첸나이에 처음 갔을 때, 도시 외곽으로 나가는 길에 현대차 공장 간판이 보였다. 인도에 현대 공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간판을 보니 묘하게 실감이 났다. 저 공장에서 만든 차가 인도 도로를 달리고 있구나 싶었다.
방갈로르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창밖을 보다가 세어봤다. 1시간 동안 본 차 중에 현대 로고가 생각보다 많았다. i20, Creta, Venue. 인도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현대는 꽤 좋은 브랜드로 통한다고 했다. 일본 브랜드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한국 브랜드도 그 사이에서 자리를 잡은 거였다.
그 시절엔 전기차 이야기가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 도로에 전기차가 간간이 보이긴 했지만 주류가 아니었다. Tata Nexon EV 같은 모델이 가끔 눈에 띄는 정도였다. 지금은 완전히 다르다.
인도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FY26 기준으로 판매량이 전년 대비 87% 늘었다. 시장을 주도하는 건 전기 SUV다. 인도 사람들이 SUV를 좋아한다는 건 내연기관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전기차도 같은 패턴으로 가고 있다.
Tata Motors가 선두다. 점유율 37%로 아직은 인도 토종 브랜드가 강하다. 넥슨 EV, 티아고 EV 같은 모델로 저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Mahindra가 XEV 시리즈로 추격하고 있고, 중국 브랜드들도 문을 두드리고 있다.
현대는 크레타 EV로 중간 가격대를 공략하고 있다. 크레타는 원래 인도에서 가장 잘 팔리는 SUV 중 하나였다. 그 이름에 전기차를 붙여서 나왔으니 인지도 면에서 유리하다. 기아도 EV6로 프리미엄 시장을 노리고 있다.
테슬라는 2025년 7월에 인도에 진출했다. 현지 생산 없이 수입차로 시작했다. 가격이 비싸다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텐데, 왜 수입차로 시작했을까. 인도 정부가 전기차 수입 관세를 일시적으로 낮춰주는 조건으로 현지 투자 의지를 확인하겠다는 협상이 있었다. 테슬라 입장에선 일단 시장 반응을 보고 공장 투자를 결정하겠다는 계산이다.
뭄바이에서 테슬라 매장이 생겼다는 뉴스를 봤다. 델리에도 생겼다. 가격은 인도 기준으로 아주 비싸지만, 그걸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뭄바이와 델리에는 충분히 있다. 인도 부유층 시장은 생각보다 두껍다.
BYD도 인도 진출을 노리고 있다. 인도 정부와 현지 생산 협상이 진행 중이다. 중국 브랜드에 대한 인도 정부의 경계심이 있어서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BYD 입장에선 인도를 포기하기가 어렵다. 누가 이 시장을 가져갈지는 아직 열려 있다. 토종 브랜드가 저가 시장을 지키면서 위로 올라올 건지, 한국 브랜드가 중간 가격대를 완전히 장악할 건지, 테슬라가 브랜드 파워로 프리미엄 시장을 굳힐 건지. 인도 전기차 전쟁은 아직 초반전이다.
첸나이 공장 간판을 다시 보게 된다면 그 풍경이 달라 보일 것 같다. 저 안에서 전기차가 만들어지는 날이 벌써 시작됐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