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갈로르에서 살 때, 주변에 엔지니어 친구들이 많았다.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많았던 게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들이었다. 퀄컴, 인텔, AMD, 브로드컴. 이름만 들어도 아는 회사들의 인도 R&D 센터가 방갈로르에 있었다.
그 친구들이 하는 일을 들으면 꽤 복잡했다. 칩 설계도를 그리는 거라고 이해하면 쉽다고 했다. 실제로 칩을 만드는 건 대만 TSMC나 한국 삼성에서 하고, 설계는 인도에서 한다는 거였다. 인도는 두뇌를 제공하고, 제조는 다른 나라에서 한다는 구조였다.
그 구조가 오래됐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인도 IT 붐이 1990년대에 시작될 때부터 소프트웨어와 설계는 잘하지만 하드웨어 제조는 약하다는 게 인도의 패턴이었다. 전력 인프라가 불안정하고, 물류가 복잡하고, 초기 투자 비용이 크다는 이유였다.
하이데라바드에 갔을 때도 비슷한 걸 느꼈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의 인도 거점이 하이데라바드에 있고, 반도체 관련 회사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런데 다들 설계와 소프트웨어 쪽이었다. 팹 이야기는 없었다.
그 이야기가 이제 나오고 있다.
2026년 구자라트 돌레라에 인도 첫 반도체 팹이 특별경제구역(SEZ)으로 지정됐다. 타타가 짓고 있다. 그 옆에 Micron의 패키징·어셈블리 시설도 들어서고 있고, CG Power와 Kaynes Technology도 라인을 준비 중이다. 2026년부터 상업 생산이 시작된다는 계획이다.
인도 정부도 적극적이다.
반도체 미션 2.0이 선언됐고, 10개 프로젝트가 승인됐다. 투자 약정 누적액이 173억 달러를 넘었다. 2030년까지 반도체 시장 규모를 100억 달러로 키우겠다는 목표다.
왜 지금인가. 미중 갈등으로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되고 있다. 대만에 집중된 칩 생산을 분산해야 한다는 인식이 전 세계적으로 퍼졌다. 미국은 자국 내 생산을 늘리고 있고, 일본과 유럽도 팹 유치에 나섰다. 인도도 그 흐름 안에서 자리를 잡으려 하고 있다.
쉽지는 않다.
반도체 팹은 짓는 데만 수조 원이 들고, 가동까지 수년이 걸리고, 한 번 문제가 생기면 수율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전력 안정성이 핵심인데 인도는 아직 그 부분에서 신뢰를 완전히 얻지 못했다. 타이완이나 한국이 수십 년간 쌓아온 공급망 생태계를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방향은 정해졌다. 방갈로르에서 만났던 그 반도체 설계 엔지니어 친구들의 자녀 세대쯤 되면, 인도 안에서 설계부터 제조까지 완결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시작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