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갈로르에서 델리까지 기차로 이동한 적이 있다. 30시간이 넘는 긴 여정이었다. 잠을 자고 일어나도, 또 자고 일어나도, 창밖에는 농경지가 이어졌다. 인도 아대륙의 광활함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2019년의 그 차창 너머 풍경을 아직도 기억한다. 소가 쟁기를 끌고 있었다. 넓은 땅에, 오래된 방식이 그대로였다.
그로부터 5년 후, 같은 지역에서 드론이 농약을 살포한다는 뉴스를 읽었다. 인도 정부가 농업 드론 보조금 정책을 시행했고, 단기간에 수만 대의 드론이 농촌에 보급됐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숫자들을 따라가다 보니 그게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14억의 구조적 문제
인도 농업의 현실은 복잡하다. GDP 기여도는 약 17%지만, 농가의 85%가 소농이다. 2헥타르 이하의 작은 땅을 가진 농부들이 대부분이다.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실소득이 오르지 않는 구조다. 이유는 크게 셋이다.
첫째, 중간상의 착취다. 농부가 생산한 작물이 소비자 손에 닿기까지 너무 많은 단계를 거친다. 각 단계에서 이익이 빠져나가고, 농부에게 돌아오는 몫은 줄어든다.
둘째, 불안정한 강수량이다. 인도 농업의 절반 이상이 여전히 강우에 의존한다. 몬순이 늦어지거나 과해지면 한 해 농사가 무너진다. 이 불확실성이 소농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셋째, 정보 비대칭이다. 시장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어느 지역에서 어떤 작물이 부족한지 농부들은 알기 어렵다. 중간상은 이 정보를 무기로 삼아 왔다.
인도 정부가 기술에 올인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물리적 인프라를 먼저 깔아서는 수십 년이 걸린다. 기술로 그 구조를 먼저 바꾼다는 논리다.
e-NAM: 중간상이 사라지는 플랫폼
그 핵심이 e-NAM(Electronic National Agriculture Market)이다. 농부가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작물 사진과 품질 정보를 올리면, 전국의 바이어가 입찰한다.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른 사람이 가져간다. 중간상 없이, 농부가 직접 가격을 결정한다.
e-NAM에 등록된 농부는 1,700만 명을 넘었다. 전국 1,300개 이상의 농산물 시장이 이 플랫폼으로 연결됐다. 수백 년간 유지된 중간상 구조가 스마트폰 하나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드론과 AI가 바꾸는 농경지
드론은 인도 농업에서 가장 빠르게 확산되는 기술이다. 농약 살포 시간은 10분의 1로 줄고, 약품 사용량도 줄어든다. 인도 정부는 농업 드론 구매에 보조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스타트업들은 드론 서비스 구독 모델로 소농에게 접근하고 있다. 드론을 살 돈이 없어도 시간제로 빌릴 수 있다.
AI 작황 예측 서비스도 확산 중이다. 위성 데이터와 기상 정보를 결합해 특정 지역의 이번 시즌 작황을 예측한다. 농부 입장에서는 무엇을 심을지, 언제 심을지 판단하는 데 쓴다. 보험회사는 이 데이터로 농작물 보험 상품을 만든다.
방갈로르 기반의 농업 스타트업 Ninjacart는 농부와 식당·마트를 직접 연결하는 B2B 플랫폼이다. 기존 유통망을 건너뛰고 신선도를 유지하면서 농부 수익을 높이는 모델이다.
양극화라는 현실
그렇다고 인도 농업 기술이 균등하게 퍼진 건 아니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낮은 지역, 인터넷 연결이 불안정한 농촌에서는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 디지털 리터러시 격차도 크다.
하지만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인도의 청년 농부 세대는 스마트폰을 당연히 사용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 접근성은 높아진다. 정부의 통신 인프라 투자도 계속되고 있다.
기차 창밖에서 든 생각
소가 쟁기를 끌던 그 땅 위에, 이제 드론이 날고 있다. 14억이라는 숫자는 문제였다. 그런데 그게 이 모든 시스템의 가장 강력한 연료가 됐다. 인도 농업이 지금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