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다
본업무 외 자원했던 추가 업무까지 끝내고 오니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 욱신거렸다.
퇴근 중에 바닥이 보일 듯한 짬뽕 빈 그릇 사진을 보낸 아들이 효자로 보였다.
'다행이다, 저녁은 안 해도 되겠군.'
축구를 한 아들과 중간에 만나 집 앞에 내려주고 저녁으로 국밥 한 그릇을 먹고 오겠다며 근처 순댓국집으로 갔다.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을 해야 할 판에 뚝배기 가득 배부르게 먹자니 양심에 찔렸다. 사장님께 밥을 적게 달라고 말씀드렸다. 밥은 공기그릇째 들어오는 거라 손 댈 수 없으니 덜어놓고 먹으라고 하셨다. 밥 1/3 공기를 일찌감치 덜어놓고 다른 때보다 덜 짜게 천천히 먹었다.
다른 날보다 더 수고한 나에게 이 정도는 해주고 싶었다.
집으로 가는 길, 주유소 근처 유명한 손두부집이 확장이전하면서 비어있던 오래된 단층 상가에 한 달 전 보랏빛 편의점이 오픈했다.
구도로 코너의 단층건물인 데다 안이 훤히 보이니 널찍해 보인다.
내게 편의점은 마음의 거리가 꽤 먼 곳이다. 아직까지도 물건은 비싸고, 필요한 물건을 준비 못한 상황에서 구해야 하거나 마트 가기가 번거로운 경우에만 가는 곳이라는 아주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고 있다.
나와는 달리 아파트 단지 입구에 있는 구멍가게로 알고 다니기 시작한 아들이나 혼밥용 도시락, 다양한 맥주와 과자를 사러 일부러 가는 남편에겐 더없이 맘 편한 가게다.
그래도 왠지 저기 앞에 편히 주차하고 뭐라도 사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아들과 남편에게만 주었던 편의점 교환 선물을 찾아보았다. 주로 독서모임 인증하여 받은 박카스, 초콜릿 등 간식 4개가 있다.
문 앞에서 떨어진 곳에 주차하고 들어갔다.
카톡 선물이 뭔지 까먹지 않기 위해 휴대폰을 들고 들어서니 매대를 정리하시던 여자사장님께서 인사를 하셨다.
"피스마이너스원 하이볼 사러 오셨어요?"
"네? 뭐라고 하셨는지 잘 못 들었어요."
사장님의 목소리는 잘 들릴만큼 충분히 크고 낭랑했다. 다만 처음 듣는 긴 낱말에 내 뇌가 결국 검색실패한 것이다.
"휴대폰 보면서 들어오셔서 피스마이너스원 하이볼 있는지 전화로 물어봤던 손님인가 했어요."
"아, 전 아니에요. 카톡 간식선물 교환하러 왔어요. 근데 그게 뭔대요?"
"GD가 디자인해서 유명한 하이볼이에요."
카운터에 계셨던 남자 사장님이 한 말씀 거두셨다.
"그거 CU 하고만 독점 제휴한 건데 한정판이라고 요즘 젊은 사람들 사러 다니느라 고생해요."
"아, 그래서 외진 데까지 오는 거군요."
외지다는 표현에 살짝 당황하신 듯하여 하늘도시 쪽에서 보면 그렇게 볼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저는 술을 아예 못해서 못 사겠네요."
"그게 맥주 정도 도수에 탄산도 있고 레몬이 들어가서 맛있대요."
크런키, 새콤달콤을 손에 쥐고 박카스를 꺼내려 가게 안쪽 냉장고까지 가니 그게 뭔지 궁금해졌다.
'GD? 한정판?'
GD얼굴이라도 박혀 있을 줄 알았더니 없어서 냉장고에 붙여진 스티커 형태의 광고까지 봤는데 도통 알 수가 없다.
지금 생각하니 검색을 하면 되었는데 그럴 생각은 못했다. 두리번거리는 나를 발견하신 사장님께서 직접 꺼내주셨다.
"여기 4개 남았는데 2개까지 줄게요. 원래 1인 1개 제한이에요."
"진짜 사려고 오는 사람한테 미안하니 하나만 살게요."
젊은 동료에게 선물로 주려는 생각이었다. 집에 들어와 안쪽 냉장고 눈에 안 띄는 곳에 넣어두었다.
그런데 막상 선물로 주려니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이상해 보일 것도 같아서 주지 않기로 했다.
나는 술을 못 마신다. 흔히 말하는 알코올분해효소를 지니지 않고 태어났다.
이런 나에게 이 술은 그저 예쁜 캔일 뿐이다.
가끔 맥주 한 캔을 따고 과자를 먹으며 영화를 보는 남편은 내게 말한다.
"도대체 이거 언제 마실거야?"
"놔둬, 언젠가는 마시겠지."
그 언젠가가 언제일지 모르니 문제다.
그나저나 맥주는 유통기한이 얼마나 되는 걸까?
위스키나 와인처럼 오래 둘 수록 가치가 올라가면 좋을텐데. 그렇다면 난 몇 년이고 묵혀둘 수 있다.