는 어엿한 비즈니스맨이 되어 있었다. 그의 핀테크 스타트업은 3년 만에 직원 40명이 됐다. 투자를 받았다고 했다.
"잘됐네!! 대단하다!!"라고 했더니 그가 웃으며 말했다. "인도에서 스타트업은 실패해도 괜찮아. 다시 하면 되니까."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 그게 인도 스타트업 생태계의 가장 조용한 연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