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아팠던 날, 병원에서 내가 본 것

by 전략가 김재훈

방갈로르에 살던 2019년, 처음으로 인도 병원 문을 열었다.

열이 3일째 이어지고 있었다. 숙소 근처 Manipal Hospital — 인도 남부에서 꽤 이름 있는 민간병원이었다.


들어서는 순간 예상이 깨졌다.

로비는 넓고 냉방이 잘 됐다. 접수 데스크에서 이름과 증상을 말하니, 태블릿으로 기록이 이루어졌다. 진료 순서가 되자 문자로 알림이 왔다. 의사는 인도 특유의 억양이 섞인 영어로 증상을 꼼꼼히 물었고, 처방전을 디지털로 발행했다. 약국에서 약값을 내고 나오면서 영수증을 보고 잠깐 멈췄다. 한국에서 같은 약을 사면 최소 5만 원은 나올 것들이 700루피, 당시 환율로 약 1만 1천 원이었다.


그날 이후 인도 의료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14억을 감당하는 방법

인도는 의사 1인당 담당 환자 수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WHO 권고 기준(의사 1명 당 1,000명)을 아직 충족하지 못한 지역이 태반이다. 그런 나라가 2023년 기준 디지털 헬스 스타트업에만 30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했다. 물리적 인프라가 부족하니, 기술로 메운다는 논리다.


Ayushman Bharat Digital Mission(ABDM)은 그 핵심이다. 모든 국민에게 Health ID를 부여하고, 진료 기록을 클라우드에 통합 관리한다. 어느 병원에 가도 기존 기록이 이어진다. 농촌 오지에선 원격 진료로 전문의와 연결된다. 스마트폰 하나면 처방에서 약 배달까지 이루어진다.


내가 방갈로르에서 경험한 것은 이 시스템의 초기 버전이었다.


양극화라는 현실

그렇다고 인도 의료가 균등한 건 아니다. 방갈로르, 뭄바이, 델리 같은 대도시의 민간병원과 농촌 지역 공공병원 사이의 격차는 극단적이다. 도시 민간병원은 의료 관광객을 유치할 만큼 수준이 높다. 반면 농촌 PHC(Primary Health Centre)에는 의사가 없는 날도 있다.


그 격차를 메우려는 시도가 바로 eSanjeevani 원격진료 플랫폼이다. 농촌 환자가 스마트폰으로 도시 전문의와 연결되는 구조. 2023년 기준 누적 진료 건수 1억 건을 돌파했다. 숫자만 보면 놀랍다. 실제로는 통신 인프라의 한계, 의사 부족, 언어 장벽이 여전히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인도가 만들려는 것

인도 정부의 목표는 단순한 의료 서비스 개선이 아니다. 헬스케어를 수출 산업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미 인도는 제네릭 의약품 세계 1위 생산국이다. 전 세계 백신의 약 60%를 공급한다. '세계의 약국'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여기에 디지털 헬스, 의료 관광, AI 진단 기술까지 더해지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인도 헬스케어 시장은 2030년까지 3,72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 인도 병원에 투자하는 외국 자본들이 보고 있는 숫자다.


병원 복도에서 든 생각

그날 진료를 마치고 나오면서, 나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생각보다 낫네'가 아니라, '이게 맞는 방향이네'라는 감각이었다. 물리적 인프라를 미리 깔기보다, 기술로 접근성을 만드는 방식. 인구가 많을수록, 그 모델의 효율성은 높아진다.


14억이라는 숫자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 모든 시스템의 가장 강력한 연료이기도 하다. 인도 의료가 지금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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